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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를 긍정·부정하는 쪽 모두 지나치게 그를 潤色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를 긍정·부정하는 쪽 모두 지나치게 그를 潤色하고 있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3.17 14: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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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_ ‘동아시아 맥락에서의 마키아벨리’

숭실대 가치와 윤리연구소(공동소장 김선욱·곽준혁)는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대사 세르지오 메르쿠리), 최재천 의원실, 이탈리아 문화원과 공동으로 지난 14일 국회 의관회관에서 한국-이탈리아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동아시아 맥락에서의 마키아벨리’를 주제로 2014 국제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심포지엄은 1851년에 설립된 영국의 저명 출판사인 루트리지의 정치이론 시리즈의 하나인 ‘동아시아 맥락에서의 정치이론’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스테파노 우시,「 니콜로마키아벨리, 서재에서」, 1894. 마키아벨리는 외교문서를 쓰는 데 뛰어난 소질이 있었을 뿐만아니라, 상황을 간명하게 보고하는 데 탁월한 소질이 있다고 정평이 났다. 게다가 제2서기국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전쟁을 총괄하는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라는 직분까지 맡았기에, 마키아벨리는 사보나롤라 몰락 이후 수립된 외교 업무와 전쟁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게 된다. 사진제공 민음사

왜 지금 다시 마키아벨리인가. 곽준혁 소장은 콜린 크라우치가 말한 ‘후기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오늘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선거를 통해 정부가 유권자에게 책임을 지는 좁은 의미의 민주주의는 확대됐지만, 시민은 정치가와 언론이 만드는 인상적 주제에만 간헐적으로 반응하는 소극적인 정치집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바로 크라우치의 지적이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는 시민적 자유와 법의 지배를 보다 튼튼하게 결합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뿐만 아니라, 정치참여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입장과 헌법적 질서 내에서 변화를 수용하자는 주장 사이의 간극을 보다 효과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는 희망적 메시지를 던져준다”라며 마키아벨리의 재소환 이유를 설명했다.

후기 민주주의 시대가 그를 요청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동아시아 맥락에서는 어떻게 해석돼왔는지를 검토하고, 최근 서구 학계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동아시아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재고하기 위해 기획됐다.

르네상스 분야 석학이며 서지학 분야의 볼로냐 학파를 이끌고 있는 쟌 마리오 안셀미 볼로냐대 고전이탈리아학과장은 ‘마키아벨리와 우리’를 주제로 한 제1세션에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 대해 발표했다. 그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문화적 장벽을 넘어 다른 사회에도 호소력을 갖는 이유, 그리고 그의 정치사상을 둘러싼 일반적 오해를 극복할 수 있는 독해 방법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보다 구체적으로 “마키아벨리의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에 내재하는 권력과 힘에 대한 통찰력이 갖는 보편성이 시민적 자유와 관련해서 다시 검토돼야 한다”라며 “군주 또는 독재적 권력행사의 정당화가 아니라 법의 지배를 바탕으로 하는 정치적 현실주의의 정수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독해 방법은 동서양의 차이를 넘어서는 저술이 갖는 문화적 힘에 대한 신뢰로 귀결된다.

“도덕주의 통해 좋은 정치 실현하려는 노력의 무용함”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한국 정치에 갖는 의미를 재고한 발표도 있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마키아벨리와 한국 민주주의」에서 네 가지 주장을 했다. 첫째, 마키아벨리의 정치철학에 내재한 정치적 현실주의를 통해 도덕주의 또는 이념적 도덕률을 통해 좋은 정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용하고 위험한지를 배워야 한다. 둘째, 마키아벨리의 갈등에 대한 견해를 통해 민주주의에서 갈등이 갖는 긍정적인 면을 되새겨야 한다. 셋째,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현실로부터 괴리됐거나 현실과 엷게 연결된 이상주의로부터 잉태된 진보진영의 급진주의에 대한 해독제가 될 수 있다. 아울러 반공주의를 비롯한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지배를 통해 여론을 장악하려는 보수의 단견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넷째, 지금은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에서 군주의 측면 만이 아니라 민중의 측면을 동시에 검토해야 할 시기다.

마키아벨리 해석에 있어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독재’에 대한 평가가 부당하다는 발표도 있었다. 정치이론가인 루치아노 칸포라 이탈리아 바리대 교수는 무솔리니, 그람시 등 20세기 마키아벨리 해석자들의 눈에 비췬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에 대해 논하면서, 마키아벨리의 이해에 있어 ‘독재’ 또는 ‘독재적 권력’을 정당화한다는 일반적 편견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는 “마키아벨리가 옹호했던 민주적 리더십과 인민의 의사를 대변한다는 명분에서 등장했던 많은 독재는 시민적 자유를 이해함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라고 역설했다.

마키아벨리 연구에 대한 국내 권위자인 곽준혁 소장은 마키아벨리의 ‘애국심’이 갖는 이중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곽 소장은 “마키아벨리를 긍정하는 쪽, 부정하는 쪽 모두 지나치게 마키아벨리를 윤색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마키아벨리의 권력정치에 대한 논의는 국내 정치보다 국제관계에서의 힘의 역학에 더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간과됐고, 다른 한편으로는 마키아벨리의 공화주의가 국내적으로는 시민적 자유와 조화되지만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적 팽창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동북아시아에서 민족주의와 힘의 경쟁이 초래할 절망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키아벨리의 팽창주의적 애국심을 평화공존적 애국심으로 전환시킬 대안으로 ‘非지배’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문도 던졌다.

또한 하이그 파타판 호주 그리피스대 교수(정치학과)는 마키아벨리의 제도구상에서 ‘공포’가 갖는 의미를 살폈다. 그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리더십이 갖는 특징을 살펴보고,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를 비롯한 정치지도자들이 주창하는 유교적 리더십의 문제점을 마키아벨리의 눈으로 검토했다.

이 외에도 프란체스코 보르게지 호주 시드니대 교수(이탈리아학과)는 마키아벨리가 ‘사랑’을 통치의 필수적 요소로 제시했는지를 살폈고, 고이치로 마츠다 일본 릿쿄대 교수(일본정치사상)는 후쿠자와 유키치를 비롯한 일본 근대사상가들이 어떻게 마키아벨리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해 발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민주주의에 대한 일반적 기대가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정치’와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되짚어보는 한편, 국가간 치열한 ‘힘’의 대결로 치닫고 있는 동북아시아의 긴박한 상황에서 마키아벨리를 소환해 그의 정치사상으로부터 현재적 의미를 검토했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이들이 복원한 마키아벨리의 정치사상이 현실 정치에 어떤 시사점을 던질지 궁금하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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