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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벌 싸움’뒤에 ‘디플롬’있었다
‘파벌 싸움’뒤에 ‘디플롬’있었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4.03.10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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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설’까지 나온 서울대 성악과 사태

‘폐지설’까지 나왔던 서울대 성악과가 결국은 ‘임시 대행 체제’에 이어 특별 기구에서 수습책을 마련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울대는 지난 3일, 음악대학 부학장인 이지영 국악과 교수를 성악과 학과장으로 전격 임명했다. 후속 대책으로 총장 직속의 ‘성악교육 정상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한다고 5일 발표했다. 서울대는 “현재 사태가 성악과와 음대가 자체 해결할 범주를 벗어났다”라고 밝혔다. 교수윤리와 교수임용제도 개선 등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서울대 성악과는 지난 2011년부터 제작 폭행 논란을 부른 교수의 파면에 이어 올해 2월말 정년퇴임 등 교수 4명이 퇴임했지만, 그동안 한 명도 충원하지 못했다. 서울대 성악과의 교수 정원은 8명. 현재 4명의 교수가 있지만, 한 명의 교수마저도 지난 2월 제자 성추행 논란에 휩싸여 서울대 인권센터가 조사를 벌였고, 상당 부분 혐의가 확인돼 교수직 수행도 어려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서울대 성악과 교수들의 의견 다툼과 ‘파벌 싸움’으로 비화된 이번 사태는 신임교수 공채 과정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교수공채에서 최종 임용 후보에 올랐던 지원자의 ‘박사학위에 상응하는 자격’을 인정하느냐가 쟁점이었다.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이 극명하게 나뉘었고, 상대방 교수에 대한 투서와 폭로가 잇따랐다.

이번 서울대 성악과 사태의 핵심 문제는 예술계의 '학위 인정' 문제를 정리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4월 성악과 신임교수 공채 과정에서 최종 후보에 오른 테너 신 모 씨(41세)는 미국 필라델피아 성악원(Academy of Vocal Arts in Philadelphia, AVA)을 다녔다. 이곳에서 받은 ‘아티스트 디플로마’가 서울대 교수 임용자격인 ‘박사학위 상응 자격’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였다. 반대하는 교수들은 AVA는 소규모 사설 음악학원에 불과하다는 입장이고, 찬성하는 쪽은 세계 정상급의 교육기관이라고 맞섰다.

지난해 4월 서울대 음대가 낸 ‘2013학년도 제1차 교수채용 공고’ 테너 남성(고음) 분야와 피아노 분야를 뽑기로 했다. 지원자격은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박사학위에 상응하는 자격을 인정받거나 박사학위에 준하는 업적이 있는 자로 명시했다. 서울대 음대 ‘박사학위에 상응하는 자격 및 박사학위에 준하는 업적’ 규정을 보면, 최고예술학위는 학술학위의 박사에 상응하는 자격으로 인정한다고 돼 있다.

서울대 음대는 독일 콘체르트엑싸멘(Konzertexamen), 미국 아티스트 디플로마(Artist Diploma), 프랑스 씨클 드 페르펙씨온느망(Cycle de perfectionnement)을 전문연주자 학위로 인정하고 있다. 박사학위 상응 업적으로는 석사학위 또는 디플롬 소지자로 공고일로부터 7년 이내의 연구실적이 1천점 이상인자로 밝히고 있다.

서울대 음대 관계자는 “규정에 따라 학술학위 외에 전문연주자 학위와 예술학위(Diplom, Diploma)를 지원자격으로 인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신 씨가 제출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박사학위 상응 자격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자격 논란이 벌어졌을 때 서울대 음대 관계자는 “신 씨가 수학한 학교인 AVA는 단순한 학원이 아니라 비학위(예술학위) 수여 기관으로 미 교육부 산하 National Association of Schools of Music에 등록된 음악원”이라며 “수료증을 제출한 것이 아니라 명확한 아티스트 디플로마를 제출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신 씨가 제출한 아티스트 디플로마가 서울대 규정상 박사학위에 상응하는 예술학위라는 것이었다. 서울대 음대는 당시, 신 씨는 별도의 석사학위 없이 학사 출신으로, 이 과정을 졸업했기 때문에 최고예술학위가 아닌 일반 디플로마로 한 단계 낮춰 지원 자격을 인정했다고 해명했다.

서울대 성악과 교수들의 파벌 싸움이 알려 진 것은 신 씨를 심사한 교수들이 4명은 100점 만점에 만점을 주고, 나머지 반대파 교수 2명은 0점과 5점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터였다.

신 씨의 채용을 반대한 쪽에서는 국립음악원이나 국립음대 디플로마가 아닌 개인 사설 음악학원에서 발급한 디플로마라는 것이다. 국내 음악 학계 원로 교수 100여명도 “어느 음대에서도 사설 학교 졸업장을 석사학위로 인정하지 않는다”며 서울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다른 대학의 한 음대 교수는 “신임교수로 뽑으려는 최종 후보 신 씨의 ‘성악원’ 인정 여부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분야에 따라 여러 교육기관이 있는데, 전공자가 아니면 객관적인 잣대만으로 판단하기는 참 어렵다. 제3자의 공정한 평가가 필요해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음대 내에서도 성악과와 관련한 분쟁이 많은 편”이라며 “정신적인 세계와 소리의 능력과 질, 음악 지식 등 복합적인 요소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아카데믹한 성악 지식을 우선할 것인지, 정말 ‘소리’로 대가를 가려낼 것인지 어디에 초점을 둬야 하는 지 말이 많은 게 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현실에서 순수한 목적으로 입장이 갈라진 문제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특정 내정자 밀어주기 등 불순한 거래 의도가 있었다면 당연히 엄격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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