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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남경태 옮김, 그린비 刊)와 『희망의 교육학』(교육문화연구회 옮김,
책산책 : 프레이리의 『페다고지』(남경태 옮김, 그린비 刊)와 『희망의 교육학』(교육문화연구회 옮김,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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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2 09:40:46
교육학계 일각에서 파울로 프레이리에 대한 재조명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다. 올해 초 전설의 책 ‘페다고지’가 재번역됐고, 지난달엔 프레이리의 후기 저작인 ‘프레이리의 교사론’ ‘희망의 교육학’이 동시에 출간됐다. 뒤의 두 책은 경북대 출신의 젊은 교육학 전공자들의 모임인 ‘교육문화연구회’가 기획, 번역한 책들이다.

젊은 세대에게 사실 ‘페다고지’는 그리 친숙한 이름은 아니다. 이 책은 한 때 재야와 운동권에서 널리 읽혔지만, 80년대 중반 이후 과학적 사회주의로부터 ‘온건파’ 사상으로 몰려 기억에서 점점 잊혀졌었다. 무엇보다 신군부가 붙인 ‘빨간 딱지’로 인해 아카데미 진입 자체가 봉쇄된 점이 국내 독자들에게 ‘페다고지’의 존재가 희미한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페다고지’의 원제는 ‘피억압자의 교육학’이다. 교육을 통해 억압적 현실을 자각케 하고, 세계 변혁에 참여하게 하는 이론적, 실천적 방안을 풍부한 경험적 사례와 함께 담아놓았다. ‘페다고지’에는 세 가지의 큰 주장이 있다. ‘은행저금식’ 교육을 폐기하고 ‘문제제기식’ 교육을 세우자는 게 첫 번째다. 그는 지금껏 교사가 은행에 예금하듯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맡겨왔다고 비판한다. 그 대안으로 학생들의 주체적, 적극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교사의 ‘공동 탐구자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하나는 그 구체적 방법으로서의 ‘대화’다. 프레이리는 ‘희망’ 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민중들과의 친교에서 좌절과 성공을 반복해온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론적 실천’으로 번역되는 ‘프락시스’의 개념이다. 성찰과 이론이 받쳐주지 못하는 실천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는 변증법적 실천이론이다.

‘페다고지’가 근대적 기성 교육체계에 내던진 출사표라면, 프레이리가 노년에 이르러 쓴 ‘희망의 교육학’은 그의 핵심 개념들이 형성되어온 과정을 밀도 높게 보여주는 가이드북이다. 프레이리는 감수성 깊은 철학언어로 자신의 학문 활동을 회상하면서, 무엇보다 ‘페다고지’의 탄생과 성장을 둘러싼 배경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프레이리는 브라질의 교육철학자다. 어린 시절부터 심각한 빈부격차와 정치부패를 봐 온 그에게 교육은 애초에 현실변혁과 실천을 담보한 이론일 수밖에 없었다. 청년기의 고민, 변호사를 개업했다가 어느날 교육자로 돌변한 계기, 민중들에게 들었던 수많은 격려와 비난들이 반추되면서 그의 사상적 형성과정이 펼쳐지고 있어 자못 드라마틱한 기분도 느껴진다. 프레이리를 급진적인 사상가로 받아들여 오해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아마 자연스러운 화해를 기대해도 좋을 만하다.

한숭희 서울대 교수(교육학)는 “프레이리 사상의 매력과 장점은 한군데 붙박이지 않는 유연함”이라며 “최근 서구에서는 ‘프레이리 학회’가 발족되고, 그의 사상을 여성운동 및 환경운동 측에서 활용하는 등 프레이리가 핵심적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고 프레이리 사상의 현재적 가치를 전한다. 심성보 부산교육대 교수(윤리사회과)는 오늘날 우리에게 프레이리가 “예비시민을 길러내는 교사들이 민주적 주체로 재탄생하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이며 “그의 책은 교육 권력의 관료화를 척결함과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교육 언어를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 사상적 수원지”가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서는 프레이리의 글에서 이론적 정합성을 발견하기 힘들다, 혹은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 개인적 문제를 너무 많이 드러내 심리주의로 빠진다”는 등 비판도 있다. 하지만 한 사상가를 이해함에 있어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그가 추구한 궁극적인 목표에 비춰 그의 사상을 평가내리는 일일 것이다. 프레이리의 경우 그 목표는 여전히 억압자와 피억압자의 불평등을 교육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며, 이는 아직까지 충분히 유효한 견해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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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예원 2018-11-20 17:55:01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