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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의 분리부터 시작하자”
“과학과 기술의 분리부터 시작하자”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3.17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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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속에서 과학 짚어낸 오세정 서울대 교수

석학들의 문화강좌 ‘문화의 안과 밖’이 지난 8일 두 번째 주제 ‘공적 영역의 구성’으로 접어들었다. 첫 발표는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 전 기초과학연구원장)가「과학과 문화-문화에 있어서의 과학의 위상」으로 시작했다. 오 교수는 한국사회가 과학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인식하고 ‘기술’개발에 치중했다고 말했다. 과학은 문화이며, 그 출발점은 예술이나 종교와 같다고 주장하는 오 교수의 발표 일부를 소개한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천문학부, 전 기초과학연구원장)
우리에게 과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그동안 과학은 주로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과학(science) 과 기술 (technology)이 합쳐진 ‘과학기술’이란 용어가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한 단어인 듯 쓰이는 것이 대표적인 징표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과학과 기술’을 ‘Science and Technology’와 같이 병렬적으로 쓰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리나라에서만은 ‘과학’이 마치 ‘기술’을 형용하는 단어 같이 쓰이는 것이다.

그러나‘과학’과‘기술’은 엄연히 다르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과학’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이른다’라고 정의돼 있고, ‘기술’은 ‘과학 이론을 실제로 적용해 자연의 사물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이라고 정의돼 있다. 즉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는 것이 주목적이고, 기술은 (과학적) 지식을 인간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주목적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쓰는 ‘과학기술’이라는 용어는 마치 ‘과학 지식을 이용한 기술’이라는 의미로 느껴진다. 과학 지식의 획득 자체는 목적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과학 기술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예산의 비중도 지금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 이유는 주로 산업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서의 필요성 때문이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예로, 보통 연구개발의 성격을 기초, 응용, 개발의 3단계로 구분하는데, 한국의 과학기술 투자는 주로 응용 및 개발연구에 집중돼 왔던 것이다.

과학은 기초연구의 성과물이고, 응용연구나 개발연구의 목표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OECD 국가들이 연구개발에 대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제적인 기준인 프레스카티 매뉴얼에서는 기초연구를 ‘특정한 응용을 염두에 두지 않는 연구’라고 명확히 정의하고 있다. 즉 과학연구를 할 때는 특정한 응용을 목표로 삼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어찌보면 ‘연구를 위한 연구’,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연구’인 것이다.

그러면 이런‘연구를 위한 연구’를 왜 국가는 세금을 써서 지원하는 것일까? 사실 먹고사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기초연구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는다. 오직 미래 과학기술 인력 양성에 필요한 만큼만 투자하는 정도이다. 한국의 경우도 얼마 전까지 마찬가지였고, 일본도 경제성장에 매진할 당시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일본은 선진국들이 투자해서 얻은 기초연구의 과실만 따 먹는다는 의미로 한동안 국제사회에서‘기초연구 무임승차론’의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경제 동물(economic animal)’이라는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했다.

실제로 커다란 혁신을 초래하는 획기적인 원천기술은 주로 기초연구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정보혁명을 통해 지금 우리의 일상생활과 산업을 바꾼 인터넷 기술은 유럽과 미국의 소립자 기초연구의 산물이다. 또한 프랑스의 파스퇴르는 빵이나 수프가 부패하는 이유를 연구하다가 세균을 발견했고, 이 연구는 전염병 차단과 음식의 살균법으로 연결됐다.

기초연구는 그 정의대로 ‘특정한 연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자연현상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해 수행하는 연구’로서, 주로 과학자들의 호기심이 연구의 동기가 된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낮과 밤은 왜 생길까’, ‘하늘이 파란 이유는 무엇일까’ 등 주위의 삼라만상에 대한 기본적인 호기심이 있고, 성장한 후에도 ‘우주는 어떻게 생성됐을까’, ‘생명의 근원은 무엇일까’등 삶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을 계속 갖고 산다.

이러한 호기심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답을 추구하는 것이 과학인 것이다. 사실 이러한 호기심은 문학이나 예술, 종교에서 갖는 호기심과 다를 바가 없고, 극히 문화적인 활동의 일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기초과학 연구는 문학이나 예술과 별로 다르지 않게 소규모 독지가들의 지원을 받는 소수의 과학자들이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두 번의 세계대전에서 과학 기술의 힘을 경험한 세계 각국 정부가 戰後에 과학기술 연구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과학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고, 점점 전문화되면서 대중과 유리돼 마치 일부 전문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를 통해 과학에 의해 알려진 자연에 대한 진실들은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크게 바꿔 놓았고, 아마 앞으로도 과학은 이러한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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