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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기호학과 茶山의 ‘模寫說’이 만났을 때
서사기호학과 茶山의 ‘模寫說’이 만났을 때
  • 교수신문
  • 승인 2014.04.0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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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다산 정약용의 周易四箋, 기호학으로 읽다』 방인 지음|예문서원 |704쪽 |50,000원

 

정약용은 누구보다도 『주역』의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 학자다. 그는 『주역』의 기호적 특성을 간과할 경우 『주역』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텍스트 誤讀을 초래한다고 경고했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의 『周易四箋』을 기호학적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다. 『주역사전』 戊辰本은 다산 정약용이 1808년에 『주역』을 주석한 책이다. 『주역사전』은 『주역』의 주석서이므로, 『주역사전』의 기호학적 해석을 위해서는 『주역』에 대한 기호학적 해석이 선행돼야 한다. 그런데 『주역』은 고대 중국에서 탄생한 점술 서적이고, 기호학은 19세기에 페르디낭드 소쉬르와 찰스 샌더스 퍼스에 의해 창시돼 현대 학문의 최전선에 서있는 학문이니, 양자의 만남은 독자에게 매우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주역』의 八卦 혹은 육십사괘는 기호임이 분명하니, 그것이 기호학적 탐구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어쨌든 『주역』과 기호학이 서로 다른 전통 속에서 발전해온 두 종류의 지식체계이므로, 『주역』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은 지식의 통섭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는 일종의 학제간적 연구(interdisciplinary study)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국내 학자에 의한 이 분야의 선행연구의 대표적 예로는 박연규 경기대 교수의 연구를 들 수 있는데, 그는 퍼스의 기호학적 관점을 『주역』에 적용해, 『象의 세미오시스-『易經』에 대한 퍼스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1998년에 하와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그리고 해외의 연구로는 중국학자 徐瑞의 『周易符號學槪論』이 있다. 단행본은 아니지만, 오태석 동국대 교수가 좋은 논문을 발표해오고 있다. 필자의 연구는 이러한 연구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기호학적 관점을 보다 확대해서 『주역』과 『주역사전』에 전면적으로 적용해 보고자 했다.


필자가 본서를 기획하면서 가장 고심한 것은 『주역』과 茶山易과 기호학을 어떻게 조직해 하나의 체계 안에 질서 있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주역』 혹은 다산역에 관련된 글들은 易學의 전문적 계통이나 개념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지만이 책의 기획의도가 『주역』의 기호적 성격의 해명에 목적을 두고 있으므로, 그러한 방식은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필자는 모든 문제를 기호를 중심으로 풀어나가기로 작정하고, 기호를 토대로 삼아 다른 모든 문제들을 그 토대 위에 올려놓는 방법을 택했다.

82쪽 분량의 서문에 담긴 방향성
이 책에서 특징적인 부분은 82쪽에 달하는 긴 서문이다. 「책머리에」, 「머리말」, 「조감도」 「설계도」를 거쳐서 겨우 본문이 시작되는데, 이것은 나름대로 의도적인 배치이다. 「책머리에」는 책을 쓰게 된 계기와 인사말을 담았고, 「머리말」에서는 문제 제기와 핵심 주장들을 정리했으며, 「조감도」에서는 방대한 본서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요점을 정리했다. 그리고 「설계도」에서는 이 책의 구성체제를 목차순서로 설명했다. 이 가운데 가장 노력을 기울인 것은 「머리말」로, 필자는 본문이 완성된 이후에도 마지막 교정 때까지 「머리말」을 여러 차례 고쳐 썼다. 「머리말」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350년 만에 증명해낸 프린스턴대 수학교수 앤드류 와일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뜬금없이 앤드류 와일즈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정약용이 『주역사전』의 저술을 통해 『주역』의 해석법을 발견해나간 과정을 일종의 퍼즐(puzzle) 풀기의 과정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제1부 ‘주역의 기호학적 독해’는 『주역』과 기호학의 통섭을 위해서 쓴 글이다. 제1부의 제1장에서 ‘인류역사에서의 기호사용의 기원’을 서술한 것은 기호학이라는 大河의 원천지를 찾아가기 위해서다. 필자는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에도 이미 기호를 사용했다는 점에 착안해, 기호사용의 역사를 구석기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가 고찰했다. 서구 기호학의 기원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술과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의 의술에서 찾을 수 있으며, 고대 중국문명에서 기호사용은 결승(結繩)과 서계(書契)를 거쳐 점술의 기호체계로 발전해 갔다. 제2장에서는 기호학과 『주역』의 관계를 고찰했는데, 『주역』의 기호가 갖는 특수한 성격을 분석하고, 현대 학문의 지형도 위에서 『주역』의 기호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았다. 제3장에서는 소쉬르, 퍼스, 모리스, 보드리야르 등의 서구의 대표적 기호학자들의 이론을 『주역』에 접목시켜 『주역』 기호의 특성을 분석했다.


제2부 ‘다산역의 기호학적 체계’는 제1부에서 확보한 기호학적 기초 위에서 다산 정약용의 『주역사전』이 갖는 기호학적 의미를 해석한 것이다. 정약용은 누구보다도 『주역』의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 역학자다. 그는 『주역』의 기호적 특성을 간과한 채 독해할 경우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필연적으로 텍스트의 誤讀을 초래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정약용이 파악한 象의 개념은 퍼스의 기호(sign)의 정의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주역』에서 기호에 상응하는 용어는 象인데, 필자는 정약용의 상론을 模寫說로 정의했다. 다산역학의 체계는 모사설의 기초 위에 건립돼 있는데, 필자는 다산의 모사설이 갖는 철학적 특징을 明代의 역학가 來知德의 卦情立象說과 삼국시대 王弼의 得意忘象說과 대조시킴으로써 명확히 설명하고자 했다. 제2부 제4장에서는 정약용의 『역론』에 나타난 『주역』의 기호모형의 성립과정을 시뮬레이션(simulation) 모형을 통해 설명했다. 이것은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의 개념을 다산학설에 적용시킨 것이라고 보아도 좋다.


제3부 ‘다산역의 해석방법론’은 종래 다산역학의 전공자들이 가장 많이 다뤘던 부분인데, 필자는 선행연구와 중복되는 점을 최대한 피하고, 한 발짝이라도 앞으로 내딛기 위해 노력했다. 그 한 가지 예로서 효변설은 다산역의 해석체계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인데, 필자는 효변설의 기원을 정약용이 의거했던 『춘추좌씨전』을 훨씬 뛰어넘어 出土易學의 자료에로 거슬러 올라가 찾고자 했다. 제4부 ‘다산역의 서사기호학’에서는 그레마스(Greimas)의 이론을 원용해 『주역』을 바탕으로 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했다. 필자는 『주역』에서 다섯 가지 주제를 선택하고, 여기에 스토리텔링의 기법을 결합해 다섯 가지 이야기로 꾸몄다.

‘효변설’의 기원 ‘출토역학’에서 찾아
고백하건대, 필자는 기호학 전문가가 아니며, 필자의 기호학적 지식은 매우 초보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특히 퍼스의 기호학은 매우 난해하기 때문에 퍼스의 기호학적 체계에 대한 필자의 이해는 피상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레마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필자는 서사기호학적 관점을 그야말로 원론적 수준에서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기호학에 대한 천박한 이해는 기호학적 사유를 철저하게 『주역』 해석에 침투시키는 것을 어렵게 한다. 기호학과 『주역』의 만족스러운 결합은 향후 학자들에게 맡겨진 과제다.

방인 경북대·철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정약용의 『주역사전』을 제자 장정욱과 함께 완역(『역주 주역사전』, 전8권, 소명출판)해 출판했다. 정약용의 역학체계를 기호학적 관점에서 읽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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