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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분야 해외 선도 연구자들은 SCI 논문 모른다”
“소프트웨어 분야 해외 선도 연구자들은 SCI 논문 모른다”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4.05.26 1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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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_ 제1회 BK21 포럼서 평가방식 개선 요구 쏟아져

“BK21 사업이 15년 동안 오는 동안 평가지표 면에서는 거꾸로 왔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바뀌고 장관 바뀔 때마다 평가지표가 바뀐다.” “국가가 지표를 정하면 조선팔도 모든 대학이 거기에 맞춰야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처럼) 동일한 잣대를 들이대 머리가 길면 잘라버린다.”

지난 21일 대전 우송대 예술회관에서 열린 ‘제1회 BK21 포럼’은 교육부가 주최한 여느 토론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BK21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교수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발제자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굳이 숨기지 않았다. 이날 포럼은 내년에 있을 BK21 플러스 사업 중간평가를 앞두고 평가방식 개선과 사업 구조 개편에 대한 현장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1일 대전 우송대에서 열린 제1회 BK21포럼에서는 평가방식 개선과 관련해 교수들의 허심탄회한 지적들이 쏟아졌다. 지정토론자들이 의견을 밝히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 한국연구재단

주 관심은 역시 평가방식이었다. 발제를 맡은 정출헌 부산대 교수(한문학과)는 “사업 취지에 맞게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무엇보다 대학원생이 연구와 교육에 전념할 수 있고 교수들이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계량적 평가가 아니라 질적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논문의 양적 평가는 만점제도를 도입한다든지 대표업적을 내서 질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연구비 수주하는 데 집중하면 학생들에게 집중할 수 없다”며 “연구비 수주와 같은 불필요한 항목, 사업단장 능력과 같은 불가능한 항목은 평가지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채호 서강대 교수(물리학과)는 ‘논문 한 편당 100%’라는 평가지표가 공동연구를 막는 부정적 효과가 있다는 점을 거론했다. 지금은 교수 1명이 쓰든 2~3명이 쓰든 다 논문 한 편당 100%로 환산된다. 이 때문에 “창의적 연구를 위해서는 공동연구가 많이 필요한데도 공동연구를 하면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임 교수는 “질적 수준을 올려야 하는데 평가기준은 양적인 것을 강조하고 SCI 논문을 강조한다. 시간을 들여서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질적 평가에 대한 요구는 토론자들도 다르지 않았다. 김익수 전남대 교수(식물생명공학부)는 “그해에 성과를 내서 그해에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참여 교수들 사이에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산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학술역량 강화를 유도하는 평가지표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나가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안희돈 건국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질보다는 양을 위주로, 빨리 나올 수 있는 성과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질적 저하가 예상된다”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학문 다양성을 존중해서 분야별로 저술이나 보고서, 세미나나 학회 발표 등도 정성평가를 해서 반영해 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SCI 논문 위주의 평가에서 벗어나 학문 분야별 특성을 반영한 평가지표를 개발해야 한다는 비판은 이공계 안에서도 나왔다. 엄영익 성균관대 교수(정보통신공학부)는 “소프트웨어 분야의 해외 선도 연구자들 동향을 보면 그분들은 SCI 논문은 알지도 못한다. 90년대 이후부터 해외 선도 연구자들은 모두 컨퍼런스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분야의 교수가 되려면 컨퍼런스 논문 1편만 있으면 된다. SCI 논문은 10편 있어도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공과대학 혁신위원회가 지난 4월 ‘공과대학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산학협력’을 강조한 것을 두고서도 우려가 제기됐다. 평가지표가 다시 산학협력으로 급격하게 쏠리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포럼에서 축사를 한 이준식 공과대학 혁신위원장(서울대 연구부총장)은 “공과대학 교수들이 발표하는 연구 결과는 기업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며 “SCI 논문뿐 아니라 국문 논문도 연구 성과에 포함시키고, 산학협력 실적만으로도 BK21 플러스 사업과 같은 재정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보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정토론자로 나선 민동준 연세대 교수(신소재공학과)는 “한 대학에서 연구와 교육, 산학협력을 다 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SCI 논문을 강조했다가 다시 1년 정도의 시간을 주고 산학협력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무리”라고 말했다. 포럼에 참석한 한 전북대 교수는 “2단계 BK21 사업을 하면서 많은 교수가  산학협력에 대한 어려움을 지적해 BK21 플러스 사업에서는 산학협력 지표가 약화됐는데 1년 반 만에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산학협력은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출발부터 공정한 게임이 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말했다.

대전=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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