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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건축이 문화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다면
주변의 건축이 문화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지 않는다면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5.13 17: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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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_ 누가 남대문을 망치고 있을까?

 


“주변의 건축이 문화재를 위해 스스로를 낮추며 도시적으로 실천할 때 비로소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가 된다.” 이경훈 국민대 교수(건축학)가 작심하고 한국의 도시 건축을 두고 일갈했다. 예컨대 ‘남대문(숭례문)’을 망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주변의 건축물들이라고 비판했다. 남대문을 에워싼 현대 건축물들이 남대문을 꼼짝못하게, 키 작은 존재로 위축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도시 전체가 살아날 수 있는 건축의 가능성을 모두 봉쇄해버렸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의 ‘남대문 읽기’는, 화재로 불타버린 남대문이 숭례문으로 되올아 온 저간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남대문-주변 건축의 관계망을 새롭게 조명했다는 점에서 음미할 만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이 교수는 최근 ‘도시를 살리는 건축 도시를 망치는 건축’이란 부제를 단 『못된 건축』(푸른숲)을 상재하면서 새로운 도시의 건축미학을 모색하고 있다. 이 교수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이자 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부회장으로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건축설계 방법을 연구해, 파주 헤이리의 랜드마크하우스를 설계하기도 했다. 과연 그가 남대문과 남대문 주변을 어떻게 읽어내고 있는지, 관련 부분을 발췌한다. 사진제공 푸른숲


역사가 가진 이야기 하나하나를 바닥과 벽에 새기며 만들어가는 것이 도시적 건축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본다면 남대문 주변의 건물들은 사뭇 아쉽다. 남대문을 토템이나 조상으로 여기는 입장에서 보면 패륜적이기까지 하다. 아무 기억이 없는 벌판에 새로운 도시를 세운다면 얼마나 한심하고 따분하겠는가. 이에 비하면 도시의 문화재란 얼마나 소중한가. 도시의 여러 장소가 하나같을 수는 없다. 평범하고 일반적인 장소가 있는가 하면, 의미가 뭉쳐진 곳도 있다. 장소마다 다른 태도로 대하는 것이 기본적인 도시계획의 수법이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문학이나 음악의 구조와 같다. 광장은 도시라는 음악의 절정부에 해당한다. 숨죽이고 달려오던 모티프가 그 생명력을 마음껏 뿜어내는 최고 절정의 파트가 광장이다.

광장은 ‘공화’라는 도시의 이상이 가시적, 형태적, 공간적, 건축적으로 구현된 장소다. ‘공공’, ‘공화’와 같이 막연한 개념, 이상으로만 머물던 사실이 육신을 얻게 되는 장소다. 도시는 개인의 양보를 전제로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공공뿐 아니라 양보의 주체인 개인에게도 이득이 된다. 함께 모여 사는 법을 발전시킨 현대 도시는 공화가 물리적으로 실현된 예다. 도시에서 교통신호를 지키는 작은 양보를 통해 모두가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공화는 도시의 성립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며, 도시 건축이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는 서울의 남대문과 파리의 개선문 광장 주변을 비교해보면 분명해진다. 같은 ‘문’이고 여러 개의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섬처럼 독립돼 있다는 점도 같아서 비교하기가 쉽다. 개선문 광장 주변의 건물들은 광장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다. 제 몸을 낮추기도 하고 찌그러지기도 하고 물러서기도 한다.


남대문 주변에 가장 먼저 지어진 건물은 북측의 흥국생명 사옥이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얘기로는, 5층 높이로 이 건물을 지을 때 다른 나라 건축가협회에서 항의를 했다고 한다. 한국 제일의 문화재 코앞에다 이렇게 높은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남대문 주변에서 가장 키가 작은 건물이 됐다. 건물의 형태는 차분하다. 남대문을 특별히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달리 무엇을 하지 않음으로써 남대문을 의식한다. 두 개의 가로가 갈라지면서 만든 땅의 모양을 따라 정렬돼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 존재를 의식할 수 없을 정도다. 건축역사학자 안창모 교수에 따르면, 이 건물은 1950년대에 미 공병단이 상가주택으로 설계해 지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는 호텔로 바뀌어 한동안 서울에서 호텔로 이름을 떨치다가 1980년대에는 상업은행으로, 그 후에는 흥국생명 건물로 이름표를 바꿨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건물이 단암빌딩인데, 건축 당시에는 도큐호텔로 지어졌다. 남대문에서 남산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오른편에 보이는 25층짜리 건물이다. 이 건물 현관에서 보면 남대문의 정수리가 훤히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데 자리 잡고 있다. 일본계 호텔로 지어져 한동안 고급호텔이었다가 1980년대에 일반 사무소 건물로 바뀌었다. 해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일본계 건물이 그토록 위압적인 태도로, 그것도 남대문 주변에 들어섰다는 것이 지금의 정서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에는 이보다 더한 일도 벌어졌다. 노출콘크리트로 단순하고 길쭉한 형태로 지었는데, 건물의 사면이 각각 남대문과 남산과 서울역과 도심을 향하고 있는 것이 하나같이 똑같은 모습이다. 사방이 똑같다는 것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그것도 대한민국의 배꼽이라는 남대문 광장에서. 일제가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해 명산마다 철심을 박았다고는 하지만 이보다 거대하고 견고한 철심은 없었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故 김수근이 설계했다.


길 건너편의 롯데손해보험 건물은 나 혼자가 아니니 괜찮지 않느냐는 투의 태도를 보인다. 기둥이 수직으로 강조된 조형에서 남대문의 높이 따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높이며 방향, 축, 재료 모두 제멋대로다. 제 땅에서 제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다. 주위를 의식하지 않고 염치없이 제 땅에서 제 욕심 채우기에 급급하다 보니 모서리를 남대문을 향해 삐죽 내밀고 있다. 법에서 정한 제한 사항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그 태도가 못내 섭섭하다.


시청 방향으로 오른편에는 그만그만한 건물들이 있고 그 건너편에는 삼성생명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주변에서 그나마 남대문을 의식해줬다. 가장 덜 못된 건물이다. 색상과 재료의 선택에서 다분히 남대문을 배려한 듯, 배꼽의 의미를 의식한 듯 보인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형태의 처리다. 건물 전체를 두 개의 덩어리로 나눠, 아래쪽 덩어리는 바로 앞에 면해 있는 가로, 즉 태평로와 나란히 뒀고, 위쪽 덩어리는 배꼽을 향하고 있다. 주변의 가장 중요한 장소나 건물, 또는 상징을 바라보게 배치하는 것 이상으로 건축이 할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하고 묻는 듯하다. 부끄럽게도 외국 건축 설계회사에서 설계했다.


상공회의소 건물은 가장 아쉽다. 증축된 건물인데 이전에는 분명 훨씬 나은 도시적 태도를 가졌기에 더더욱 아쉽다. 재료와 조형이 절제돼 있었는데 증축을 거치면서 훨씬 난잡하고 비도시적인 것으로 개악됐다. 게다가 이전의 건물은 커다란 아치 형태로 대칭을 이루며 정확히 남대문을 향해 있었다. 그 하얀 아치 사이를 짙은 색 유리로 막아 생긴 공간을 사무소로 만들었다. 대칭이 갖는 힘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대칭은 중앙에 강력한 의미의 지점을 만든다. 그 중심에 놓이는 것은 무엇이든 힘을 갖게 마련인데 거기에 남대문이 있었다. 숭례문을 숭고하게 만드는 일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건축으로, 형태로 보여줬다. 건물은 모양은 정갈한 육면체였지만 방향과 태도를 통해 국보 1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같은 건축 사무소에서 30년 만에 증축과 개축을 했는데 전체 재료를 유리로 바꾸고, 대칭을 이루며 남대문을 향해 있던 전체적인 조형을 의도적으로 흐트러뜨렸다. 우리가 과연 전진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런 관점에서 남대문 주변에서 가장 패륜적이고 반공화적이며 따라서 가장 반도시적인 건축물은 신한은행 본점이다. 힘은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하다고 하지 않던가. 제아무리 남대문을 의식하고 배려했다 한들 멀리 떨어진 건물이라면, 남대문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남대문과 가까이 면해 있는 건축물은 작은 몸짓 하나로 이 배꼽과 도시의 광장을 만들 수도 있고 파괴할 수도 있다. 신한은행 본점 건물은 남대문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무시하고 있다. 아니면,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르는 듯하다. 방향감각을 아예 상실한 채, 장소의 의미나 전체의 균형 같은 것에는 매우 무심한 모습이다.


이 건물은 남대문을 향해 그 옆구리를 흉하게 내밀고 있다. 땅 모양이 그러했고 그 안에서 최대의 용적을 찾다보니 그리 됐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공화의 개념과는 단단히 어긋나며, 앞서 말한 삼성생명 본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격문을 내건 바로 그 건물이, 숭례문 지킴이를 자처했던 건물이 말이다. 남대문이 ‘사망한’ 후, 다시 말해 화재로 붕괴된 후, 이 건물은 남대문의 쾌유를 비는 요란한 발광 간판을 내걸었다. 국민과 함께 남대문의 쾌유를 빈다고.
위선적으로 배려하기보다는 문화재를 도시의 중요한 자산,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자산으로 보고 도시를 조직하는 중심 요소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도시는 역사와 문화의 자부심을 한껏 높이면서 새롭게 발전할 수 있다. 이는 도시가 역사적 연속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인 삶의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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