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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학문에 대한 도전
‘융합'학문에 대한 도전
  • 엄현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 승인 2014.04.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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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엄현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엄현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창조'와 '융합'의 시대다. 정치인들도 대한민국의 가치 창출과 발전을 위해 창조와 융합을 강조한다. 현재 이공계에는 대표적인 ‘융합’ 학문인 나노 공학 이라는 테마가 인기다. 재료나 화학 관련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한번쯤 '나노 공학'과 '융합 공학'에 대한 세미나를 들어보거나, 관련 연구를 진행 해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재료공학과 출신이면서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많은 학부 과정 후배들이 나에게 나노 혹은 융합공학에 대한 대학원 진학 혹은 취업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 전망이 어떤지, 기계공학과이면서 나노 공학에 관한 연구를 하면 취업이 잘 되는지 등등. 사실 나는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아서 사회에 계시는 연구원들보다 아는 바가 많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다양한 학과에서의 학위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융합 학문의 장단점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상의할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어서) 홀로 경험하고 느낀 바가 많다. 이 바닥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들었던 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현재 '융합학문'에 뛰어드려는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에게, 융합학문을 경험한 학생으로서 융합학문의 즐거움, 경험자로서 느낀 어려움과 단점, 그리고 앞으로 융합학문을 어떻게 연구하고 바라봤으면 하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융합학문은 즐겁다. 세기의 천재가 아니고서야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학문은 태동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융합학문은 기존의 학문을 병합함으로써 전혀 새로 다른 패러다임을 제공할 때가 많다. 투명 전극 재료와 같은 경우, ITO를 합성하기 이전에는 세라믹은 전도성이 없는 물질이었다.

그러나 재료의 전자적인 특성을 제어함으로써 세라믹에는 전도성이 부여됐고, 그 외에도 전도성 폴리머, 전도성 그래핀 등 기존의 상식을 넘어서는 수많은 재료들이 탄생(?)했다.

최근 차세대 투명전극 재료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그래핀(CNT도 포함하여)과 은나노 구조체 역시, 기존 재료학과 물리학, 화학, 전자기학 등의 다양한 학문의 융합 산물이다. 기존의 한 분야의 학문만 연구한다면 그런 신소재들이 현실적으로 등장하고 응용하는 연구를 할 수 있었을까.

필자의 경우 재료공학과에서 기계공학과로 오면서 그 숱한 재료들을 접해보면서, 기존에는 투명성과 유연성만 연구되었던 투명전극을, 신뢰성 및 내구성을 요하는 기계공학의 학문과 접목시켜 화학 내구성과 기계적인 내구성이 있는 투명전극을 연구하고 있다. 차세대 투명전극 재료를 연구한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융합학문을 함에 있어서 얻는 즐거움이란, 남들이 하지 않았고 보지 못했던 영역을 경험하고 선구하는 데에 있다.

융합학문을 하면서 느낀 어려움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거나 분석 불가능한 결과가 생길 때이다. 예를 들어 나노 재료를 합성 할 때, 모든 조건과 변수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어느 날 나노 재료가 예쁘게 합성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마 나노 재료를 합성하시는 분들이라면 한번 이상은 겪는 어려움 이라 예상한다.

필자의 경우 산화아연 나노선 구조체를 합성하는데 있어서 이 백 번 이상 하루에 한번 똑 같은 실험을 했었다. 모든 조건은 동일했으나, 어느 날부터 열네 번 정도 실험이 되지 않았다. 일 년 이상 꾸준히 실험해본 결과, 여름에는 재료에 흡습성이 있어 실험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료의 무게를 재는데 겨우 10초 남짓 걸리고, 쾌적한 실험실 환경에서 실험을 하는데도 영향을 받았다. 즉, 나노 재료 합성에 있어서 공정 변수라는 부분은 실험결과에 굉장히 지배적이면서도 전문가도 깨닫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변수들이 결과를 좌지우지 한다. 이렇게 융합 학문에는 기존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발생하기 쉽다. 두 학문을 겹침으로써 단점의 교집합만 나오는 게 아니라 단점의 합집합 혹은 그 이상으로 단점들과 어려움이 등장한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필자가 얻은 교훈은 두 가지이다. (물론 내가 말하는 방법으로 다 해결할 순 없지만, 본인의 경험적으로) 먼저 끈기다. 한두 번 실험 해보고 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 실험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안 되는 실험을 계속 붙잡고 있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끈기란, 실험이 안 되면 안 되는 조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왜 안 되는 지를 경험상의 데이터와 자료로 충분히 숙지하라는 의미이다.

석사 시절 갈바닉 치환 도금을 주제로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치환 반응이 잘 일어나는 금속 때문에 초기 원하고자 하는 성분의 재료를 얻는데 어려움을 겪었었다. 그 때 ‘특정 여러 조건’에서는 절대로 실험이 되지 않는 데이터와 경험을 얻은 바가 있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치환 반응 때문에 도금이 안 되는 후배의 실험을 말끔하게 해결해준 것도 그러한 경험적인 산물에서 비롯됐다. 실패를 실패로 끝날 게 아니라, 게임에서의 경험치 누적으로 후에 조금이나마 레벨이 오르는 것처럼 본인이 실패에 대한 데이터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남게 된다. 그 것이 다른 연구에 자양분이 될 수도 있고, 실패를 미래의 자양분처럼 생각한다는 것과 그 운용에 필요한 끈기가 융합학문을 어려움을 뚫는데 도움을 주었다.

두 번째로 융합학문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필요한 것은 기초이다. 재료공학에서는 재료의 물리적, 화학적, 기계적, 열적, 전자기적 성질을 배운다. 신뢰성과 소자 부분으로 공부를 하고자 기계공학과로 박사과정을 진학했으나, 기초에 대한 문제는 내 발목을 잡았다. 예를 들어 나노 구조체에서는 접합 구동이 약간 다르게 일어난다. 하지만 기계공학과의 구조역학적인 해석을 접하면서 여기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었다. 실험이 잘된다고 다가 아니다. 더불어 왜 실험이 잘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인 힘은 중요하며 그 끝엔 기초과학과 공학이 자리 잡고 있다. 새로운 학문은 다른 분야 사람들에게 결과와 함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데이터를 신뢰하고 후속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융합학문이 나아가야 하는 바는 ‘(계속되는) 창조’보다는 ‘학문으로써의 이해’와 ‘실용으로의 적용’이다. 융합학문의 태동은 창조로부터 나오지만, 이를 하나의 영역과 큰 사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단점을 정확히 이해하고, 산업이든, 인간에게 적용하기 위한 최종 단계에 더 힘을 써야 한다. 대부분 많은 공학자들이 융합학문을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템에 눈독 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가 공학자의 최종목표인 산업화 및 실용화를 까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마치 새로운 디자인의 예쁜 구두를 샀는데 고무의 탄성 및 내구성이 별로 라, 막상 신어보면 아프고 구두도 금세 닳는 것처럼,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실생활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눈만 즐거울 뿐 막상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산업화 및 실용화에 대한 연구는 기업에서만 풀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융합학문을 하는 모든 이공계분들이 잊지 말아야 할 덕목(?)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융합학문을 도전할 때 학생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잘 할 수 있게 도와주시는 지도 교수님을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교수님들이 결과만을 가지고 학생을 판단하지 않고, 융합연구를 할 수 있게 잘 이끌어주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박사과정을 마무리 하면서 융합연구를 잘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박사 지도교수님과 공동연구를 도와주시는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엄현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박사과정
나노 소재를 기반으로 한 플라즈모닉스 광촉매, 투명전극, 압전 소자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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