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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춘추필법’ 왈, “고전 앞에 쫄지 마라!”
21세기 ‘춘추필법’ 왈, “고전 앞에 쫄지 마라!”
  • 교수신문
  • 승인 2014.05.19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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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_ 『동양 고전과 역사, 비판적 독법』 천쓰이 지음|김동민 옮김|글항아리|348쪽|16,000원


고전을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고전은 곧 죽은 책이
돼 버린다. 고전을 인간의 삶의 지혜가 담긴 책으로 대해야만 비로소
살아 있는 독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고전의 가치는 내게 달려 있다.


이 책의 원제는 ‘草橋村에서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하다(草橋談往)’이다. 초교촌은 중국 북경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저자가 중국의 과거 역사나 철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쓴 글이다. 저자 스스로는 책의 성격을 독서 노트라고 간단하게 규정했지만, 주제의 범위나 내용의 깊이 등이 에세이나 수필과 같이 만만하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 결코 아니다. 그 내용 중에는 광범위하게 문사철을 아우르고, 동서양의 역사와 미시적인 중국 역사를 실증적 자료로 접근하는 등 거의 전문 학술 서적을 방불케 하는 주제들도 보인다. 그렇지만 이 책은 여타의 전공 서적과는 차별화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가치이자 일독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책에는 고전과 역사에 대한 저자만의 독창적인 시각과 독법이 담겨 있다. 또한 그 시각과 독법의 이면에서 고전과 역사에 관한 방대한 자료와 객관적인 사료에 근거한 치밀하고 실증적인 논리, 시대를 고민하는 지식인의 진지함과 문제의식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과 역사 읽기를 단순히 상식이나 교양을 쌓는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을 거부한다. 고전과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들이 우리의 현재적 삶과 연속선상에 있음을 직시해야 하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와 같은 살아 있는 독서야말로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삶의 활동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죽도록 책만 읽거나(死讀書),죽은 책을 읽거나(讀死書), 책만 읽다가 죽지(讀書死) 마라.” 이것이 바로 저자가 강조하는 살아 있는 독서의 방법이다.

“死讀書, 讀死書, 讀書死 하지 마라”
천쓰이는 현대 중국의 지식인으로서 중국이 전통사회로부터 현대사회로 자연스럽게 변화되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의식과 행위의 연속적 흐름이 단절되지 않고서는 결코 현대사회로의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죽은 책만을 읽던 환경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독서를 한 이후부터 그것을 깨달았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에게 살아 있는 독서란 과거의 역사와 고전의 진실 속에서 현재의 우리를 발견하는 것이다.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인 삶의 형태나 사고의 방식 등이 현재의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그 내면에 깊숙이 내재해 있는 근원적인 요소, 그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부패와 모순의 뿌리를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해야만 비로소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가 새로운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살아 있는 독서야말로 인간의 다양한 삶의 활동 중에서 가장 절실하면서도 중요한 실존의 문제라고 인식했다.


이러한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저자는 고전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를 상당히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다만 그가 비판을 위한 비판에만 그쳤다면 이 책은 전혀 읽을 가치가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보다 독창적이고 생산적인 독법의 방법을 제시한다. “고전을 읽을 때, 절대로 무릎을 꿇은 채 읽지 말고 편한 자세로 읽어라!” 지금은 위진 시대의 혜강(???康)이나 명나라 때의 이지(李贄) 등이 성인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던 그런 시대가 아니다. 고전을 높이 받들어 숭배하는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 고전은 곧 죽은 책이 돼 버린다. 고전을 인간의 삶의 지혜가 담긴 책으로 대해야만 비로소 살아 있는 독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결국 고전의 가치는 내가 그 책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고전의 언어를 신성불가침한 성인의 말씀이 아니라, 일상적인 우리 삶의 언어로 접근하라고 주문한다.


저자는 역사의 진실을 대면하는 독법도 제시한다. “역사는 제멋대로 화장하여 꾸밀 수 있는 여자아이가 아니다!” 역사의 표면에 덧씌워진 조작과 미화, 그 왜곡의 현장을 정확하게 포착해 타파해야만 비로소 진실된 역사의 속살을 대면할 수 있다. 생생한 역사 현장의 모습과 그 속에서 치열하게 살았던 인물들의 삶을 발견하는 순간, 개인들은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삶을 기획할 수 있고, 사회 전체는 그 역사의 진실을 반성하고 거울삼아 보다 현실적이고 발전적인 미래를 기획할 수 있다.

죽림칠현의 우아한 낭만이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투쟁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사고전서』의 편찬이 국가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문화유산이 아니라, 책과 문명의 가혹한 학살의 현장이라는 점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인간 삶의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제고해볼 것이며, 현실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냉철한 시선으로 다시 한 번 바라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를 읽는 살아 있는 독법이다.


고전과 역사에 대한 이러한 독법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특히 최근 한국 사회에서 고전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인문학 독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절대불변의 진리? 하찮은 유물될 수도
수많은 인문 고전 독법이나 책읽기와 관련된 서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단지 고전은 좋은 책이기 때문에 많이 읽는 것이 좋다고 말할 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고전을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부터 출발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낀다고 토로한다.


저자는 말한다. 고전에 대해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든, 내가 직접 읽고 느끼지 않는다면 그 고전은 죽은 책이며, 나에게 전혀 의미가 없는 종이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담력과 식견을 가지고 책의 정밀한 의미를 드러내 밝히며, 옳고 그름을 평가하고 판단하여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고전의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를 삶의 가치로 환원하는 것은 곧 독자의 몫이다. 결국 고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독자가 어떠한 태도로 대하는가에 따라서, 어떤 이에게는 살아서 생동하는 현재의 소중한 진리로 다가올 수 있고, 또 어떤 이에게는 고리타분하고 먼지 날리는 과거의 하찮은 유물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선택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


책을 번역한 필자의 전공은 경학, 그 중에서도 춘추학이다. 춘추학에서는 春秋筆法을 강조한다. 그것은 역사의 현장과 인물에 대한 객관적 분석과 정확한 판단에 근거한 비판적 글쓰기의 방식이다. 이러한 필법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허상보다는 그 내면에 감춰진 진실에 주목한다. 한나라 때의 대표적인 비판 사상가 王充이 『論衡』을 저술한 다음, 자신의 책을 한마디로 ‘공허하고 거짓된 지식에 대한 질타(疾虛妄)’라고 규정한 것도 춘추필법의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독법은 고전과 역사에 관한 허상과 왜곡을 제거하고 그 속에 감춰진 진리와 진실을 찾으려는 현대적 의미의 춘추필법이라고 할 수 있다.

김동민 성균관대 학부대학 대우전임교수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이징대 고급진수과정(연강재단 중국학연구원)을 수료했다. 공저로 『동양철학의 자연과 인간』, 『동양사상』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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