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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 『숲의 서사시』(존 펄린 지음/송명규 옮김, 따님 刊)
쟁점서평 : 『숲의 서사시』(존 펄린 지음/송명규 옮김, 따님 刊)
  • 주경철 서울대
  • 승인 2002.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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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나라한 현실문제까지 같이 읽어야

주경철 / 서울대·서양사

존 펄린의 ‘숲의 서사시’는 나무와 목재, 숲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한 세계사의 형식을 띠고 있다. 우리 조상들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큰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다루는 가장 중요한 재료가 목재이고, 난방용이든 공업용이든 거의 모든 에너지원은 땔나무였으며, 조선·유리·석회·제철 등 거의 모든 공업 분야에서 직간접적으로 나무가 쓰였다.


그리하여 저자는 이 책에 소개된 모든 역사 사건 뒤에서 나무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가를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가 페르시아의 지배를 면할 수 있었던 것도 목재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고, 로마가 쇠퇴한 것도 광대한 건축, 광산업 등의 필요 때문에 숲을 남벌하면서 지력 고갈로 농업 생산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영국이 북아메리카를 지배하고 개발하려고 한 중요한 요인 역시 이 지역의 풍부한 삼림 자원이었으며, 산업혁명기의 코크스 개발도 과도한 목재 가격 인상에 따른 것이었다.


이런 설명들에 대해서는 한편으로 맞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틀리기도 하다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쉽지만 사실 과거에 삼림 자원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때로는 역사의 중요한 국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서술 경향이 과도하다는 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역사 사건은 마치 ‘나무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서술되어 있다. 어떤 일에서 나무가 중요하다는 것과 나무 때문에 그 일이 결정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다른 이야기이다. 베네치아 주변 지역에서 삼림이 훼손되어 조선 비용이 오름으로써 여건이 불리해진 것은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네치아가 대양 항해 경쟁에서 네덜란드에게 진 원인이 바로 삼림 훼손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로마 제국의 역사에서 목욕탕 건축에 많은 목재가 사용된 것이 로마 재정에 큰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은 중요한 사항이지만, 그것이 로마 제국 쇠퇴의 원인이라고 서술함으로써 정작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회 갈등, 정치 투쟁, 경제적 쇠퇴 등을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보이는 이런 과도한 해석을 어느 정도 완화해가며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게 접근하면 이 책의 많은 사항들을 대단히 흥미롭게 읽게 될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바는 단순히 역사에서 숲이 매우 중요했다는 점보다는 숲의 파괴로 인한 폐해가 막대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특히 월드워치연구소 소장인 레스터 브라운의 발문에 인상적으로 잘 나와 있다. 해마다 지구 전역에서 3천7백만 에이커(남북한 전체 면적의 3분의 2)의 삼림이 사라지고 있고 이것이 극심한 홍수, 토양 유실, 사막화, 토지 생산성 저하 등을 초래하고 있으며, 연료를 나무에 의존하는 20억 인구가 에너지 위기에 빠지리라는 지적은 우리 모두 경청해야 할 사항임에 틀림없다. 이 책의 전반적인 주조는 소중한 자연 환경의 파괴에 대한 고발 그리고 절박한 환경 보호에 대한 탄원이다.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이 위기에 처해 있고 따라서 그것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그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보편적인 가치의 주장 뒤에서 약간 께름칙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그러면서도 혹시 내가 너무 과민한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된다. 이 책은 原題 ‘숲의 여행(A Forest Journey)’대로 숲을 따라가는 세계사 여행의 형식으로 돼 있는데, 그 주요 여행 경로는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시작해서 그리스·로마를 거쳐, 베네치아, 영국, 그리고 잠깐 아메리카 식민지를 지나 미국에 이른다. 그야말로 서구 문명의 정통 코스이며, 그 최종 도달점은 미국 문명이다. 영국과 미국을 다룬 부분이 책의 절반에 해당되므로, 그 이전의 장구한 세월은 영미문명의 역사에 대한 일종의 前史의 지위에 만족해야 한다. 모든 문명의 중심은 자연 파괴로 인해 몰락의 길을 걸었고, 현재의 중심 문명 역시 그러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재적인 논리의 귀결점은 근대 유럽 문명의 최종 승자인 서구가 위기에 처하게 된 데 대해 전지구적인 보호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아닐까. 근대 이후 세계 자원의 최대 파괴 세력이었던 서구 문명이 갑자기 피해자로 둔갑하고 동시에 자연의 마지막 수호자로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산뜻한 문장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구성된 ―그리고 정확하고 우아한 번역으로 마무리된― 아름다운 메시지의 뒤편에서 우리는 환경파괴의 주범이 누구이고, 환경 보호의 비용을 누가 얼마만큼 내는 것이 정의로운 일인가 하는 적나라한 현실 문제까지 함께 읽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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