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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문학)
[인터뷰]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문학)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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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의 경직성 경계하는 哲人
“아직도 학문을 한다는 것, 또 영문학을 한다는 것에 대해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든다”라고 말하는 김우창 교수. ‘모든 개념은 모순 속에 있다’라는 헤겔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그는 ‘심미적 이성’의 개념을 쉽게 정의 내리려 하지 않는다. 개념화된 정의가 가지는 내적 모순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체되지 않는 사고를 지향하는 김 교수를 지난 13일 오전에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심미적 이성의 개념을 두고 후학들이 내린 정의가 많습니다. 심미적 이성을 생각하게 된 동기와 그 정의를 말씀해 주십시오.

“심미적 이성이라는 말은 어느 잡지에 글을 쓸 때 문득 메를로 퐁티가 생각나 우연찮게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정확한 개념 작업 없이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많은 이들이 꼬리표를 붙이기 시작했고, 다시 돌아보니 내 생각을 관통하는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를로 퐁티는 사상적으로 지각현상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맑스주의자였다. 그는 맑스주의가 내세우는 이성의 개념이 너무 경직됐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에 유연하게 적용시킬 수 있는 이성인 심미적 이성의 개념을 사용했고, 나 역시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좌파 운동 역시 경직된 관념으로 역사와 사회를 이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용하게 됐다. 사람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적인 세계와 그것을 통일할 수 있는 일관된 세계의 통합을 바란다. 구체적이지만 보편적인 존재가 되기 바라는 것이다. 심미적 이성은 이런 것을 통합하는 이성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감각적인 가변성과 이성적인 통일을 할 수 있는 유연한 이성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직성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다는 것도, 심미적 이성을 사용하면서 산다는 것도 현실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기본적으로 개인이 삶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느냐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유는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말처럼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규범에 어긋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의 핵심은 규범에 대한 동의의 자유가 있느냐는 문제다. 동의의 자유가 있으면 새로운 규범이 생겨나고, 이것은 경직되지 않은 사회를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 이론을 적용시키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우리에게는 동의의 자유가 부족하다. 논의에 있어 가능한 모든 선택지를 제시하고 그 중에 선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가장 좋으니 무조건적으로 따르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선택을 해야한다는 필연성과 다양한 선택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의성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선택을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이성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신 듯 합니다. 그러나 최근 포트스모더니즘의 경향에서는 이성에 대한 부정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인간이 가진 자연적 토대, 경제적 토대, 능력의 한계 등의 제약들을 다 무시하고 중심을 해체하려는 것은 한 편으로는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허무할 뿐이다. 일시적으로는 이런 관점이 가능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하다. 물론 이성중심주의가 이완될 필요가 있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우리 전통에 관한 연구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최근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과연 우리에게 인문학이 제대로 존재했는지조차 의문이다. 일본 식민지를 통한 단절이 인문학의 근원을 잘라놨다. 알다시피 서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현실을 구성하는 규범은 여전히 전통의 영향을 받고 있다.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단절된 전통을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이 역시 전통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 현실을 규정하는 것을 보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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