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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000년 고릿적부터 돈으로 사, 국내에선 多産·豊熟 의미해 품에 지니기도
기원전 3000년 고릿적부터 돈으로 사, 국내에선 多産·豊熟 의미해 품에 지니기도
  • 교수신문
  • 승인 2014.05.0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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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104_ 개오지

“해산연체동물의 복족류인 ‘개오지’라는 패류(고둥무리)가 은나라부터 진나라까지 적어도 1천4백여 년 간 돈으로 쓰였으며, 하고많은 재물에 관계되는 글자들(財·貨·貧·賤·賣買)엔 어김없이 ‘조개 패[貝]자’가 들어 있다. 제주도의 선물가게에서도 이 ‘개오지’를 팔고 있으니 눈여겨 볼 것이다.” 이는 본란(99회) 珍珠 이야기에 나간 글이다.


인간은 오랜 세월 동안 돈(화폐) 없이 물물교환으로 살아왔지만 점차 나누기 쉽고, 휴대하기 편하며, 썩지도 않는 조그마한 물품들이 화폐 구실을 하기 시작했으니 소금이나 조개껍데기들이 대표적인 물품이다. 뜬금없는 소린 줄 알지만, 사람이 살면서 제일 불행한 것 셋이 소년등과, 중년상처, 말년빈곤이라고 한다. 모름지기 진작부터 알뜰하게 여투어 살아 늘그막에 먹고 쓸 건 있어야 사람구실을 한다. 그놈의 돈, ‘돈에 침 뱉는 놈 없고’, ‘돈 있으면 활량, 돈 못 쓰면 건달’이라 하는데…….


돈으로 써왔던 개오지(cowerie/cowery)라는 바다 복족류(고둥)는 겉모양 화려함과 견고성 때문에 기원전 3000년경, 고릿적부터 돈으로 쓰였다. 개오지 고둥은 모양도 예쁘지만 아주 패각이 두껍고, 표면이 반드러우며, 새알만한 것이 도자기를 닮았다. 아울러 종에 따라 바탕색이 다르고 사방팔방 흩어져 나는 점, 무늬도 아주 다양하며, 우리나라에는 ‘처녀개오지’, ‘제주개오지’, ‘노랑테개오지’ 등 일여덟 종이 채집이 되고 있다. 요새는 한 쪽 끝에 구멍을 뚫어 거기에 끈(줄)을 매서 손전화기나 열쇠고리로 쓰니, 제주도를 가면 이른바‘하르방(할아버지)’새긴 것을 선물가게 어디에서나 팔고 있다.


개오지는 행동거지가 뜨고, 새끼 때는 마냥 껍데기가 얇으며, 다른 고둥들처럼 螺塔(배배 꼬인 층)이 있고, 殼頂(뾰족한 끝 부분)도 있지만 커버리면 각정이 보이지 않는다. 또 입[殼口]이 넓고, 몰라보게 성장함에 따라서 입(주둥이)의 바깥 입술과 안쪽 입술이 안으로 말려 감기고, 그 사이에 이빨 모양의 돌기들이 가지런히 도드라져 있어, 공교롭게도‘개오지’로 비유해 이름 붙였다. 여기서 개오지는 개호주, 즉 ‘범의 새끼’를 지칭하는 것으로, 필자도 어릴 적에 “앞니 빠진 개호주 새밋질(샘터 가는 길)에 가지 마라 빈대한테 뺨 맞는다”면서 앞니 빠진 아이를 빗대어 놀렸지.


다시 말하지만, 개오지는 살았을 적에는 껍데기 아래 테두리를 부드러운 외투막이 감싸고 있지만, 죽어 속안이 휑하니 빈 고둥을 반들반들 깔끔하고 말쑥하게 때 빼고 쿠린 냄새 잡기 위해 깨끗이 손질한다. 등은 둥그스름하고 아래는 평평한, 둥글납작한 껍데기를 뒤집어 보면, 양 입술 가장자리에 얕은 齒狀突起가 가지런히 차례로 많이 나있어 鋸齒狀(톱니모양)을 한다. 양쪽의 입술이 안쪽으로 오므려들면서 앙다물다시피 해 마치 여자의 性器(vulva) 꼴을 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임산부가 紫貝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순산을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하고, 우리도 옛날부터 개오지를 安産, 多産, 豊熟(곡식이 잘 익음)의 뜻으로 품에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본론이라 해도 좋다. 돈을 상징하는 한자 ‘貝’자는 개오지조개의 아랫면(아가리)을 본 뜬 象形文字(pictograph)다. 貝의 目은 개오지의 껍데기[貝殼] 모양이라면 目 아래 삐친 두 획은 다름 아닌 개오지 고둥이 살았을 때 앞으로 삐죽 내 민 두 개의 더듬이[觸角]이거나, 한 쪽 끝자락에 두 개의 불룩 나온 껍데기돌기가 있으니 그 모습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 말했듯이 돈과 관련된 한자어에 ‘조개패’자가 들어간 것도 이런 까닭이라 하겠다.


한편 개오지(cowery shell)는 앞에서 말했듯이 중국은 물론이고, 이미 7세기경 아라비아의 낙타 대상들이 이 껍데기를 여러 개씩 엮어 화폐로 썼고, 근래까지 인도양이나 태평양지역의 섬들에서 화폐로 널리 사용했다고 한다. 그곳들에서 수두룩 널린 게 개오지 고둥들인데 쓸 만한 것 중에서도 패류수집가(shell collector)들이 ‘황금개오지(golden cowerie, Cyparea aurantiunm)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또 이것을 주사위로도 썼으니 예닐곱 개를 던져 뒤집어진 편편한 입이 위로 온 것이 몇 갠가를 헤아린다고 한다.


그런데 미국 원주민(인디언)들은 뿔조개(tusk shell)를 화폐(shell money) 대용으로 썼으며, 아직도 캐나다인디언들이 이것을 끈에 주렁주렁 동전꾸러미처럼 묶어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을 사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시간이 흐르는 것이 아닌 모양이다! 아무튼 뿔조개란 말은 말 그대로 코끼리의 상아를 닮아 붙은 이름이고, 모래바닥을 파고들어가 살며, 우리나라에는 ‘쇠뿔조개’, ‘여덟모뿔조개’ 등 5종이 채집이 된다.


개오지든 뿔조개든 다 껍데기가 쉽사리 마모되지 않고, 여간해서 깨지지 않으니 지금 당장 화폐로 쓴다 해도 하나도 손색이 없을 터다. 또한 패류(조개/고둥)껍데기들은 어느 것이나 하나같이 다 야물고 질겨 부스러지지 않으니, 말해서 녹슬지 않는데, 그 까닭은 주성분이 탄산칼슘(CaCO3)이라는 물질로 돼 있는 탓이고, 이는 우리 몸의 뼈나 치아, 석회석도 모두가 이것이 주성분이다. 다른 말로 조개나 고둥껍데기[貝殼], 산호들은 지구의 炭素(carbon)를 담아놓고 있는 곳으로, 이렇게 바다 속에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는 탄소산업을 이끌고 있는 탄소가 무진장으로 저장돼 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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