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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진 ‘노동의 새벽’에서부터 아프고 잔인했던 ‘외딴방’의 성장통까지
허기진 ‘노동의 새벽’에서부터 아프고 잔인했던 ‘외딴방’의 성장통까지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4.03.1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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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구로공단’

▲ 구로공단 생활상.
구로공단은 지난 날 우리나라 산업화시대의 슬픈 한 단면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일했던 수많은 젊은 근로자들은 말로는 ‘산업역군’ ‘수출역군’으로 포장됐지만, 그 이면에는 저임금과 거친 작업환경, 그리고 소외의 그늘이 있었다. 구로공단과 이들 근로자들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은 이들의 실태와 애환을 담고 있다. 구로공단과 이곳의 배후지이자 공단 2, 3단지가 자리 잡은 가리봉동은 근로자들의 노동의 고단하고 험한 땀이 맺혀있는 곳이기에 여기와 근로자들을 소재로 한 문학은 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골자로 한 노동문학의 형태를 띌 수밖에 없다.


1984년 가을 구로공단 근로자들은 詩로서 그들의 처지를 대변하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박노해다. 그 자신 1970년대 초에 구로공단 기능공 생활을 했던 박노해는 ‘노동해방’을 뜻하는 필명을 앞세운 잇단 勞動詩를 발표했고 그 목소리는 강렬했다. “피가 마르게 온 정성으로/만든 제품을/화려한 백화점으로,/물 건너 코 큰 나라로 보내고 난/허기지고 지친/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싸구려 상품을 샘나게 찍어 두며/300원 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이리 기웃 저리 기웃/구경만 하다가/허탈하게 귀가길로/발길을 돌린다.”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가리봉동’은 값싼 순대로 간신히 허기를 때우며 시골집에 송금할 돈을 모으던 당시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고통과 애환을 노래한다. 『노동의 새벽』은 예외 없이 노동자들의 일과 삶을 노래한다.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고발, 계급해방에의 간절한 열망, 동료 노동자들을 향한 각성과 단결에의 외침을 담고 있다. 「시다의 꿈」 등 박노해의 일련의 勞動詩들은 송효순, 유동우, 석정남 등의 노동手記류를 계승하면서 좀 더 세련된 장르인 시로 넘어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는 노동자시인에서 노동운동가이자 혁명가로 변신하는 듯 했으며, 급기야 對共사건에 연루되면서 그 후 강파른 세계관의 변화된 모습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로공단을 소재로 한 문학은 소설로도 이어진다. 1987년 이문열이 쓴 『구로아리랑』은 1980년대 구로공단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과 탄압의 양상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당시 노동밀집구역이었던 구로공단에서 노동자들이 겪은 비참한 현실을 리얼하게 묘사하면서 공단 부근의 노동자들 간, 그리고 노사 간의 갈등과 분쟁 등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구성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리랑 곡조 같은 타령조로 이어지는 게 특징이었고 거기에는 부당한 대우를 하는 기업주에게 대항하고자 노동자들의 분발을 촉구하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이 소설은 당시 대학 운동권 학생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통했으며, 1989년에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보다 앞서 1986년에는 양귀자가 단편 「비오는 날이면 가리봉동에 가야 한다」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富와 貧困이라는 세속적인 도시의 논리 속에서 소외된 계층의 문제를 따스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려내면서 도시 외곽 지대에 살고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통해 이웃 간에 벌어지는 갈등과 이해, 그리고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공존의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방현석의 『내일을 여는 집』도 대표적인 구로공단 소재의 소설집이다. 방현석은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그려온 작가라는 점에서 그의 이 소설집은 적잖은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 소설집에 수록된 「새벽출정」은 리얼리즘 소설로서의 작품성과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아 1980년대 대표작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머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도 구로공단 근로자, 말하자면 ‘공순이’ 출신이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 후 상경해 구로공단에서 공장을 다니며 야간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력은 구로공단이 그녀의 문학의 한 원천이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내놓은 작품이 1994년 펴낸 『외딴 방』이다. 이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인 소설이다. 구로공단 노동자로 공장 일을 하며 고등학교에 다녔던 시기를 회상의 수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당시 대부분의 여직공들이 그러했듯 주인공도 ‘외딴 방’에 기거하며 공장에 다닌다.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가난과 절망에 시달렸던 주인공은 그러나 향학열을 잃지 않았고, 힘들게 야간학교에 다니면서 희망을 잃지 않고 꿈을 키운다. 신경숙의 이 자전소설은 청년기의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을 단조로운 문체와 선명한 서술을 통해 현재처럼 드러내고 있다.


구로공단 근로자들의 애환은 이들 작가들의 문학작품들만을 통해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1980년대, 구로공단엔 고된 작업이 끝난 후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문화 시간이 그나마 있었다. 여기서는 문학이나 교양강좌와 함께 글짓기도 했고 이 글들은 모아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여기에 수록된 글 하나.
“미싱사 언니가 막 야단을 친다/자꾸 슬퍼지고 눈물이 나온다/문득 삽자루를 쥔 아버지의 얼굴이/떠올라 슬픔을 참았다./재단사 공장장 아저씨가 막 야단을 친다/자꾸 슬퍼지고 눈물이 나온다/문득 보따리를 머리에 인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슬픔을 참았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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