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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후 더 분주했던 ‘달팽이 박사’의 열정
퇴임후 더 분주했던 ‘달팽이 박사’의 열정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3.10 1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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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생물읽기 세상읽기」100회 맞은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100회.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가 <교수신문>에「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를 연재한 횟수다. 햇수로는 4년이 훌쩍 지났다. ‘생물’이란 돋보기로 세상을 들여다보며 그 안에서 인생과 자연의 오묘한 만남을 들려주는 권 교수. 100회를 맞는 심정이 어떨지 궁금해 권 교수를 서면으로 만나봤다.

“100이란 숫자는 꽉 찬 수이기에 다들 꺼리고, 百에서 ‘一’을 뺀 白을 써서 99살의 白壽宴을 기리곤 하는 것이겠지요. 활짝 핀 滿開보다는 반쯤 번 半開한 꽃봉오리를 즐기는 것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영수 발행인께서 어느 해질 무렵 전화를 해와 글 좀 쓰라고 부탁받아 시작한 것이 이미 4년이 후딱 지났습니다. 한두 번 썼던 주제의 글을 또 보내 서둘러 다른 것으로 고치느라 혼이 난 적도 있었지만 별 탈 없이 무난하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렇다. 그의 원고를 담당하는 기자 역시 언젠가 마감에 닥쳐 지난번 썼던 주제의 원고를 받았다. 다른 원고로 대체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반나절 만에 새로운 원고를 보낸 그의 筆力에 놀란 적이 있다.

늘 좋은 글감을 찾고 쓰는 것에 목말라 있는 그는「생물읽기 세상읽기」를 쓰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서 가장 좋다고 말한다. “우리 한글을 새로 익히는 것이 수두룩하고, 생물전공의 내용정보를 섭렵하다보면 여태껏 몰랐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될 때가 있습니다. 옳거니 하고 손뼉을 치죠. 앎의 기쁨입니다.”

달팽이를 찾아 20년 동안 전국을 누볐던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는 대중적인 과학 글쓰기로 4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권 교수의 원고를 읽으면서 가장 궁금한 점은 아마도 어디서 이렇게나 다양한 소재를 얻고 글을 쓰는가 하는 것이다. <교수신문> 외에도 <조선일보>등 몇몇 언론사에 정기적으로 칼럼을 연재하는 그는 늘 원고 걱정에 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예전 교과서부터 인터넷, 위키피디아 등을‘곰 가재 뒤지듯’뒤진다. 지루해서 못할 것 같아도 차근차근 찾아나가다‘새로운 것’에 맞닥뜨리면 힘이 솟고 보람을 느낀다는 권 교수는 틀림없는 글쟁이다.

그러고 보니 그를 설명하는‘달팽이 박사’라는 오래된 별명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실은 제 전공이 조개, 고둥, 오징어 따위를 포함하는 軟體動物 아닙니까. 서울사대부고 선생을 하면서‘달팽이’로 학위를 받았더니 학생들이 ‘달팽이 박사(Dr. snail)’라는 별명을 붙여주더라고요. 蝸牛라고 부르는 땅에 사는 달팽이(land snail)는 무척 굼뜨면서도 꾸준한 것이 특징이랍니다. 저도 달팽이를 닮아 느릿느릿하면서도 억세게 뻗치는 성질이 있다하니 전공동물을 많이 닮았다 하겠습니다.” 천천히, 하지만 묵묵히 제 길을 가는 달팽이를 찾아 20년 동안 주말마다 전국을 누볐던 그의 삶은 어느덧 달팽이와 꼭 닮아 있다.

생물을 소재로 대중적인 과학 글쓰기 분야를 개척한 1세대인 그는 벌써 40권이 넘는 책을 냈다. 그의 저서는 과학이라면 일단 손사래부터 치고 보는 일반인들에게 과학이 수식으로 된 딱딱한 학문이 아니라 우리네 인생과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흥미롭게 알려준다. 그렇기에 권 교수는 대학이나 초중고교 일선에서 과학 과목 때문에 학생들과 씨름하는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선생님들이 과학을 즐기셔야 할 것입니다. 不狂不及입니다. 선생님들이 자기 전공에 미쳐 살면 저절로 학생들이 따라 올 거예요. 이론도 중요하지만 실험을 통해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지요. 또 과학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새로운 일들이 발견되므로 선생님들도 학생들 못지않게 공부하셔야 합니다. ‘나를 따르라’고 힘차게 부르짖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많이 부족한 국내 대학의 현실에서 해마다 노벨상 수상 요구가 빗발치는 태도에 대해서도 그는 한 마디 덧붙인다. “노벨상은 아무나 타나요. 아니, 머잖아 받게 될 것입니다. 상은 국력에 비례하더군요. 그리고 과학의 역사가 있어야 하고요. 요새는 연구비도 꽤 많아졌고 앞으로 조금씩 늘 것이니…. 로마가 어디 하루아침에 일어났던가요. 상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뚜벅뚜벅 걸을 것이고, 꾸준히 공(탑)을 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강원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가 가장 강조했던 덕목은 ‘少年易老學難成 一寸光陰不可輕 未覺池塘春草夢 階前梧葉已秋聲’이었다. “아침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청춘은 되 오지 않기에 많은 경험을 해야지요. 그렇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연애도 하며 삶이 애옥해지고, 죽살이치는 힘든 일들을 겪다보니 글도 맛깔나며 사람향기 풍긴다는 말도 듣게 됩니다.” 다시 한 번 ‘달팽이 박사’의 인생관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권 교수는 구조조정으로 연구가 황폐화되고 있는 시절을 사는 후배 교수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朱子十悔訓』에‘少不勤學老後悔’이 있습니다.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 말을 조금 바꿔 ‘젊어서 부지런히 가르치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가르치기 위해서는 쉼 없이 배워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열심히 잘 가르친다고 뻐겼던 사람인데 지금 와 되돌아보니 턱없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후회막급입니다. 사랑하는 제자들 잘 가르치십시오. 그리고 아쉽게도 구조조정을 아무리 해도 교수는 그대로 그 교수인 것을. 교수가 구조조정을 먼저 해야 할 것입니다.”

2005년 강원대 생물학과를 정년퇴임하고 곧 10년이 되는데도 왕성한 저술활동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권 교수. 퇴임한 교수들에게 그가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10년이면 강산도 바뀝니다. 新入故出이요 川流겘息이라 했습니다. 뒷물이 밀어제치니 앞 물이 밀려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어떤 이는 퇴임이란 싱싱한 소나무를 홱 뽑아 던져지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그러나 뽑힌 나무랄지라도 앙상하게 마르지 말고 새 뿌리를 내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소털(牛毛) 같이 많은 시간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죽을 때 까지 밀고 나가는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엇보다 ‘영혼의 집’이라 부르는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으뜸가는 일일 것입니다.”

지독한 가난으로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도 못 갔는데 대학교수까지 됐으니 무엇을 더 바라겠냐고 말하는 권 교수의 좌우명은 ‘知足最上’이다. “‘백 년을 다 살아야 삼만 육천 오백일’이라 하는데 여생을 글 읽고 쓰기에 천착하려 해요. 힘들지만 재미가 쏠쏠 납니다.” 그때그때 시대와 계절감각에 어울리는 글을 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말하는 권 교수는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교수신문>에 글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그와 200회 인터뷰 할 날을 기대한다.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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