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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배신과 사랑에 흠뻑 잠겼던 寶物의 귀환
피와 배신과 사랑에 흠뻑 잠겼던 寶物의 귀환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4.29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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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가 아들러에게 준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의 受難史

▲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악보

이 악보는 한 음악학자와 그의 헌신적인 딸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저 끔직했던 시기의 역사 가운데 통렬한 한 부분을 담고 있다.


옥스퍼드대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희귀 초판본 거래업을 평생직업으로 선택한 릭 케코스키. 그는 자신의 연구 분야이던 19세기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영미문학 거장들의 서명이 들어 있는 초판본과 원고를 주력 분야로 삼아 세속적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가 2013년에 내놓은 책 『불타고/찢기고/도둑맞은(Lost, Stolen or Shredded)』(박중서 옮김, 르네상스 刊, 2014)은 ‘무단이탈’ 했다가 돌아왔거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문학 및 예술작품에 관해 다루고 있다. 구스타프 말러의 가장 뛰어난 가곡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의 친필 악보를 둘러싼 비극적 이야기를 전하는 대목을 발췌해, 이 ‘보물사냥꾼’이 기념비적 예술작품을 둘러싼 소문을 파헤치면서 어떻게 진실을 찾아내는지 들어본다.

말러의 가장 뛰어난 가곡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는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한때 거기서 참 많은 시간을 허비했건만/참 오랫동안 나로부터 아무 소식도 못 들었으니/내가 죽었다고 믿는 것도 당연하겠지!/내게는 중요하지도 않다네,/세상이 나를 죽었다고 믿건 말건./나로선 부정할 수 없네/나는 실제로도 세상에서 죽은 것이니./나는 세상의 소란을 외면하고 죽었으며,/고요의 영역 속에 안식하네./나 홀로 거하네, 나만의 천국 안에,/내 사랑 안에, 내 노래 안에.”


훗날 말러는 이 노래가 “이례적일 정도로 응축적이고 절제하는 문체이며, 감정이 가득 차오르기는 하지만 차마 넘쳐흐르지는 않는다”고 고찰했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나 자신!”이라고 그는 선언했다. 이 노래의 관현악 버전은 1905년 1월 말에 빈에서 초연됐으며, 그해 11월 1일에 말러는 그 친필 악보를 저명한 음악학자 귀도 아들러에게 선물했다. 거기에는 훈훈한 증정문이 적혀 있었다. “친애하는 내 친구 귀도 아들러에게 (그는 결코 내게 잊힌 적이 없을 것이니) 그의 쉰 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아들러는 이 선물에 크게 감동했는데, 이 노래가 포함된 연작 가곡집이 그에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가곡들이 “자연을 포용한다”고 고찰했다. 즉 이것은 “모독적인 것과 신성한 것을 망라한 사랑의 지극히 다채로운 분위기 속에 있는, 그리고 가장 완전한 헌신이 차츰 하락해 체념에 이르는, 어른과 아이의 세계를 묘사한 것으로, 이를 가장 명료한 태도로 표현하는 데 성공한 것이 저 비교를 불허하는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다.”


당시 이 친필 악보의 금전적 가치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러가 일류 작곡가로 명성을 얻고 있었으므로 미래에 상당한 가치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들러는 이 친필 악보를 자신의 훌륭한 서재 서랍 속에 넣어두는 대신, 가장 귀중한 보물들이 보관된 금고에 넣어뒀다. 그 금고에는 세상에 딱 세 점밖에 없다고 알려진 베토벤의 데스마스크 가운데 한 점은 물론이고, 브람스와 브루크너의 친필 편지도 들어 있었다.


귀도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했으며, 나아가 그 직업을 가져도 될 만큼 유능했지만, 자기에게는 천재성이 없음을 시인했다. 그는 결국 작곡가 대신 학자가 됐다. 그는 종종 최초의 음악학자로 간주되며, 그가 1885년에 출간한 『음악학의 범위와 방법과 목표』는 이 새로운 분야의 방법과 목표를 정한 기념비적인 논문이다. 은퇴를 맞이한 1927년에 이르러, 귀도 아들러는 현대 음악학자 중에서도 최정상에 섰으며, 빈 대학 부설 음악학 연구소의 저명인사였다. 『오스트리아 음악의 기념비』라는 80권짜리 전집을 비롯해, 독창적인 내용의 저서를 수없이 저술하거나 편집했다. 하지만 그가 회고록을 펴낸 1935년에 이르자 점차 그늘이 짙어지면서 상당수의 유대인이 오스트리아를 떠났다. 빈의 유대인들도 점점 압력을 받았고, 귀도는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손녀에게 미국으로 가라고 권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출국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귀도 아들러는 1941년에 86세의 고령으로 자연사했다. 그의 서재는 이제 멜라니(귀도의 딸)의 소유가 됐지만 사실상 (나치로부터) 체계적인 약탈을 피할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귀도 다음으로 유명했던 음악학자이며 옛 동료였던 에리히 솅크 교수는 열혈 나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친절을 베푸는 척하며, 멜라니에게 이탈리아 출국 비자를 발급하는 대가로 서재의 내용물 전체를 넘기라고 제안했다. 그녀를 돕던 고문 변호사 리하르트 하이제러(나치가 그녀를 사취하기 위해 붙여놓은 인물)는 솅크의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재촉했다. 그는 내용물에 대한 권리를 완전히 장악하려 들었다. 멜라니는 겁을 먹었지만 저항했으며, 궁여지책으로 책들을 뮌헨 시립도서관에 매각하려 시도했다. 이런 시도조차도 수포로 돌아가자, 그녀는 필사적인 최후의 노력을 도모했다.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의 며느리인 위니프레드를 찾아간 것이다.


귀도의 서재 전체를 넘기는 대신에 뮌헨으로 이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해달라고 제안하면서 멜라니 아들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호소했다. 즉 변호사가 “저를 위협하려는 의도로 게슈타포를 들먹이며 협박을 가하고 있다”고 했다. 위니프레드가 그녀를 도울 마음이 없었는지, 아니면 도울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몰랐던 것은 분명하며, 이 마지막 호소에 대한 응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1945년 5월에 멜라니 아들러는 민스크로 끌려갔으며, 거기서 또다시 말리 트로스티네츠(벨라루스 영토에서 운여안 강제수용소로, 유대인 대량 학살장소이기도 함) 외곽의 외딴 소나무 숲으로 끌려갔다. 모두 9천명이 그곳 학살장으로 끌려갔으며, 살아남은 사람은 17명에 불과했다.


귀도의 서재에 있던 물건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것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전쟁이 끝나자 그나마 남아 있던 물건은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피신했던 그의 아들이 상속했으며, 1951년에 그는 나머지 물건을 조지아대에 매각했다. 하지만 귀도 아들러의 서재에서 가장 귀중한 물품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의 친필 악보는 행방이 묘연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0년쯤이 지난 2000년 9월, 캘리포니아주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던 귀도의 손자 톰 아들러는 귀도 아들러에게 주는 증정문이 들어 있는 말러의 친필 악보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그 물건은 머잖아 빈에 있던 소더비 지부에서 감정될 예정이었다. 친필 악보의 행방이 밝혀진 것은 극적인 순간이라고 말할 만했다. 단순히 물건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그 물건을 경매에 위탁한 사람의 이름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리하르트 하이제러, 즉 멜라니 아들러를 ‘대리했던’ 변호사에게서 이름까지 고스란히 물려받은 아들이었다.


할아버지의 물품 소재를 파악한 지 2년이 지나고 나서, 톰 아들러는 말러의 친필 악보를 되찾기 위한 싸움에 돌입했는데, 이때는 오스트리아의 국민정서와 법률의 흐름도 비로소 국제적인 법률과 정서를 간신히 따라잡고 있었다. 구체적인 내역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톰 아들러는 자기 가문의 소유인 친필 악보를 되찾았다. 소더비는 런던에서 다시 이 물품을 경매에 부쳤다. 2004년 5월 21일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말러의 자필 서명 악보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으로 묘사된 「나는 세상에서 잊히었네」가 런던에서 42만 파운드에 개인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내 생각에 구매자는 이 악보에 얽힌 이야기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구입한 것은 단순히 음악 분야의 보물일 뿐만 아니라, 피와 배신과 사랑 속에 흠뻑 잠겼다 나온 물건이기도 하다. 이 악보는 한 음악학자와 그의 헌신적인 딸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저 끔직했던 시기의 역사 가운데 통렬한 한 부분을 담고 있다. 이런 이야기 역시 악보와 마찬가지로 결코 이 세상에서 잊히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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