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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부산아시아경기대회기념 인문사회분야 국제학술회의’ 개최한 이훈상 동아대 교수
인터뷰 :‘부산아시아경기대회기념 인문사회분야 국제학술회의’ 개최한 이훈상 동아대 교수
  • 설유정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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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10:06:30

2002 부산아시아경기대회기념 국제학술회의의 인문사회 분야 회의가 ‘지역 정체성, 다문화주의, 그리고 문화권력: 아시아적 시각’을 주제로 지난 25일부터 26일에 걸쳐 개최됐다. 한국문화인류학회(회장 최협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와 함께 이 회의를 주관한 동아대 인문과학연구소의 이훈상 소장(동아대 사학과 교수)을 통해 이번 학술회의의 의미를 살펴봤다.

△체육행사에 인문학이 나선 것이 이례적으로 보입니다. 이번 학술회의의 바탕이 되는 문제의식은 무엇입니까.
“한국에서 인문학이 어떤 사안에 대해 이슈를 만들어 조직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론처럼 즉자적 대응을 하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는 전반적으로 ‘성찰’하는 분위기가 모자랍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큰 규모의 행사를 치를수록 그 의미를 성찰하는 역할을 인문학 및 예술이 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국제적 행사일수록 연구자 개인의 생각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학술회의의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프로파간다가 갖는 위험성은 뛰어넘으려 노력하면서 이번 행사의 의미를 더욱 강화시키기도 하고 문제삼기도 하겠다는 것이 저희들의 입장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의 다원주의 및 다문화주의 성숙 정도를 평가한다면.
“아시아 각국은 현재 민족간의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그런 경험을 제대로 가져보지도 못했다고 할 수 있죠. 관광이나 운동경기, 영화관람, 음악감상 등으로는 살을 부대끼며 겪는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없고 그저 피상적인 개념에만 그치기 쉽습니다. 외국인 근로자 학대 문제 등은 이런 미성숙한 이해에서 나오는 산물입니다.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행사도 국력, 경제 성장, 결속력 과시와 같은 방식으로 여론몰이 돼온 선례가 있습니다. 한국사회는 이처럼 ‘우리 것’ 만들기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다름’에 대한 이해나 교육이 너무 부족하다고 봅니다. 근대화와 개발의 속성에 발맞춰 ‘국민국가 이데올로기’를 국민에게 주입시키는 데 주력하다보니 다문화에 대한 이해는 이제 그 밑에 완전히 깔려버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해 화제가 됐습니다만, 다문화주의적 관점에서 이번 북한 참가와 통일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북한과 남한은 이미 50년 이상 서로 다른 체제와 경험을 축적해왔습니다. 이제는 상당히 이질적인 두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죠. 따라서 좀더 현실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일례로 탈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적응하는 데 거의 대부분 실패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의 지력(知力)이 현재 남한에 못미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사회를 민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동질화하려 하다보면 오히려 통일 이후에 후유증을 더 크게 앓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북한이 우리와 달리 오랫동안 쌓아온 체계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를 무기로 북한 사람을 남한 사람들의 ‘노비’로 전락시킬 위험도 큽니다. 따라서 아무 대안도 없는 ‘동질성’을 강조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통일의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정치적 의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에스닉 그룹’에 대한 저희 연구방식이 한 방법이 되겠죠.”

△아시안게임 등 국제체육대회는 서구화, 다문화 파괴를 가져오기도 한 근대화의 산물입니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가 더 의미깊기도 하고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질적인 것들을 더 높은 차원에서 공존시키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낯선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역사적 경험을 갖지 못한 한국사회는 앞으로 많은 시간과 대가를 치르면서 이것을 배워나가야 할겁니다. 아시안게임도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행사 자체만으로 한국사회의 문화와 가치가 한단계 성숙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술대회는 아시안게임이라는 표면적 의미를 넘어서서 그것을 ‘낯설게’ 봄으로써 그 이면에 가려진 여러 함의들을 재성찰하는 데 그 목표가 있습니다. 다른 민족집단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한국사회에 새로운 이슈와 화두를 던지고, 거기서 나오는 결과물들을 다시 ‘학문화’ 하겠습니다. 이번 대회가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 여는 첫 국제행사인만큼 지적 성찰의 힘은 아직 부족하다고 보고, 이 부분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설유정 기자 sy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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