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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내박사를 뽑아야 하나
왜 국내박사를 뽑아야 하나
  • 강남훈 한신대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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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강남훈/한신대·경제학

IMF 위기가 닥치기 전 시내 한 서점에서 ‘국산품 애용이 나라를 망친다’라는 정도의 제목을 가진 책을 본 적이 있다. 당시 부총리였던 강경식씨의 저서였다(그는 경제위기의 책임자로 몰려서 기소까지 됐으나 법률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IMF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경제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원동력은 국민들의 애국 운동에서 나왔다. 나는 우리 국민들이 금반지, 금목걸이, 금귀고리 등을 들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전 세계로 방영된 것이 한국경제의 신인도를 회복시키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흔히 IMF 위기의 대내적인 원인으로서 흔히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성급한 규제완화, 급속한 대외개방 등을 들고 있다. 경제구조가 미국과 다른데도 미국의 세계화와 시장화 정책을 그대로 시행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경제정책 담당자들이나 경제학자들이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경제이론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IMF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였지만 동시에 한국 경제학의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산품을 생산하는 것은 오늘날과 같이 세계화된 경제구조 하에서도 여전히 중요하다. 모든 제품을 그렇게 할 필요는 없지만, 적절한 정도의 제품은 반드시 국내에서 생산해야 한다. 국내에서 생산해야지만 수출할 수 있고, 수출을 해야지만 필요한 외국제품을 수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국내에서 이루어지는 생산을 통해서 국민들의 고용과 소득을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도 산업공동화 현상을 두려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이다.
지식의 경우에도 적절한 정도는 국내에서 생산돼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유들을 생각해 보자. 첫째로,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돼야 하는 지식이 상당히 많이 있다. 미국에 유리한 이론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주로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 속하는 지식들 중에서 그런 것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둘째로, 지적재산권처럼 오늘날에는 지식 자체가 상품으로 변하고 있으며, 국가경쟁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자연과학에 속하는 지식은 대부분 여기에 해당된다. 이러한 핵심 상품은 가능한 한 스스로 생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산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도로, 철도, 항구 등 사회간접자본이 갖춰져야 하고, 원료나 부품을 만드는 기업과 최종생산물을 만드는 기업 사이에 수직적인 관계가 구축돼야 하며, 유사한 제품을 만드는 기업들 사이에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국산품 애용 운동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을 통하여 이러한 재생산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지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지식의 생산을 위해서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과 더불어서, 지식생산자들 사이에 수직적, 수평적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이러한 재생산구조가 아직 만들어지지 못한 상태이다. 협조와 경쟁 같은 수평적 관계를 보자. 국내 학자의 연구결과는 잘 인용하지도 않으면서 외국 학자가 한 말은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이 우리 학계의 풍토이다. 심지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외우는 경쟁까지 하고 있다.

수직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국내 박사는 취업할 길이 없으니까, 대학원에는 우수한 학생이 오지 않고 있다. 서울대에서조차 대학원생 미달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교수가 아무리 훌륭한 미국 박사라고 할지라도, 함께 실험하고 토론할 대학원생이 없다면 더 이상 좋은 업적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깨뜨리기 위해서 지식 생산에서도 제품 생산에서와 마찬가지로 국산품 애용 운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학문 분야별로 교수의 일정한 비율을 국내박사로 채용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채용되는 교수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식의 자율적인 재생산구조를 만드는 확실한 지름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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