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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학술도서 제도, 기초학문 발전위해서도 필요”
“우수학술도서 제도, 기초학문 발전위해서도 필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5.28 11: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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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도서’사업 꼬집은 김진환 한국학술출판협회 신임회장

 

 

1992년 5월 12일 걸음을 뗀 한국학술출판협회(이하 협회)가 올해로 창립 22주년을 맞았다. 80여 개가 넘는 학술전문 출판사들이 회원사로 가입해 있으며, 2009년부터 사단법인으로 거듭나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난 15일 새로운 회장에 김진환 학지사 대표(57세·사진)가 선출됐다.

그동안 협회는 공식사업으로 △도서정가제 확립 △신학기 불법복제물 단속 △ 저작권법 개선방안 모색 △ 교재채택료 근절방안 마련 △학술도서 전자책 활성화 사업 △우수학술도서 선정 및 시상 등의 주요 사업을 진행해왔다. 성과를 거둔 부분도 있고, 여전히 진행형인 것도 있다. 책이 안 팔린다는 출판계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김진환 신임회장 체제의 한국학술출판협회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김진환 신임회장도 지금의 출판 불황을 우려하고 있었다.

“2020년이 되면 인구감소에 따라 대학 정원도 16만명이나 줄고 지금 대학의 30%가 사라진다고 한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그 인터넷에 공짜 정보가 넘쳐나고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책과 거리가 멀어져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 전자책 전환에 속도가 붙고 있다. 혁신이 필요한 시대다.” 대학입학정원 감소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위기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유연한 사고’를 강조한 김 신임회장은 전자출판협동조합 ‘아카디피아’ 활성화에 무게를 실었다. 출판 시장이 ‘전자책’ 방향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사정을 반영한 전략이다.

대학입학정원 감소와 출판의 함수관계
마침 지난 2월 협회가 노심초사 고대하던 한 가지 희소식이 전해졌다. ‘수업목적 저작물 신탁과 보상 협의’ 문제가 일단락된 것이다. 그동안 대학교육협의회 수업목적저작물이용보상금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이형규 한양대)와 (사)한국복제전송저작권협회(이사장 정홍택)가 씨름해오던 ‘보상금 기준 인하’ 문제를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리해 지난 2월 26일 새롭게 개정, 고시했다. 포괄방식 기준으로 학생 1인당 연간 1천100원~1천300원을 납부한다는 결론이다. 학생 1인당 납부 기준액은 일반대 1천300원, 전문대 1천200원, 원격대(사이버대) 1천100원이다. 그러나 여전히 까다로운 세부 문제를 남겨 놓고 있다는 점에서 협회 측에겐 ‘희소식’인 것만은 아니다.


김 신임회장은 무엇보다 현행 포괄방식으로 저작권료가 과연 제대로 분배될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다. “보상금 적용 범위가 복제, 배포부터 전송까지 모두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저작물 전부 이용도 가능하게 한 부분이 걸린다. 수업목적 이용에 대한 보상금 청구권 포기 동의서의 권리자에 출판사는 해당되지 않게 한 것도 문제다.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교육에 필요한 수업목적의 이용물을 허락하고 있지만, 엄격한 제한을 둬 출판권자(저작권)를 보호하고 출판권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 제도에는 이런 장치가 없다.” 그래서 협회 차원에서 출판사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적용 범위를 바로 잡기 위한 활동을 해나갈 계획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수업에 책을 활용하는 것은 제한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출판사에 전혀 동의나 허락을 구하지도 않은 채 버젓이 책 한 권 전부를 가져다 쓰는 지식 ‘도둑질’이다. 대학과 교수사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협회가 ‘학술도서’를 중점적으로 만들어내는 곳이다 보니 학술도서 정책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김진환 회장은 가장 납득하기 어렵고, 오히려 제도적으로 역행한 사례로 ‘공감도서’ 선정 사업을 들었다. “협회 회원사의 학술출판인들은 몇 권 팔리지 않는 책을 만들면서도 귀한 책을 후대에 전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왔고,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며 묵묵히 외길을 걸어온 분들이다. 이들의 좋은 학술서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은 제도가 바로 ‘공감도서’ 선정 사업이다.” ‘공감도서’ 사업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우수도서 보급’ 이란 명칭을 달고 있던 사업이다. 그런데 올해부터 이 제도가 바뀌었다. ‘국민이 희망하는 도서보급’에 역점을 뒀다. 국민이 ‘공감’할만한 도서 330여종을 선정하며, 소요 예산은 기존 우수도서 지원사업과 통합해 142억원으로 증액해 확대, 발전시킨 제도라는 게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김 회장의 생각은 다르다.


그의 지적대로 우수학술도서 선정 사업은 국가에서 기초학문의 발전을 위해 대중들이 잘 사지 않더라도 한국사회에 꼭 필요한 학술도서라면 안정적으로 출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좋은 취지의 사업이었다. “그러나 현재 국민이 희망하는 도서를 지원하는 ‘공감도서’로 취지가 바뀌어 학술도서보다는 대중교양서적들 만을 위한 정책으로 변질될 수 있어 우려된다. ‘학술도서’와 ‘공감도서’는 공통분모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일반 독서 대중들의 눈이 쉽게 가는 곳은 말랑말랑한 교양서일 수밖에 없다. 일반적인 접근이 까다로운 기초학술 서적들을 학술출판사들이 출간하려면 최소한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결핍이 발생하면 출판계도 기초학술서적 출간에 충실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논리다. 듣고 보니 학술출판사들이 지금 이중삼중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게 허튼말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기초학술서 정부 지원의 의미
학술출판은 출판사와 저자가 함께 걸어가는 지식의 험로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학술서 출판시장은 번역서가 압도적이다. 좋은 책을 번역해 공유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학술 쪽이라면 국내의 역량 있는 저자를 발굴하고, 그 내용을 보완해서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작업도 소홀할 수 없다. 많은 출판사들이 이런저런 사정을 내세워 저자 발굴보다 외국서적 번역이란 간편한 방법을 택하는 관행도 재고할 시점이다. 개별 출판사들이 선택하고 결정할 사안이라 김 회장은 신중하게 대답을 들려줬다. “학지사의 경우, 번역서가 30~40% 정도고, 그 나머지가 저서로, 저서 부문을 많이 강조하고 있다. 번역서도 학문적으로 신선한 지식을 전달해준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봐야하지만, 기본적으로 한국 학술문화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지속적으로 저서 출판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협회 차원에서도 저서 출판을 장려하는 논의를 모색해나가겠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전반적으로 국내 저작 학술서들이 질적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함량 미달의 책을 들고 출판사를 찾아오는 연구자들도 있다고 김 회장은 지적했다. “우리는 단 100권밖에 안 팔리더라도 학술적으로 가치 있거나 꼭 필요한 책이라고 판단되면 출간한다는 방침이다. 그런데 도저히 책으로 낼 수 없는 정도의 문서로 출간을 부탁하는 난감한 경우도 많다. 서로 윈-원하기 위해서라도 튼튼한 기본기를 갖춘 저자와 만나기를 고대하고 있다.” 학술출판사는 역량 있는 저자를 발굴할 때 본업에 자긍심을 갖게 된다. 출판 상황이 단번에 개선될 수 없다면, 숨어 있는 저자들을 발굴해 이들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 게 점진적인 개선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협회가 산적해있는 현안들을 극복하는 한편, 역량 있는 저자들을 발굴하고, 키워내는 일도 함께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 ‘김진환 체제’의 행보를 주목하는 이유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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