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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라, 그리고 응답하라
기억하라, 그리고 응답하라
  • 교수신문
  • 승인 2014.03.2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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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인생의 프로젝트 중 하나는 40세가 되기 전 소설을 써서 등단하는 것이었다. 박완서 선생은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80세(만 나이로는 79세)까지 40년을 소설가로 사셨다. 그러니까 40세는 소설쓰기에 그리 늦지 않은 나이라 위안을 삼았다. 하지만 박사 논문 쓰고, 학생들 가르치고, 남보다 조금 늦게 아이 키우고 허덕이며 살다보니 어느덧 30, 40대가 지났고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50세가 됐다. 내 마음 속 마지노선 하나가 무너진 느낌이다.


돌이켜 보니 나도 소설을 썼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별다른 취미라고는 없고 몸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집 책장을 장식한 ‘한국단편문학전집’이나 ‘세계문학전집’을 읽다 지루해지면 <여학생>이라는 잡지를 즐겨 읽고는 했다. 당시 <여학생>은 매해 여학생문학상을 개최해서 소설이나 시를 공모했는데, 문학소녀의 열병을 앓던 여학생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기에는 적격이었다. 그 대열에 나도 합류한 것이다. 결국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때 썼던 소설은 학교 문예부 선생님의 관심 덕에 학교 교지인가에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여학생>에 소설을 투고했던 경험은 ‘나도 언젠가는 소설을 쓸 수 있겠지’라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이랄지 희망을 심어준 격이다.


사실 40대 후반에 공부와 내 삶의 경험을 어떻게 연관 지을지 고민하면서 세웠던 다른 프로젝트가 있다. 소위 486(한때는 386으로 불렸고, 이제는 486을 넘어 586이 된) 세대의 문화적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공지영의 소설 『봉순이 언니』를 읽다가 작가와 나의 경험이 비슷해서 놀란 적이 있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와 계몽사판 어린이 명작동화를 열렬히 읽으면서 자랐다. 국민교육헌장과 구구단을 강제적으로 외우고, 자유교양문고 류의 필독서를 암기해 학교대표로 대회까지 나간 적이 있다.

중고등학교 때에는 청소녀 잡지 <여학생>과 할리퀸 문고, 사랑의 체험수기 류의 선정적인 책을 읽으면서, 한 편으로는 전혜린의 에세이, 을유문화사판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단편문학전집’을 끼고 다녔다. 문학 혹은 문화와 관련된 이런 소소한 기억들이 연구할 깜냥이나 될까. 몇 년 전 나는 박완서 선생의 자전적 소설에 간간이 표출된 문학과 관련된 에피소드, 공지영의 『봉순이 언니』에 드러난 작가의 경험을 묶어 「젠더화된 문화적 기억」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쓴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 또래 세대인 소위 486세대 여성들이 공유하는 문화적 기억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들은 반공과 민족, 애국을 국시로 하는 집체교육에 별다른 의문을 표하지 않으면서도 잡지 <여학생>이나 <하이틴>에 실린 로맨스물, 명랑소설, 하이틴소설에 열광했고, 할리퀸 문고와 같은 선정적 소설에 매혹됐던, 순응과 일탈 사이의 경계에서 유동했던 존재들이다. 근엄한 이데올로기와 선정성의 아슬아슬한 동거에 별다른 의혹을 표하지 않았던 이 세대들의 정체성은 70년대 중후반, 8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가면서 엄청난 파열을 겪게 된다. 민족, 민중, 계급과 여성해방론 간의 결합가능성을 고민했고, 이들 중 일부는 90년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이후 여성운동의 제도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시기별로 엄청난 단절과 격절을 경험한 세대가 지닌 공통감각이나 망탈리테를 규명하는 것은 나로서는 사적인 문화적 기억을 더듬는 일이며, 같은 시기를 살아 온 여성들의 문화적, 지적 계보를 작성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내가 살아온 시절을 기억하기 위해, 그리고 사적인 기억을 공공화하기 위해서 내 나이 40대를 넘기지 말아야지라고 마음에 또 하나의 마지노선을 만들어 놓고 몇 번 프로포절을 적어보기도 했다. ‘486세대의 젠더화된 문화적 기억’이라고 일찌감치 제목도 생각해 두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50세가 됐다. 한국 나이로는 50이지만 만 나이로는 아직 40대라는 궁색한 자기합리화를 하며 요즘도 이 공유기억을 어떻게 학문적으로 잘 벼릴지 궁리 중이다.


「응답하라 1994/1998」라는 드라마, 영화 「건축학 개론」의 흥행을 계기로 90학번 세대의 대중문화적 감수성이 이슈가 되고, 계몽사판 어린이 명작동화가 복간된다는 소식도 들리는 등 지난 시절의 문화가 아련한 향수를 자아내면서 되돌아오고 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기기와 더불어 청춘을 보내지 않은, 문자 세대이기에 가능한 기억 되살리기인지도 모른다. 그 정점에 아이러니하게도 모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만든, 스마트폰 시대의 기억 되살리기 콘텐츠 ‘밴드’가 있다.


작년인가 고등학교 동창 아버님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밴드에 가입했고, 한 번 가입을 하니 줄줄이 초등학교 밴드, 대학교 밴드로 연결됐다. 대학교 밴드의 이름도 ‘응답하라 00 영문84’이다. 84년에 대학을 들어갔으니, 올해는 30주년 홈커밍데이가 있을 것이고, 고등학교도 나이 50을 맞이해서 비슷한 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밴드에서는 중년이 된 동창들끼리 소식을 묻고, 오늘의 유머를 나누고, 자식 걱정, 건강 걱정을 하고, 그간 살아왔던 속내를 이야기하며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고등학교 혹은 대학 때의 기억 한 자락씩을 펼쳐놓고 퍼즐 맞추기를 한다.

학관의 식당밥, 학교 앞 주점과 다방, 무도회장에 대한 기억이, 지루했던 교수님의 강의에 대한 일화가 바쁘게 오고가기도 했다. 이 거대하고 촘촘한 유대감, 말 그대로 ‘밴드’를 경험하면서 말들과 기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을 떠올리고는 한다. 그리고 여전히 이런 개인들의 기억을 문자로 남기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을 다잡고는 한다. 해서 ‘486 세대의 젠더화된 문화적 공유기억’이라는 나만의 프로젝트는 비록 숫자 4가 5로 바뀔지라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40대에 소설을 써서 등단하겠다는 계획은 실패로 끝났지만, 또 다른 내 마음의 마지노선은 아직 견고하다. 대중잡지와 하드커버 문학전집을 탐독하던 문학소녀에서 출발해 사회과학책을 읽으며 변혁을 꿈꾸던 서슬 퍼런 20대 여대생으로, 대학 시절 여성문제에 눈 떠 결국 여성문학을 공부하는 30, 40대 연구자로 숨 가쁘게 존재 이동을 해 온 나, 그리고 우리 세대를 지탱한 문화적·문학적 기억을 계보학적으로 탐색하는 것. 이것이 2~3년 새 내가 세운 프로젝트이다. 그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 잡지 <여학생>의 문학섹션 파고들기이다. 최초로 내가 소설쓰기를 감행하게 했던, 낙선의 고배를 마시게 했던 애증의 잡지를 차근차근 뒤적이면서 6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긴 세월을 소녀-여학생들의 문화적 취향을 주조했던 기록들에 실천적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다.
나는 오늘도 부쩍 침침해진 눈으로 잡지의 목차를 정리하고 분류하는 지난한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가 지루해지면 밴드에 들어가 글을 남길 것이다. ‘혹시 <여학생>이나 <학원> 같은 잡지 기억나니, 친구들아?’

□ 다음호 필자는 박정애 강원대 교수입니다.



김양선 한림대 기초교육대학·국문학
필자는 서강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 여성문학 장의 형성』, 『근대문학의 탈식민성과 젠더정치학』, 『1930년대 소설과 근대성의 지형학』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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