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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교수사회의 발전을 위한 苦言
대학과 교수사회의 발전을 위한 苦言
  • 장병옥(한국외대 명예교수, 중동정치)
  • 승인 2014.04.21 15: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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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 장병옥 한국외대 명예교수

요즘 대학가에서는 정부의 구조조정 계획에 대비하느라 꽤 분주한 분위기다. 그동안 고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의 수도 엄청나게 증가했고, 그에 따라 고학력 실업자들이 양산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저출산으로 향후 입학정원도 못 채울 대학들, 특히 지방 군소도시와 수도권 부실대학들의 문제는 심각하다. 이러한 위기감에서 박근혜 정부가 나서서 각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을 무기로 모든 대학의 정원을 일률적으로 감축하라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대학평가체제에 맞춰 부실대학과 우수한 대학 할 것 없이 획일적으로 대학을 정비하는 것이 우리 대학의 발전에 과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을까. 학생 수요가 없는 부실대학은 시장원리에 맡게 자연 도태되도록 놔두고 세계 유수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 우수 대학은 정책적으로 집중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는 대학에 몸담았던 기간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을 바탕으로 대학과 학문 발전의 저해 요인들이 무엇인지, 그에 대한 해결책은 없을지 나름대로 적어보고자 한다.

대학의 발전이라 함은 단순히 대학의 수 또는 학생과 교수의 수가 양적으로 많아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일부 지방과 수도권 부실대학들이 편법으로 교수 확보율을 늘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 대학에서 요구하는 교수 임용의 자격은 전공도, 논문의 수나 양도 아니다.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50대 후반~60대 사람들이 주로 임용된다. 대학 평가 기준에 맞춰 퇴출을 피하기 위한 최후의 단기적인 방편이다.

반면 안정된 환경에서 연구해야 할 젊은 강사들이 제때에 교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연구력이 왕성한 이러한 인재들을 일찍 임용해 키워나가야 하는 대학 내에서는 학교와 학과의 일부 교수들 간 이해관계에 따라 필요한 임용을 장기간 미루거나 취소해 버리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심지어 어떤 대학의 모 학과장은 신규 교수 임용 공문이 내려와도 묵살하고 실권이 없는 외국인 교강사를 채용해 혼자 권력 아닌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어떤 대학원 주임교수는 강사의 실력과 관계없이 본인의 친분에 따라 강의를 배분하기도 한다. 이는 학생들이 양질의 수업을 받을 권리까지 침해하게 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우리 대학사회에서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문제는 학술연구와 관련된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연구는 보통 정부 혹은 기업의 재정을 바탕으로 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수행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때 전국 대학의 각 연구자와 연구소들은 개인과 학교 차원에서 정부 권력자들에게 줄을 대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몇 년 전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두뇌한국(BK)21 프로젝트 심사 결과, 객관적인 점수가 최상위였던 모 대학의 연구소는 연구소장의 정치색이 당시 정권과 다르다는 이유로 탈락하게 돼 행정소송까지 간 경우도 있었다. 또 등수 밖의 연구소가 선정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 이면에는 그 대학 총장이 장·차관 출신이거나 혹은 고위 권력층의 실력자와 그 연구소가 특정 대학 출신의 학맥으로 연관돼 있었다.

이와 연계되는 대학 내 석좌교수의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본래 석좌교수는 자신의 전공 분야에 있어서는 누구나 인정하는 최고의 권위자로서, 학식과 인품이 높은 석학에게 주어지는 자리다. 그러나 최근 대부분 대학이 정치적 청탁, 대학의 홍보 아닌 홍보, 발전기금 재원을 끌어오려는 복합적인 목적으로 퇴임한 고위인사들을 석좌교수로 영입하고 있다. 이러한 풍토가 계속된다면, 학문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학자들이 설 자리가 줄어들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지속될 것이다.

대학이 재정적으로 독립하게 될 때, 정부나 권력층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각 대학당국과 각 학과의 교수들이 공동으로 그 학과에 꼭 필요한 다양한 전공의 신진학자들을 교수로 채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학문과 진리를 탐구하는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의 발전은 요원할 수밖에 없고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장병옥 한국외대 명예교수·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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