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5 23:35 (목)
유전자는 결코 섬이 아니다
유전자는 결코 섬이 아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4.05.13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인간의 이기적 행동은 어디에서 유래할까. 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를 통해 ‘이기적 유전자’라는 글귀를 주조했다. 1976년에 출판된 『이기적 유전자』가 지식사회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도킨스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짜 넣은 로봇 기계라 할 수 있다.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기적 이용과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경쟁자 사이의 공격에서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싸움에서도 볼 수 있다.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는 유전자 자체를 유지하려는 목적 때문에 원래 이기적이며 생물의 몸을 빌려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동물의 이기적 행동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타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자신과 공통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한다. 성공한 유전자의 기대되는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이고 유전자의 이기주의가 이기적인 개체행동의 원인이라 주장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도킨스가 유전자를 기반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데 사용한 은유다. 유전자는 바위처럼 그 자체로는 이기적이지 않다. 유전자는 단독으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이기적’이란 표현은 ‘기회가 주어졌을 때’를 의미한다. ‘이기적’이라는 표현이 유전적 행동을 설명하는 유용한 은유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유전자, 단백질, 뉴런과 세포뿐만 아니라 사회 환경도 관여한다. 유전자는 결코 섬이 아니다.


유전자를 갖고 있는 인체의 각 세포는 이기적이지 않다. 실제로 세포들은 고도로 협력하며 그러한 면에서 세포는 공동체주의자다. 각각의 세포들은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으면 즉각 자살경로로 접어들게 된다. 가끔 이 규칙에서 도망쳐 나온 개인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암세포들이다.


도킨스에 따르면 유전자의 무례한 이기성에 기반을 둔 사회는 매우 불안정한 사회다. 그러나 ‘이기적’이란 단어는 잘못 선택한 듯하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보면 유전자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고 실제로 인간은 이타주의에 의해 행동한다. 그리고 이타주의는 문화에 의해 유도된다. 어떤 생물체가 자기를 희생해 또 다른 상태의 타자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행동할 때 그 생물체의 행동을 이타적이라 한다. 이기적 행동은 이것과 정반대의 효과가 있다. 이기주의의 ‘행복’은 ‘생존’으로 정의된다. 인간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 행동을 하도록 지시할지 모르나 우리의 전 생애가 반드시 그 유전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관대함과 이타주의는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특성을 뛰어넘을 수 있게 한다.


도킨스는 인간만이 학습되고 전승돼 온 문화에 영향을 받고 지배를 받는다고 주장했다. 동물의 일생에 걸친 행동의 대부분은 선택의 연속이다. 언제 어디로 이동해야 할지, 어디에 둥지를 틀지, 무엇을 먹을지, 언제 도망칠지, 누구와 짝짓기할지 등을 선택해야만 한다. 잘못된 선택은 동물의 적응도를 떨어트린다.
이기적 유전자 모델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인간 사회는 지식과 자원의 공유, 약자의 보호와 도덕에 대한 우월성 부여 등 인간 상호 간의 협력에 의해 진화한다. 인간의 행동은 신체 각 부분들이 지시한 특성의 조합이 아니라 인류애의 창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과학자들이 일본의 코시마 섬에서 일본원숭이(Macaca fuscata) 무리를 관찰한 내용이다. 연구자들은 바닷가 모래사장에 고구마를 던져놓고 원숭이들을 유인했다. 원숭이들은 고구마에 묻은 모래를 털어내려 시도했지만 고구마는 여전히 모래투성이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모(Imo)라는 어린 암컷이 고구마를 들고 해변으로 가서 물로 모래를 씻어냈다. 곧 이모의 형제, 그리고 놀이 그룹의 다른 어린 원숭이들도 이모의 행동을 모방했고 나중에는 그들의 어미도 고구마를 씻어 먹기 시작했다. 성체 수컷은 이 행동을 모방하지 않았으나 어미나 암컷 형제들부터 이 행동을 배운 어린 수컷은 자라면서 계속해서 고구마를 씻어 먹었다.


다음에 과학자들은 밀을 해변에 던져 주었다. 모래에서 밀 알갱이를 골라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모는 결국 해결책을 찾아냈다. 이모는 밀과 섞인 모래를 물에다 던졌다. 모래는 가라앉았지만 밀은 뜨게 돼 이모는 물 위의 알갱이만 걷어내 먹었으며, 이런 행동은 고구마의 경우처럼 곧 집단 내에 퍼져나갔고 다음 세대로 전수됐다. 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전수한 것이다. 일련의 고안된 행동은 집단 구성원이 공유하고 사회적 학습과정을 통해 전달된다. 즉 인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동물도 학습되고 전승돼 온 문화의 지배를 받는다. 학습된 행동이 공유되면 문화가 된다.

김환규 서평위원/전북대·생명과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