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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철학은 어떻게 만나는가
간호학과 철학은 어떻게 만나는가
  • 교수신문
  • 승인 2002.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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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나의 지금 이 자리는 이 지역과의 인연으로 맺어진 듯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간호사로 첫 발을 내딛은 나환자촌도, 낙도 오지 시범보건사업에 뛰어들어 수년간 보건간호사로서 일했던 섬 마을도 바로 이 지역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햇빛과 소금기 진한 바닷바람 해초냄새를 맡으며, 엉겅퀴보다도 질긴 이곳 사람들의 강인한 삶과 자연이 주는 건강한 생명력, 그리고 간호의 모든 체험들은 땅으로부터 받은 初乳와 같은 힘을 주었다. 그 후 12년 동안의 독일 유학생활을 훌쩍 뛰어넘어, 이 자리에 돌아와 앉아있는 내 남다른 사명은 간호와 철학의 만남에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번 학기에 간호철학 과목을 맡았다. 간호도 철학도 막연한 1학년 학생들에게 간호를 철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주제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질병치료의 의학적 패러다임에 종속돼 실무위주의 간호교육이 이루어졌던 과거와는 달리 의학과는 차별화된 총체적인 인간학으로서 간호학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 시점에서, 간호철학은 학생들에게 21세기 인류의 건강관리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간호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는 학문적, 실천적 기초를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년 전 나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익숙한 간호에 대한 先 이해와,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철학적 사고방식이라는 건조한 틀 사이에서 그 어떤 상호작용도 일어나지 않는 무표정한 태도를 읽어내면서, 가르침의 내용과 방식에 대한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간호학의 기본 전제들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해봤다. 간호의 핵심적인 주제들인 인간, 환경, 건강, 그리고 간호에 대한 이해를 추상적 이론이나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상황의 실례를 통한 유추적 접근을 학생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토론하는 시간을 마련해 보고자 했다. 간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간호를 필요로 하는 고통받는 개인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그 다양한 고통의 모습들은 어떠하며, 그 고통이 처해 있는 환경과 건강을 돌보는 간호의 모범적인 실례들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그러한 실례를 통해 간호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가지고 간호철학의 주제들을 풀어가고자 했다. 수업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소재와 방식들이 사용된다. 시와 소설, 회화, 영화 등에서 우리는 간호의 주제들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풍부하게 해주는 소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간호사들의 현장체험으로부터 생생히 녹아있는 간호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들은 간호현상들을 이해하기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결국 간호학 개론을 배우는 학생들이 오랜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건강관리를 담당해 온 간호의 실천적 지혜와 여성적 치유에너지에 대한 근원적 이해를 함으로써 간호 학문의 사유의 지평을 넓히고, 총체적인 인간학으로 간호학문에 대한 긍지와 자신감을 지녔으면 한다.

그리고 숙련된 경험과 기술을 수행하는 자율적인 전문직으로서 간호사의 역할뿐만이 아니라, 인간건강에 대한 도덕 실천적 지혜에 기초해 특히 의료환경으로부터 소외된 고통받는 사회적 약자의 옹호자로서 간호사의 역할을 학생들이 중요하게 인식했으면 한다.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인간 생명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 요구되는 간호의 모범적인 실례들을 생각해봄으로써 간호의 본질과 역할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이상적인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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