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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세계화는 한국 인문학 발전에도 큰 도움 됩니다”
“고전 세계화는 한국 인문학 발전에도 큰 도움 됩니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5.28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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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古典 英譯 모색하는 최병현 고려대 한국고전번역센터 초대 소장

▲ 최병현 한국고전번역센터 소장은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고전의 영문 번역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아왔다. 『징비록』, 『목민심서』, 『태조실록』 등을 번역해 세계무대에 알렸으며, 이러한 업적들을 인정받아 2003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수여하는 제6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2010년 다산학술문화재단이 수여하는 제11회 다산학술공로상을 수상했다. 메릴랜드대 초빙교수, 캘리포니아대 풀브라이트 초빙교수 등을 지내기도 했다. 1988년 제1회 현진건문학상을 수상할 정도로 창작에도 조예가 깊다. 그와의 인터뷰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 마련된 한국고전번역센터 소장실에서 21일 오전 10시 반부터 진행됐다.

고전 영문 번역 작업은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해야 한다. 거대한 흐름 속의 한 방울의 물방울이란 자기 인식이 있을 때라야 고전 번역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승정원일기』 영문 번역과 같은 일은,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잖은가. 장기적인 접근과 지혜가 필요하다. 더 많은 영문학자와 전문가들이 ‘한국 고전 세계화’ 작업에참여하길 기대한다.

내년에 정년을 맞는 최병현 호남대 교수(영문학)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원장 최용철) 산하 한국고전번역센터(이하 번역센터) 초대 소장으로 초빙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놀라운 일이다. 하나는, 대학 차원에서 한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해내겠다는 의지가 작용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최 교수가 실은 고려대와 아무런 인연이 없는 낯선 학자라는 이유에서다. 둘 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최 교수는 화요일 저녁 서울에 올라와 고려대에서 하루 묵고 이튿날인 수요일 번역센터에서 번역팀과 토론 미팅을 마치면 다시 광주로 내려가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은 작금의 대중적인 한류 흐름이 결국은 한국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 한국의 심층 문화를 본격적으로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작업으로 한국 고전의 세계화를 구상했다. 국내 대학으로는 최초로 설립한 번역센터가 이 구상을 실행하는 최전선이다. “한국 고전을 범세계적으로 보급, 확산하는 일이야말로 대중 한류보다 근본적이고 시급한 과제”라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지난 14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개소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끝을 알 수 없는 대장정에 나섰다.
번역센터는 △ 국내외 한국학 각 분야의 전문가와 공동 작업 시스템을 구축해 한국고전 영문 번역의 전문성 및 효율성 극대화 △ 해외 유명 대학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 번역결과의 질적 검증 및 한국고전의 범세계적 유통망 확보 △ 국내외 한국 고전 전문 번역 인력의 적극적인 발굴과 양성으로 지속적인 사업 추진의 기반 마련이란 세 가지 큰 목표를 내걸었다. 이것들은 서로 연관된 사안으로 그 중심에 ‘최병현 소장’이 있다. “내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내게는 정말 감사한 일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남은 평생 한두 번 더 고전 번역하고 끝났을 것이다. 이런 계기를 통해 후학을 양성하고 앞으로 한국 고전 번역 세계화를 위한 백년대계 초석을 마련할 수 있게 돼 참 다행스럽고 고맙다.”

시집 『피아노의 거문고』(1976)의 사상
최병현 소장은 컬럼비아대에서 영문학 석사를,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를 했다. 그의 말대로 그의 영문학은 한국문학을 발전시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는 1976년 『피아노와 거문고』라는 시집을 발표했는데, 그가 일찍부터 추구하던 서양문화와 한국문화의 조화와 결합 정신이 스며들어 있는 작업이었다. “언젠가 피아노와 거문고가 함께 합주하는 날이 올 것이라 확신했다. 나에게 영문학 공부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한 선택 행위였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금 왜 하필 번역센터가 필요하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오랫동안 외국 대학에서 외국 학생을 가르치면서 ‘한국에 관한 책’들은 제법 있었지만, 우리 목소리를 담은 직접적인 책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한국 고전을 영문으로 옮기는 일에 나섰다. 첫 작업은 1997년 착수한 서애 유성룡의 『징비록』 번역이었다. 이 책은 버클리대에서 2002년 결실을 맺었다. 다산의 『목민심서』도 번역해 캘리포니아대에서 2010년 출간됐다. 오는 6월 하버드대출판부에서는 『태조실록』이 출간될 예정이다(그의 책상 위에는 이미 영문판 『태조실록』이 놓여 있었다). 이렇듯 교재의 빈곤이 그의 고전 번역 작업을 지금까지 추동해 왔다.


그가 번역센터 소장을 수락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다. 해외 한국 교포는 남북한 인구의 1/10에 해당하는 700만 명 규모에 이른다. 이들의 자녀들이 한국 문화를 제대로 배울 수 있기는 한 걸까. 그들에게 ‘한국’을 가르쳐줄 수 있는 제대로 된 고전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진정으로 한국을 알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심층문화를 알려줘야 하는데 마땅한 방편이 없다는 것도 고민됐다. “한국인의 정신(spirit)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걸 알려주려면 우리 고전이 아니고서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와 같은 고전은 한국에 대한 존경과 존중, 한국문화의 위엄에 대한 이해 등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는 번역센터와 같은 공식 기관, 지성의 주체가 되는 대학 연구소가 장기적 안목으로 번역 작업을 해나가 게 옳다고 보았다.


한국 고전의 세계화, 영문 번역에는 몇 가지 동시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정당한 이해 성찰과 후속 조치, 그리고 번역을 감당할 전문인력 양성 등이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그런데 문제는 등록만 했지 이것을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작업은 찾아볼 수 없다는 거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화 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자랑만 할 게 아니라,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읽지 못하는 문화유산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최 소장은 무엇보다 20년 이상 개인적으로 쌓아온 경험을 체계적으로 전수해 고전번역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을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일은 단시일 내에 될 수 없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된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려면 10~20년 걸린다. 학위 따듯 단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서양의 고전을 다 알아야 하고, 번역하려는 언어를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화된 번역’이 중요하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한편 그 성과가 미국 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될 수 있을 정도로 공들이면, 그것이 고전 세계화의 기틀을 다지는 일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미 대학출판부나 다른 해외 대학에서 고전을 출간한다는 것만으로도 번역의 질적 수준은 검증된 것과 같다. 앞으로 미국의 대학이나 세계 유수 대학과 연계해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한국 고전 번역의 세계화에 중요한 일이다.”


그가 중심이 된 번역센터는 향후 일차적으로 7권의 고전을 미국 대학에서 출간할 계획을 세웠다. 박제가의 『북학의』가 한창 번역되고 있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내 다양한 전문 학자들이 이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기존의 국역 저작들과 원전을 상호 교차하면서 영문 번역의 묘미를 살려나가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어 연암의 『열하일기』도 조만간 번역에 착수하려고 한다. “기존 번역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작업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英譯을 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가능하면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는 최 소장은 하와이대 네드 슐츠 교수 등 해외학자 6명이 포함된 33명의 자문위원으로부터 다양한 조언과 지혜를 듣겠다고 귀띔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대목은 그의 번역관이다. 그는 번역을 끊임없이 진화하는, 마치 생물체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어떤 방안이 가장 효율적인 영문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지 계속 찾을 것이고, 그러면서 번역도 함께 진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그래서 번역은, 끊임없이 텍스트에 대한 해석, 재해석을 계속하는 행위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시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질적 번역을 수행해야하는 의무감이 우리에게 있다.”


그는 혼자 20년간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묵묵히 고전을 번역하는 일에 매달려왔다. “지금까지 혼자 번역 작업을 해왔는데, 이제부터는 이곳 연구자들과 공동작업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싶다.” 그런 최 소장에게 돌직구를 던졌다. 한국 고전이 세계에 먹힌다는 확신이 있냐? 그는 20년 전 모든 것이 불확실하던 『징비록』 번역 작업을 회상했다. “처음 내가 겪은 도전은, 한국 고전이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 불확실성이 나를 굉장히 힘들게 했다. 번역을 마쳤지만, 과연 미국에서 받아들여질까, 제대로 읽혀질까 하는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확신했다. 왜? 『징비록』은 한국의 이야기이자, 동아시아 주변국들의 이야기다. 모든 세계인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부분 즉, ‘국란(National Crisis)’관한 서사였기 때문이다. “국가의 위기는 어느 국가나 직면하게 마련이다. 한국의 과거 경험을 통해 자신의 위기에 마주할 수 있는 지혜를 모색할 수 있다. 그래서 확신했다.”


최 소장은 자신의 고전 번역 작업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가 한국 고전을 받아줄 것인가 자문하고 또 자문한 결과 스스로 마련한 원칙이었다. 왜 서양인들이 한국 고전을 읽어야 하나, 하는 문제를 해명할 수 있어야 했기 때문. 그래서 그는 ‘시간성(초시간성)과 보편성(지역성)’이란 두 원칙을 세웠다. 『징비록』 영문판이 그런 원칙의 소산이었다. 그는 이 원칙을 번역센터의 번역 작업에도 적용하려고 한다.

“번역은 끊임없이 진화” … 인문학자들 참여 기대
그의 지적대로, 한국 고전의 영문 번역이란 작업은 사실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이다. 어렵기 때문에 누가 선뜻 나서지도 않는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어렵고, 소득도 별로 없다. 그러다보니 투자하려는 학자들이 드물다. 사실 최 소장의 『태조실록』을 하버드대출판부에서 출간할 수 있었던 데는 먼저 번역했던 『목민심서』 영문판을 우연하게 접한 김병국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감식안이 작용했다. 그가 『목민심서』 영문판을 읽고 어느날 찾아와 도움을 자처했다는 것이다. “정부나 민간 기구 등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면, 이렇게 하나의 역사가 새로 열린다.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라고 ‘관심’을 강조했다.


최 소장은 호레이스의 ‘천천히 서둘라’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나는 미래를 위해 한 두 개의 말만 적었을 뿐, 나머지는 후세가 채워라. 나는 한 줄만 쓴다”라는 미국 시인 휘트먼의 싯구도 즐겨 인용한다. 자신의 작업은 초석을 다지는 일일 뿐이라는 완곡한 표현이다.


그는 확실히 시간의 연단을 거쳐온 학자였다. “번역 작업을 해보면, 책마다 겪는 큰 경험, 에베레스트산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다. 그걸 넘지 않으면, 나는 없다. 그것을 넘어섰을 때, 하나의 아이덴티티가 분명해지는 걸 느껴왔다. 항상 그랬다. ‘서퍼링(suffering)’이란 거, 지나고 보면 신이 준 큰 축복임을 알 수 있다. 시골에 있는 학교,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가르치면서 보직하면서 틈틈이 『목민심서』를 10년에 걸쳐 번역했다. 틈만 나면 매달렸다.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의 녹록치 않은 내공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그는 고전 세계화가 한국 인문학의 새로운 부흥과 연결될 수 있다는 말을 불쑥 던졌다. “한국 고전의 영문 번역 작업은 진정한 의미에서 문사철 등의 인문학 발전, 학문 풍토를 새롭게 조성하는 일이 되리라고 믿는다. 학자들이 자신의 영역을 초월해서 큰 틀, 거시적인 안목을 갖추는 일이기 때문이다. 번역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번역 작업을 함께 해나가는 과정에서 무수한 학문간 대화와 상호 이해가 전개될 것이다. 고려대가 시동을 건 이 작업이 한국 인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또 듣고 보니 무릎을 탁 치는 지적이었다. 새로운 출발점에 선 그의 지적 여정이 궤도에 안착하길 기대해야 하는 이유를 또 하나 확인한 순간이었다.

글·사진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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