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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화살' 날아가는 사극·다큐, 역사고증이 필요한 이유
'불화살' 날아가는 사극·다큐, 역사고증이 필요한 이유
  • 최형국 경기대 역사학과 박사후 연구과정
  • 승인 2014.03.31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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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_ 최형국 경기대 역사학과 박사후 연구과정

최형국 경기대 역사학과 박사후 연구과정
필자는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역사학 공부를 시작했다. 갑옷을 입고,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전통시대 무예를 수련하다가 ‘무예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전통시대 ‘무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보다 근원적으로 풀어보기 위해 붓을 잡게 됐다. 그렇게 무예를 통해 몸 공부를 한지가 20여년이 됐고, 중앙대 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경기대에서 박사후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몸과 무예에 대한 역사는 지극히 파편화돼 사료 여기저기에 흩뿌려져 있다. 마치 산산 조각난 퍼즐조각을 맞춰가듯 역사 속에서 소외된 그들의 삶을 되짚어 보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필자의 박사학위가 비록 문학박사(역사학)지만 「조선후기 기병의 마상무예 연구」라는 조금은 이색적인 주제로 논문을 쓰게 됐다. 이를 위해 사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내 몸으로 직접 말을 달리며 각종 마상무예를 훈련하고 몽골까지 해외 전지훈련을 진행해 기병전술을 실증적으로 풀어보려고까지 했다.

조선시대의 무인들이 지향하고자 했던 ‘문무겸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내 몸으로 증명하는 것, 그것이 어찌 보면 더 실증적이지 않을까하는 치기어린 호기심이 여기까지 이끌었다. 소위 정통 역사학을 운명처럼 걸어 온 선생님들의 눈에는 괴상한 외계인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역사학을 공부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조심스레 펼쳐 보이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무예사와 군사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면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이 TV 사극 속 고증의 문제다. 사극이라는 것이 작가적 상상력이 더해지는 오락물이라는 반박도 있지만, 사극 속 무예사와 군사사와 관련한 이상한 고증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대표적으로 주인공들이 늘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다. 전투가 발생하면 칼을 뽑아 적진에 달려 들어간 후 칼집은 사라진다. 이후 전투승리 후에는 어디선가 칼집이 다시 나타난다. 원래 전투용 칼은 몸에 차는 것이 원칙이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칼집에 띠돈이라는 360도 회전형 고리를 달아 몸에 패용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어떤 역사 다큐멘터리에서는 조선 국왕의 호위무관인 선전관이 일본도를 일본 고유의 패용법인 허리띠에 거꾸로 꽂고 호위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또한 야간전투에 등장하는 불화살인 화전은 천년 즈음 소급하기도 한다. 누구나 불화살하면 밤에 활활 타오르며 날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화약이 발명되기 전인 고려중반 이전에나 사용했던 방식이다. 화약무기가 본격적으로 개발된 조선초기에는 화살 끝에 작약통을 달아 날아가서 물체에 박힌 후 터져 불길을 터뜨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나 18세기 정조시대 관련 사극에서도 여전히 구닥다리 불화살이 하늘을 가르고 있다. 심지어 발사된 화살의 평균 속도가 초속 65m/s 정도이기에 그렇게 활활 타오르면서 화살이 날아갈 수가 없다.

이와는 반대로 천자총통이나 호준포를 비롯한 전통 화포류의 무기는 몇 백 년을 앞당기기도 한다. 이순신 관련 사극에서 포탄이 날아가 거대한 불길을 일으키며 폭발하거나 정조시대 관련 사극에서 야간 군사훈련시 포탄이 떨어져 불바다를 이룬다. 이러한 충격신관형 폭발물은 서양에서도 19세기 중반에나 만들어진 근대식 무기로 당시에는 그저 둥근 돌덩어리나 쇠뭉치가 날아가기에 폭염은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가 흔히 삼지창이라고 하는 거대한 포크처럼 생긴 창인 당파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명나라 군대에서 보급된 무기였다. 그런데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 관련 사극에 이 무기가 당당하게 등장한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거의 모든 사극의 포졸들은 단체로 이 당파를 들고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오늘의 사극이다. 이외에도 말 등자가 없었던 시대에 등자에 발을 끼고 기병들이 전투를 한다든가, 삼국시대에나 사용했을 환두대도 방식의 칼을 조선시대 전투장면에서 사용하는 등 수십 가지 뒤죽박죽의 무예사 고증 오류들이 사극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상력이 가미된 사극을 연출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역사 다큐멘터리까지 만들기에 가장 사실적이어야 하는 다큐마저 엉터리가 된다는 것이다. 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사극의 무예사, 군사사 고증 행태라면 임진왜란 때 선조가 스마트폰을 꺼내 이순신 장군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쟁터의 상황을 묻고 이순신 장군이 아주 힘들다는 이모티콘을 보내도 문제가 될 것이 없는 지경이다. 아니면 거북선 머리에 화염방사기를 달거나 판옥선 위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못된 왜군들에게 난사를 해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그래봐야 500년 정도 앞선 것인데, 주몽이나 선덕여왕이 등장하는 사극에 1900년대 영국식 말안장이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니 그들에게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단순히 고증 문제를 떠나서 한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이라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문제다. 그래서 요즘은 사극을 만들 때 애초에 ‘퓨전’이니 ‘팩션’이니 하면서 고증문제를 넘어 가려 하지만 해결 방안이 잘못된 것이다. 무예사와 군사사 고증은 어렵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생존 그 자체다. 한손에 칼을 들고 나머지 한손에 말고삐를 쥔 기병은 적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둥근 원형통에 화살을 가득 담아 등에 맨 궁수가 허리를 굽이면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무예사 고증이 잘못되면 생존이 불가능한 것이다.

필자는 부족한 실력이지만, 이러한 부분을 각종 매체를 통해 십년 넘게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있음에도 전혀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3월에는 이런 문제를 주제로 논문을 써서 역사 관련 학회에 공식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이제는 관련 학자들이 곰팡내 나는 문헌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분에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은 TV사극과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역사공부를 하고 있다. 아니 각인되고 있다. 역사왜곡은 그리 먼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만약 한류라는 이름으로 그런 작품들이 일본이나 중국에 소개되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기가 두려울 지경이다. 이제는 그 고증 오류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한다. 이 또한 좌우를 떠난 역사바로세우기의 일환이다.

최형국 경기대 역사학과 박사후 연구과정
중앙대 역사학과에서 한국사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현재 말을 타고 무예 수련을 병행하며 한국전통무예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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