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17:45 (목)
美國史 연구자의 외도
美國史 연구자의 외도
  • 이주천 원광대 前교수협회장·사학과
  • 승인 2014.03.06 04: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學而思

필자는 1979년 2월 대학을 졸업했다. 그해 10·26 박정희 대통령 암살사건, 연이어 신군부가 주도한 12·12가 터지면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 체포되고 다음해 5·18 광주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혼란 상태로 빠져 들었다. 5·18로 인해 반미감정이 거세지면서 한미 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시점이었다. 취업도 막막했지만 공부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당시 필자는 대학원 진학에 욕심을 갖고 있었다. 자주 종로서점에 갔는데, 미국사 연구 전문서적이 부족한 점을 통감했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라고 했듯이, 결국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미국사 연구의 필요성을 그때 절실하게 느꼈고 대학원에서 전공을 미국사로 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사 연구에서 첫 저서로는 박사논문을 약간 수정한『루즈벨트의 친소정책』(신서원 刊)을 출간했다. 1940년대 2차 대전 말기 미국 루즈벨트 행정부의 대소련 정책이 행정부 내 친소파에 의해 소련에 대해 우호적인 정책을 형성하도록 한 과정을 검증한 것이었다. 필자가 놀란 점은 1930~40년대에 미국의 권부에 암약하는 소련 스파이망이 거미줄처럼 쳐있으면서 미국의 정보를 빼내고 대외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었다는 점이었다. 1949년 소련의 원폭 개발도 미국의 원자탄 개발 정보를 스파이를 통해 입수한 것이었다. 월남이 간첩의 득세로 패망했듯이, 지금 생각하면 남의 나라만의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진다.

1987년 대학교수가 돼서 미국사 논문을 쓰게 됐는데, 원래는 루즈벨트 행정부에서 트루먼 행정부 시절로 연구 주제를 이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이상은 물거품이 됐다. 그 이유는 현실 문제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즉 항상 뇌리에 떠오르는 의문은미국사 연구가 과연 얼마나 현실에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1994년 조지타운대의 교환교수로 가서 1년 머물게 됐는데, 그해에도 북핵 개발 문제가 워싱턴과 미 언론 초미의 관심사였다. 북한의 김일성이 그해 7월에 사망했는데, 북한 문제는 필자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안겨줬다. 1995년 초 귀국해 북한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고, 우연히 서울의 북한문제연구소를 알게 됐다.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구체적 북한 문건을 보면서 회의나 세미나에 참석하게 됐다.

1999년에는 예일대에서 출판해 미국 지성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The Secret World of American Communism을 『미국 공산주의의 비밀세계』(원광대 출판국 刊, 1999)로 번역 출간했다. 이것은 미국 공산당이 코민테른과 주고받은 비밀문건을 번역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 공산당이 자체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침을 받아서 행동해 왔음이 증명됐다.

그러나『루즈벨트의 친소정책』이 우리 서양사학계로부터 무관심으로 처리됐듯이, 이 책 역시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아니, 이 번역서에 대해서는 서평을 써줄 연구자도 구하지 못했다.

2003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미주리대에 교환교수로 있었는데, 한국 문제 칼럼을 썼고 이것을 모아서 2005년『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얼과알 刊, 2005)을 출간했다. 이를 시작으로 매년 한 권씩 김정일 시리즈의 칼럼집을 출간해 올해까지 총 8권을 냈으나, 결국 미국사 전공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외도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학자가 연구에 몰두하면 현실에 어두워지고, 현실에 지나치게 참여해 세속화하면 학자의 고유 기능인 연구력을 상실하게 된다. 즉 학자의 고민은 얼마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확보해 현실 문제에 나름대로 해답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교수직도 이제는 철밥통 시대가 마감하는 것 같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비가 증대하고 외형적으로 연구여건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학사회에 대한 외부에서 몰려오는 기대와 압박은 심각한 것이다. 연구, 학생 취업, 구조조정 등이다. 그러나 후학들에게 이 말은 꼭 하고 싶다. “변화의 물결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주천 원광대 前교수협회장·사학과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 저서로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등이 있다.

이주천 원광대 前교수협회장·사학과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 마르크스주의에 미친 영향」, 저서로 『김정일의 인질이 된 대한민국』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