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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는 과거가 현재에 준 선물이자 遺産입니다”
“마키아벨리는 과거가 현재에 준 선물이자 遺産입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4.01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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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伊수교 130주년 기념 ‘르네상스형 인간, 마키아벨리’ 기획전 연 세르죠 메르쿠리 주한 이탈리아 대사

▲ ⓒ 최익현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과거의 문화를 재건하고 복원하는 게 아닙니다. 과거로부터의 특징, 장점, 보편성들을 다시 꺼내 와서 현대에 유익한 것을 찾으려는 것이고, 마키아벨리 展도 그런 노력의 하나입니다.

지금 서울 서초동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마키아벨리 기획전이 한창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마키아벨리 기획전을 하다니? 이 기획전을 마련한 곳은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이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의 해인 올해 이탈리아대사관에서 마키아벨리 사상의 ‘현재성’에 주목해 ‘르네상스형 인간, 마키아벨리─그의 삶과 저작’ 전을 마련한 것. 세르죠 메르쿠리 주한 이탈리아대사 부부가 그 한 가운데 서 있다. 1987년에 외교관으로 한국에서 근무했던 그는 2012년 12월부터 ‘대사’로 다시 인연을 맺었다. 이들이 기획전 장소를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잡은 것도 의미 심장했다. 마키아벨리의 삶과 저작을 조명하는 전시 성격에 딱 맞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마리아 조안나 파디가 메르쿠리 대사 부인의 한국과 맺은 깊은 인연이 자리잡고 있다(아래 박스 기사 참조). 중국이나 일본보다 한국이 훨씬 더 이탈리아와 가깝다고 말하는 세르죠 메르쿠리 대사를 만났다.

대담: 최익현 편집국장
통역: 김홍래 이탈리아대사관 공보관
일시·장소: 2014년 3월 26일 국립중앙도서관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한국-이탈리아가 수교한지 130년이 됐습니다. 지난달 국회에서 마키아벨리를 재조명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있었습니다. 24일부터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마키아벨리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고요.
“우선 교수신문과 인터뷰 하게 돼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지식인층일테니 제가 설명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오늘 인터뷰 장소가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도서관이라는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이 질문에 적절한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우리가 마키아벨리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위대한 사상가, 철학자이기도 하지만 현대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가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를 잘 설명했던 것들이 사회과학 분야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여를 했었죠. 특히 이런 작업이 이뤄진 시대가 1500년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더 그런 점이 강조됩니다. 또한 각 개인의 공공성이라던가, 공화정 형태의 정부 등의 공적 책임성을 생각할 때 마키아벨리를 소개하는 것이 매우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 2012년 1월부터 주한 이탈리아 대사로 일하고 계십니다. 1987년부터1989년까지 한국에서 근무하셨더군요. 어떤 변화를 감지하셨는지요.
“1987년부터 1989년에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그 시기까지 다 합치면 5년 정도 한국 경험을 한 셈이지만, 기간으로 보면 꽤 긴 한 세대 가까운 시간을 한국을 바라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3~4년의 변화보다는 25년을 놓고 이야기하고 싶군요. 물론 변화가 있었지만 저는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국민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변화보다는 지속성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많은 경제발전이 있었고, 소비패턴도 바뀌었고, 특히 IT산업이 모든 분야에 들어갈 정도로 비약적인 발전이 있긴 했지만, 국민성은 궁극적으로 바뀌진 않았다고 봐요. 이미 많은 목표를 달성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특성은 여러 분야에 있어서 또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것을 달성하려는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바뀌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분명한 목표가 필요한 나라인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 ⓒ 최익현

△ 지금 동북아는 새로운 질서가 구축되고 있습니다. 긴장도 조성되고 있고요. 과거 유럽외교 정책에 참여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한 조언을 하신다면. 

“최근 유럽이 많은 위기를 겪었고, 자기 스스로 유럽을 깎아내리는 평가를 하는 경향도 많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이 안정을 유지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합니다. 무력충돌이나 전쟁이 없었죠. 최근 2천년 동안 가장 번영을 구가한 시기라고 볼 수 있죠. 이런 것이 바로 유럽이라는 지역적 차원에서의 성공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 내에서 공통의 관심사가 해결됐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이런 공동체적인 방식을 이뤄내기 위해서 매주 수천 명의 각 나라의 관리들이 브뤼셀에 도착합니다.

26개국이 회원국인데 그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의논을 하는 거죠. 거기서 의논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토론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은 각 개별적인 권리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고 유럽의 한 일원이라는 공통의 권리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유럽의 권리’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게 유럽국가 협력의 ‘척추’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아시아는 바다도 있고 국가 간 거리가 멀죠. 물론 최근 이런 거리가 좁혀지고 있긴 하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될 필요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공동체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과거 한 번도 없었던 경험입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우리 유럽은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마르크스는 그리스-로마 시대를 ‘인류의 유토피아’라고 말했습니다. 이탈리아는 자국 문화를 어떻게 계승하고 유지하는지 궁금합니다.
“이탈리아 문화가 그리스-로마 문화를 계승한 문화이긴 하지만 이후 새로이 독립적으로 발전시킨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세 철학자의 표현을 빌려 말씀드리고 싶네요. ‘우린 난장이지만 큰 거인의 등에 앉아 있는 난장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위대한 그리스 문화 위에 있는 난장이인 것 같아요. 우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은 과거의 문화를 재건하고 복원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완성됐죠. 복원보다는 단지 그 과거로부터의 특징, 장점, 보편성들을 다시 꺼내 와서 현대에 유익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고, 마키아벨리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지 과거의 것을 재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좋은 특징을 꺼내 현재 모두에게 좋은 재산이 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고, 이것이 고대와 르네상스, 그리고 현대까지 오는 지속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사께서도 한국의 K-pop을 아실 것 같습니다. 문화강국 이탈리아의 사례를 들어 한류를 포함한 전통적인 한국문화의 세계적 발신을 위한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한국의 문화라든가 공연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세계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금 인터뷰 하는 장소가 도서관이죠. 저는 한글의 중요성에 대해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 사람입니다. 한글은 우리가 말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말하는 개념을 이해하기에 중요한 언어라고 생각해요. 가령 한글에 대해 외국인에게 더 잘 설명하고, 한글이 컴퓨터에도 더 적합한 언어라는 것 등을 홍보할 수 있다면 유익하지 않을까요? 한글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고 구성돼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고, 또한 한글이 굉장히 고유하고 혁신적인 언어란 것도 설명해주는 거죠. 이게 바로 최근 50년 동안에 일어난 중요한 발명이 아니라 500년도 더 된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요.

‘알파벳’ 문자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 일본보다는 이탈리아와 한국이 더 가깝게 느껴지고, 이것이 두 나라의 거리를 더 좁혀주는 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전시회가 도서관에서 이뤄지는 것,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행사 중에 가장 중요한 인물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중앙도서관과의 만남이라는 것도 굉장한 상징성이 있어서 선택한 겁니다.”

△마키아벨리 등을 배출한 이탈리아의 학문적 강점은 무엇인가요? 또 이탈리아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대학을 지원하고 있는지요.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볼로냐대에서 서강대, 숙명여대, 숭실대, 한국외대를 방문했습니다. 이유는 좀 더 많은 교환, 협력을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적어도 박사학위중인 연구원들이나 교수진들을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방문이었죠. 서울대, 이화여대 역시 이탈리아 대학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주로 각 대학의 독립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정부가 대학에 뭔가를 제시한다기보다는 스스로 하도록 두는 편입니다. 오는 5월에 새로운 접촉채널을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한국 학생들이 이탈리아로 가기 위한 채널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물론 이탈리아 학생이 한국에 오는 것도 도움을 줄 수 있겠죠.

▲ ⓒ 최익현

또 2012년에 제가 직접 서명한 워킹홀리데이 협정도 곧 비준될 예정입니다. 한국 학생들이 이탈리아에 가서 일도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겁니다.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방증이겠죠.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한국에 귀국해서 커리어 잘 쌓아 중요한 지위에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이 없다면 사람들도 용기가 없어질 테니까요. 하지만 10년, 15년 동안 이 프로그램을 지속해나간다면 경험이 축적돼 많은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때는 로마가 세계였죠. 지금은 팍스 아메리카나라고 불릴 정도로 미국이 세계의 표준이 돼버렸습니다. 문화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세계화=미국화’에 대한 견해를 듣고싶군요.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역사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후쿠야마라는 사람이 역사는 종언을 고했다는 책 『역사의 종말』을 썼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아요. 연초라던가 연말이면 한 해 사건사고를 열거하는 기사가 나오는데, 어느 한 해도 반복되는 해가 없습니다. 연초에 올해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도 없고요. 과거에는 라틴어가 세계어였고, 한때는 프랑스어가 세계어였죠. 지금은 영어가 그렇고, 앞으로는 중국어가 그렇게 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이 영원히 세계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세르죠 메르쿠리(Sergio Mercuri) 주한 이탈리아 대사는
1959년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볼로냐국립대에서 경제학으로 석사를 했으며, 로마 외교연구원과 독일 가르미쉬 파르텐 키르헨의 안전연구를 위한 유럽센터인 조지 C. 마셜 센터에서 외교관련 연구를 했다. 1987년 주한 이탈리아대사관의 부공관장으로 부임하며 첫 해외지역 근무를 시작해 한국과 인연이 깊다. 이후 맨체스터 이탈리아 영사를 역임했고, 워싱턴 D.C. 이탈리아 대사관에서도 근무했다. 특히 2007년부터 2010년까지는 아프가니스탄 특사로 파견돼 국제무대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안정화와 재건을 위해 노력했다. 2012년 1월부터 한국과 북한의 대사를 겸직하고 있으며 부인과 슬하에 아들 하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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