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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적 훈련 없는 사회학, 보편사적 연구 가능할까요?”
“이론적 훈련 없는 사회학, 보편사적 연구 가능할까요?”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5.20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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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 과정을 ‘환원근대’로 읽어낸 김덕영 카셀대 교수

내재적 발전론, 식민지 근대화론, 압축적 근대화론…. 그간 한국 학계가 내놓은 ‘한국의 근대화 담론’이다. 이 담론들의 결정적 문제는 바로 근대화 과정을 주로 ‘경제’에만 초점을 맞춰 논의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한국 학계의 ‘이론적 빈곤’도 크게 작용한다.


고전사회학을 전공한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이러한 기존 논의를 비판하면서, 한국 근대화 과정을 ‘환원근대’로 규정하고 나서 눈길을 끈다.


그는 『환원근대: 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도서출판 길 刊)에서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 형태로 전개된 한국의 환원근대를 분석하면서, 박정희 정권 시대에 오로지 ‘경제’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다 해결된다는 식의 접근이 강조됐고, 이것이 결과적으로 허약한 근대화를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책을 올해 나올 다른 책 『사회의 사회학』과 함께 막스 베버 탄생 150주년을 기념해 준비해왔다. 

김덕영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폭염의 8월이었다. 그때 그는 700쪽이 넘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서출판 길)을 막 번역해 출간했을 때였다. 루터와 칼뱅(신학)에 관한 체계적인 지적 훈련을 마치고 나서야 이 대작의 번역에 뛰어들었을 정도로 그는 지적 엄밀성을 고수하는 학자다. 그런 지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100년도 훨씬 지난 베버의 학문적 작업을 모국어로 옮겨낸 데는 그의 말대로 ‘한국 사회와 한국 대학의 자기성찰’을 위한 동기가 크게 작용한다.


당시 김 교수는 압축성장에 집착한 한국사회가, 베버가 말했던 ‘금욕’의 의미를 제대로 성찰하지 못한 채, 물질적 배금주의에 빠져버렸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의 근대성을 ‘환원적 근대성’으로 읽어내는 저술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2014년 5월, 그는 다시 한 권의 책을 들고 돌아왔다. 『환원근대: 한국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도서출판 길, 384쪽, 28,000원. 이하 『환원근대』)가 그것이다.


정동 근처에서 다시 만난 그는 4년 전에 비해 조금 더 노숙해 보였다. 흰 머리가 더 많이 났고, 얼굴도 조금 검게 탔다. 예의 그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진단은 더 강도가 높아졌다. ‘세월호’ 사건을 경험한 뒤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세월호’ 사건은, 그가 새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환원근대’라는 한국의 취약한 근대화가 필연적으로 불러온 재난인 동시에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경제와 돈이 우선시 되는 곳에 개인, 생명, 존엄 등의 가치가 제대로 자리할 수 없음을 이처럼 비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또 있을까. 그가 말하는 ‘환원근대’가 귀에 쏙 들어온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독일 카셀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의 정확한 직업은 ‘저술·번역’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3개월간의 카셀대 강의를 마치면 그는 한국에 돌아와 연구와 저술, 번역 작업에 몰두한다. 그런 그가 2007년부터 한국 지식사회에 내놓은 책들의 목록에는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의 풍경 11가지』(저서, 2007, 702쪽),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번역서, 2010, 734쪽), 『막스 베버: 통합과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을 찾아서』(저서, 2012, 1008쪽), 『돈의 철학』(번역서, 2013, 1092쪽) 등이 올라 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그는 이론사회학과 고전사회학 관련 독일 사회학을 그동안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일을 해왔다.

‘A4-10’의 한국 지식사회의 현주소
그는 사회학 이론을 천착하는 연구자다. 이론사회학에 정통하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막스 베버, 짐멜, 나아가 하버마스와 같은 이들에까지 시선을 고정시켜야 했다. 그렇지만 그가 전공한 이론사회학, 고전사회학은 지금 한국 사회학계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공 연구자도 없고, 이 분야를 찾는 학문후속세대도 드물다. “한 사회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실증 분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론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론적인 지적 훈련이 없다보니, 심지어 사회학과를 없애겠다는 움직임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문제 삼지 못한다.

깊은 이론 연구가 부재한 탓에 한국 사회학계는 갈수록 멀리 내다보고 길게 호흡하며 다양한 삶의 영역을 아우르는, 거시적이고 장기적이며 보편사적인 통합과학적인 논의와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특정한 변수들의 관계를 따지는 통계적 방법과 진보냐 보수냐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이념사회학이 한국 사회학의 ‘얼굴’이 됐다”라고 통박한다. 이런 한국 사회학계, 나아가 지식사회를 두고 그는 ‘A4-10’이라고 비판한다. 딱 그만큼의 호흡과 분석, 아이디어, 담론 정도라는 뜻이다. 논문은 많지만 모노그라프를 좀처럼 생산하지 못하는 지식 불임 사회를 지칭하는 기막힌 비유다.


이 점에서 그가 상재한 『환원근대』는 그동안 그가 밟아온 경로를 조금 더 확장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저작이다. 그동안 한국 학계에서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 내지 근대성 문제를 주로 ‘경제적’ 시각에서 분석해왔다. 학계가 내놓은 근대화론은 1980년대의 식민지 근대화론, 내재적 근대화론(발전론), 그리고 압축적 근대화론(장경섭 교수), 동원된 근대화론(백낙청, 조희연 교수) 등이 있지만, 이들 학자들의 시각 역시 경제주의적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조금 아픈 말로 한다면, ‘이론적’ 기초 없이 한국사회를 분석한 감을 주는 작업들이라 할 수 있다. 김덕영 교수는 이번 『환원근대』에서 우리 학계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이론적’ 빈곤에 따른 한국사회 근대성 담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한국 근대화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개념, 즉 ‘환원근대’를 제시함으로써 향후 한국사회 성격 문제에 중요한 테제를 던졌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론사회학 연구자의 새로운 도전
물론 김덕영 교수의 『환원근대』 작업 바탕에는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 그리고 에밀 뒤르켐 등의 고전사회학 이론이 깔려 있다. 나아가 위르겐 하버마스와 니클라스 루만 등 당대 거장 사회학자들의 이론에 대한 천착도 스며들어 있다. 그는 이들 거장 고전사회학자들의 이론을 통해 ‘근대성’이라는 것이 ‘보편사적’ 측면에서 다뤄져야 하는 것임을 명료하게 정리한다. 즉, 근대라는 것이 ‘경제’라는,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한 요소만으로 또는 경제가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경제 이외의 법, 문화, 노동, 여성, 인권, 예술 등의 것들도 따라서 발전한다는 논리를 치밀하게 반박할 수 있는 토대를 확보했다. ‘환원근대’를 두고 한국 사회학계가 만난 고도의 이론적 시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점들 때문이다<우측 기사 참조>.
김 교수는 지금도 동시 다발적으로 다양한 저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게오그르 짐멜 모더니티 담론 시리즈 1: 돈』, 『사회의 사회학』(가제), 『게오르그 짐멜 선집 4: 개인법칙』, 『사상의 고향을 찾아서: 독일 지성기행』, 짐멜의 또다른 대표작인 『렘브란트』, 그리고 『개인들의 사회』 등의 저술(번역)을 진행 중에 있다.


근대화의 핵심을 개인화와 사회적 기능의 분화로 이해하는 그가 거시적 시각의 저술들을 생산해낼 수 있는 동력은, 그가 일찍이 세례받은 ‘이론사회학/고전사회학’이라는 탄탄한 이론의 힘에 있음이 틀림없다. 그는 지금, 이론의 천착에서 서서히 한국사회 전체를 조명하고 장기적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실험 분석에 도전하고 있다. 『환원근대』가 학계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지, 어떤 논쟁들이 심화될 수 있을지 지켜보자.



환원근대란?


저자는 근대화 과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성장의 문제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역사 발전과정이라는 데에서 인식의 출발점을 찾는다. 이론적 근거는 바로 막스 베버다. 베버는 1920년에 출간한 『종교사회학 논총』 제1권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저자는 근대화 과정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성장의 문제를 넘어서는 복합적인 역사 발전과정이라는 데에서 인식의 출발점을 찾는다. 이론적 근거는 바로 막스 베버다. 베버는 1920년에 출간한 『종교사회학 논총』 제1권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보편사의 문제들을 근대 서구 문화 세계의 후예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정당하게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 아래 다루게 될 것이다. 즉 어떠한 상황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연결돼 작용한 결과로 하필 서구의 터전에서 그리고 여기에서만―적어도 우리 서구인들이 흔히 표상하듯이―보편적 의의와 타당성을 지니는 방향으로 발전한 문화 현상들이 출현했는가?”


여기서 베버가 ‘보편사’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굳이 ‘보편사의 문제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베버가 보편사, 즉 인류 역사를 어떤 특정한 측면이 아니라 국가, 관료제, 봉건주의, 시민사회, 법, 자본주의, 도시, 시장, 종교, 예술, 과학(학문), 에로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다룬다는 것을 암시한다. 저자 역시 한국 근대화 문제를 ‘경제적 근대화’만의 측면이 아니라 정치적 근대화, 문화적 근대화 등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측면에서의 관점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근대성 담론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경제적 근대화 담론 논의에서 이제는 ‘사회적 근대화’ 담론 논의로 전환해야 한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환원근대’란 무엇일까. 그의 논리를 압축하면, 한국 근대화의 모든 요소가 오로지 ‘경제’ 영역으로만 ‘환원’됐고, 그 결과 경제성장의 물신화가 한국사회를 지배하면서 ‘근대의 갈등과 비극’(짐멜)이 고조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근대화의 모든 요소가 ‘경제’라는 영역 하나로 ‘환원’되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이 시기에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음에도, 아니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영역과 그 밖의 경제 내적 영역 및 경제 외적 영역이 점점 더 분리되고, 또한 전자가 점점 더 빨리 발전하면서 후자를 압도하면서, 이들에 대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하게 됐다. 경제성장이 개인들의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의 물적 기반이 된 것이 아니라 자기 목적이 되고 자체적인 가치가 되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경제성장의 물신화다.

 
‘환원근대’는 이것을 수행한 구체적인 추동세력인 국가와 재벌이 중심됐는데, 저자는 이를 두고 ‘국가-재벌 동맹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개념어로 제시하고 있다. 학교교육과 가정은 이러한 체제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했고, 개인보다는 집단주의 문화가 더 중요시됐다. 인간의 영혼과 정신 순화기능을 담당해야 할 기독교 역시 ‘환원근대’의 전도사로 역할함으로써 온 사회 모두가 오로지 ‘경제’로 환원된 체제를 살았다.
결론적으로 한국 근대화 과정은, 근대화 과정의 주체 또는 담지자의 측면에서 국가와 재벌로 환원된, 이중적 근대화 과정이다.

분화와 개인화를 근대화의 중요한 지표로 전제한 김덕영 교수의 논리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화는 ‘①경제가 곧 근대이고 경제성장이 곧 경제다. ②국가와 재벌이 곧 경제다. ③경제가 근대화되면 경제 외적 영역도 근대화된다. ④전통은 근대의 토대가 돼야 하거나 근대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등 네 가지 차원을 포함한 ‘환원근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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