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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산책] 『이 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최종욱 지음, 사회평론 刊)
[책산책] 『이 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최종욱 지음, 사회평론 刊)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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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종욱 국민대 교수 1주기 유고집 나와
지난해 8월 세상을 뜬 고 최종욱 국민대 교수(철학)의 1주기를 맞아 유고집 ‘이 땅에서 철학하는 자의 변명’이 출간됐다. 이와 관련해 출판기념회와 추모회가 지난 9월 13일 오후 6시 출판문화회관 4층 강당에서 열렸다. 행사장에는 고인의 지기였던 정범구씨(국회의원), 김영동씨(작곡가)를 비롯해, 강정구 동국대 교수 등 많은 선후배 학자들과 추모객들이 참석해 고인의 영향력을 새삼 되새겨주었다.

최교수는 1990년대 중후반, 한국 인문사회학계를 ‘자아비판의 용광로’로 내던진 장본인이다. “철학자의 사상을 일방적으로 던져주는” 강단철학의 관행을 우리 인문학의 아킬레스건으로 본 그는 월간 ‘사회평론 길’과 계간 ‘이론’ 등에서 편집위원을, 학술단체협의회와 철학사상연구회 등에서 공동대표를 맡는 등 현실에 깊이 개입해 자신의 철학이론을 단련시켰다.

김교빈 호서대 교수(동양철학)는 추모사에서 “최교수가 있는 자리는 항상 ‘이론적’이고 ‘논쟁적’이었다”며 당시의 열띤 분위기를 회상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그와 함께 사회주의 붕괴의 지적 혼란 속에서 방향을 찾았고, 포스트 담론의 허무주의를 넘어 어떻게 하면 사회주의의 ‘이타적 에토스’를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의식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그밖에 레닌모를 비스듬히 쓰고 사색어린 표정으로 나타나 후배들을 매혹시켰던 스타일리스트의 모습도 회상됐고, 유고집 봉정 순서에서는 최 교수의 부인이 오열을 터뜨려 참석자들의 마음을 애틋하고 숙연하게 했다.

“강단의 인문학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상품화되는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자신들의 지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자신들의 토대를 해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한국의 인문과학자들이 우상시했던 푸코는 그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인문과학의 기율적 성격을 폭로하면서 “인간학적 사유와 인본주의적 근본확신”에 기초한다는 서구 인문과학 자체의 신화를 해체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다”(본문중에서).

이번 유고집은 그가 우리 인문사회과학계에 남긴 ‘유언’이나 다름없다. 보통의 유언이 그렇듯, 그는 자신이 구축한 지적 재산을 남김없이 이 땅의 진지한 學人들에게 나눠 주고자 한다. ‘인문과학 위기에 대한 담론분석을 위한 시론’, ‘현대 프랑스철학의 비판적 이해’, ‘철학의 죽음’, ‘동서양을 아우르는 근대론은 가능한가’ 등 인문학의 패러다임을 반성하는 논문들이 중심 뼈대를 이룬다.

물론 거기엔 ‘한국에서의’라는 전제조건이 항상 달려 있다. 철학자로서 최교수가 붙든 윤리적 지상과제는 자신의 존재론적, 사회적, 정치적, 역사적, 미학적 조건을 통찰한 바탕 위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설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사회주의 붕괴 이후 몰아닥친 포스트 외풍은 심각한 수준의 ‘질병’으로 여겨졌다. 최교수는 논쟁적인 논문들을 통해 ‘주체의 죽음’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당신에게 주체가 있냐”고 반문했고, 학문적 가치중립을 노래하는 ‘시인’들에게 “중립적인 가치가 있기 위한 철학적 조건”을 제시하라고 질책했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의 논문들 또한 탈식민성, 전통과의 단절, 유교적 근대기획 등 서로 다른 정치적, 학문적 배경에서 나온 주장들이 내장한 공통된 모순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로써 한국에서의 지적 논의가 갖는 심각한 비효율성과 혼란상을 명백히 한다.

송영배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발문에서 최교수를 “근대사의 암흑기에 온갖 사이비지식인들을 날카롭게 비판했던 중국의 민족주의적 지성 루쉰에 감히 비견하고자 한다”고 쓰고 있다. 민족현실에 대한 루쉰의 냉철한 응시와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최교수의 진단을 같은 자리에 놓은 것이다. 거기에 하나 보탠다면, 정치하게 전개되는 이 책의 논리는 읽는 이를 철학적으로 설득할 수 있는 “문장과 사유의 필요조건”이 무엇인지도 잘 보여주고 있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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