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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네 가지 유형
지도자의 네 가지 유형
  • 교수신문
  • 승인 2014.04.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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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아하!』, 오강남 지음 | 삼인 | 348쪽 | 13,000원

기원전 6세기에 중국의 노자가 썼다는 『도덕경』 제17장에 보면 지도자 중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가장 훌륭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그 존재 정도만 알려진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칭찬하는 지도자, 그 다음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 가장 좋지 못한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업신여기 받는 지도자.” ‘內聖外王’, 곧 속으로 성인 같은 자질을 갖춰야 그것이 밖으로 표출돼 훌륭한 왕이 된다는 도가 특유의 정치철학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밑에서부터 한번 생각해보자. 최악의 지도자, 즉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는 지도자는 스스로 도덕성을 상실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아무리 사회정의니 인도주의니 하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이 믿지 않고, 부산하게 조석으로 법령이나 훈령을 내려도 사람들이 콧방귀나 뀔 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불신 사회, 혼동과 혼란의 사회가 있을 뿐이다.


그 다음 유형의 지도자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지도자로 법치주의 지도자다. 법과 형벌로 다스려 백성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지도자로 진시황제나 아돌프 히틀러, 비록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자주 보이는 독재형 정치지도자다. ‘데려가서 맛을 좀 보여 주라’는 식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유형이다. 공자가 말하는 것처럼 이런 가혹한 정치지도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사람들이 친근감을 갖고 찬양하는 지도자다. 이른바 덕치주의 지도자로 동양에서 왕이 전통적으로 지향하던 지도자형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링컨도 이 유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나 『도덕경』에 의하면 이런 덕치주의로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지도자도 최상의 지도자는 못 된다고 한다. 사람들이 칭송하고 좋아한다는 자체가 벌써 그 지도자를 의식하고 산다는 뜻이다. 사람이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든지, 자식이 어머니의 사랑을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든지 하는 것처럼 무엇이나 너무 크고 자연스러운 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감지 대상 밖에 있다.


그뿐 아니라 신발이나 안경도 꼭 맞으면 내 몸의 일부처럼 돼 별도로 의식되지 않는다. 의식된다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불완전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최상의 지도자는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마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지도자, 백성들의 필요에 따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순리대로 이슬처럼 다스리는 이른바 ‘무위자연’의 다스림, ‘가만둠’의 다스림을 실천하는 지도자, 그래서 뭐든지 잘되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들의 노력 덕분이라 생각하게 하는 지도자라는 것이다.

도가 사상에 의하면, 결국 지도자가 될 자질을 갖춘 사람은 한마디로 이름에 연연하지 않는 ‘無名’,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난 ‘無己’, 자기의 공로를 의식하지 않는 ‘無功’의 사람이라고 한다. 이런 다스림을 ‘영적 정치’라 하고, 이런 지도자적 자질을 ‘변화형 리더십’이라 하는 서양 학자도 있기는 하지만, 오늘 같은 각박한 정치 현실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은 모두 잠꼬대 같은 일 아닌가? 도대체 지금 이런 지도자를 어떻게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러기에 더욱 생각해 보고 그리워하게 되는 지도자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저자는 캐나다 리자이나대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있다. 『아하!』는 저자가 우리 속담에서 깨친 작은 깨달음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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