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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사업 참여 인력의 ‘신분 불안정’에 한목소리, 연구소와 학과 선순환 구조 도입·특성화 제안도
HK사업 참여 인력의 ‘신분 불안정’에 한목소리, 연구소와 학과 선순환 구조 도입·특성화 제안도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3.06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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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중계_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 ‘대학 연구소와 인문한국 지원사업’ 논의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협회장 신승운, 성균관대)가 지난달 21일 서울프레스센터에서 ‘한국 인문학의 미래-대학 연구소와 인문한국 지원사업’을 주제로 개최한 정책포럼은 10년 사업의 3단계인 7년차에 접어든 인문한국(HK) 사업의 성과를 돌아보고 그간 드러난 문제점들을 되짚어보는 자리였다. 여러 관점에서 인문한국 사업을 보기 위해 인문한국연구소협의회는 발제자 선정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다. △대학 외부 전문가(조운찬 <경향신문> 문화에디터) △정책결정자(김천홍 교육부 학술진흥과장) △사업평가자(김태승 아주대 교수) △사업 수행 연구소 교수(박헌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 △대학 내 타분야 전문가(한경구 서울대 교수) 등 인문한국 사업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시각이 교차됐다. 이번 포럼에서 제기된 유의미한 주장들을 소개한다.


「인문한국 지원사업, 무엇을 변화시켰는가?」
김태승 아주대 교수(사학과)

HK사업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개선돼야 할 문제들도 노출됐다. 첫 번째 문제는 인문한국 사업 참여인력 지위의 불안정성이다. 이는 연구전담 교수 등 연구소 운영과 관련된 대학운영체제의 미비와 대학사회의 과도한 신분의식의 문제에서 기인한다. 국내 대학은 연구전담 교수의 운영경험을 거의 축적하고 있지 못하다. 또 기득권을 가진 전공교수 사회도 이러한 새로운 교수제도의 도입과 정착에 대해 협력하기보다는 견제하는 경향이 강해서, 관련 전공과의 협력이 연구소 운영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정년보장 직위를 위한 과도한 경쟁이 양적 성과주의로 나아가는 경향을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도 문제가 된다. 지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연구 자체도 즉각적 성과에 집중하고 연구소 경력을 전공교수로 진입하는 사다리로 이용하려는 경향도 강하다. 연구소 교수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지속적이고도 제도적인 지원책 마련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인문한국 사업의 평가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사실은 상당수의 연구소가 아직도 효율적인 운영시스템을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규모 프로젝트 운영경험 부족은 연구의 집중과 연구역량의 효율적 조직화를 어렵게 한다. 또한 사업 참여 연구 인력의 지위 불안정성 역시 장기적 전망을 가진 연구소 운영계획 수립과 집행을 어렵게 한다. 연구책임자 교체, 총장 교체 등 학교행정 상황의 변화에 따라 연구소에 가해지는 영향이 통제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와 관련한 연구지원 행정체제도 미비하다. 해외 연구소들의 경우 전문적 지식을 가진 행정인력이 연구소행정에 안정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력의 교체에 수반된 연속성, 집중성 부족 등의 문제들을 해소시킨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전문성을 가진 행정인력 지원의 부족과 행정지원 인력 지위의 불안정성들이 더해지면서 연구 인력이 과도한 행정적 부담을 지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마지막 문제점은 연구의 자율성과 정책성 사이의 긴장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최초 인문한국 교수나 연구교수의 연구를 개인적 연구와 어젠다 관련 연구로 구분하고, 전자의 비중을 전체의 70% 정도로 배치했다. 그러나 연구 인력의 어젠다 관련 연구 기피현상으로 인해 현재는 어젠다 관련 연구만을 평가의 대상으로 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으며, 연구 인력들의연구영역과 어젠다가 상당수의 경우 불일치하고 있다. 대부분의 어젠다는 통섭적 경향이 강하고 참여연구 인력들의 연구 분야 역시 넓게는 관련성을 갖고 있으나 미시적 영역에서는 불일치하는 경우가 발생한다(예산 확보를 위해 ‘경쟁력 있는’어젠다가 먼저 구상되고 그 이후 연구인력의 배치가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전공 영역의 확대 노력이 필요했으나 한국 인문학의 전통에서 볼 때, 이러한 확대에 연구자가 적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존재한다. 또한, 연구인력 신분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연구 인력들이 취업시장에서 자기 가치를 높이는 데 어젠다 관련 연구가 실제적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인문한국 지원사업,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박헌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교수(현대소설)

대학의 구조조정과 인문학의 위축이라는 현실 앞에서 연구소는 융복합 연구의 실험장이자 가능태로서 혹은 학과간의 넘치고 모자라는 요철(凹凸)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조직으로 성장해야 한다. 연구소는 학과 체제와 길항하지 않으면서도, 현실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해‘통합인문학’을 창출할 수 있는 전략단위가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의 위기에 몰린 대학에서만 고민하자는 뜻이 아니다. 한국 인문학이, 그것을 담당하는 주체인 대학이 현재의 시대변화에 대응하며 학문적, 사회적 과제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발본적 질문과 함께 이런 고민들이 물어져야 한다. 연구소를 전략단위로 하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국 인문학은 자기 내부에 학제간 연구를 제도로서 정착시키거나, ‘통합인문학’을 수립해 사회 및 국가의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시야를 연구소 밖, 대학 내부로 돌리면 인문한국 사업의 결정적인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그것은 인문한국 사업을 통한 연구역량의 강화, 연구소의 활성화가 정작 대학 내부로 수렴되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현재의 상황대로라면 인문한국 사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학과 소속 교수들이‘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라는 의문을 품는다 해서 이상할 게 없다.

보완책의 하나는 연구와 교육의 선순환 구조를 창출하는 것이다. 유관 학과나 대학원과 협조체제를 구축해‘연구소 근무 3년, 학과(대학원) 근무 3년’과 같은 식의 순환보직을 마련한다면, 연구소 소속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대학 교육과정으로 수렴될 뿐만 아니라, 학과 소속 교수들이 ‘연구년’보다 더 장기적인 기간 동안 연구에 매진해 새로운 화두를 들고 교육현장에 복귀함으로써 한국 인문학 전체의 연구역량이 강화되고 교육 효과를 높이는 결과를 창출할 수 있다.

‘연구소-학과 순환 보직 시스템’은 연구역량의 강화와 함께 대학 구조조정 바람이 거센 현실에서 통합인문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데 있어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연구자는 연구소가 보유한 자료와 연구 네트워크, 인적 자원 등을 활용해 학제간 연구로 대변되는 통합인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한편, 실험해본 가능성들을 교육현장으로 끌어들여 타당성과 의미를 점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BK21플러스사업과 HK사업의 전략적 연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있어야 한다. ‘학문후속세대양성’이라는 기치 아래 BK21플러스사업이 시행된 지 벌써 15년, 현재 3기 사업이 시작된 상태다. 속칭 ‘대학원생 지원프로그램’이라 불리는 BK21플러스사업을 통해 배출된 대학원생들은 어디로 가는가. BK21플러스사업의 출구전략이자 연속프로그램으로 HK사업을 연동시킨다면, HK사업의 인적 토대가 굳건해지는 동시에 BK21플러스사업은 상승 프로그램을 얻는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각기 큰 예산이 투여되는 두 사업의 연동성에 대해 좀 더 치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문한국, 학술발전에 어떻게 기여할까?」
한경구 서울대 교수(자유전공학부)

HK연구소에 대한 향후 지원은 첫째, 무엇보다도 연구소를 연구소답게 육성할 것, 둘째, 과제 지원과 연구자 지원을 분리해 HK연구교수 등 인문학 연구인력에 대한 장기적인 대책을 확립할 것, 셋째, HK교수가 HK연구소의 기반 인력으로서 충분히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정과 지원을 할 것 등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HK연구소들이 연구소로서 장기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한 어젠다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단기적인 공동연구과제가 아니라 연구소가 장기적으로 또한 집중적으로 노력할 것들을 점검해야 하며 이는 포커스와 선택을 필요로 한다. 연구재단은 HK교수의 인건비를 지원하는 대신에 연구소를 연구소답게 성장시키고 발전시키는 노력에 대한 지원을 해야 한다. 여기에는 기본적인 인프라 확보, 자료와 텍스트의 발굴과 정리, 해석과 주석과 번역 작업, 네트워킹과 소통 작업 등이 포함된다.

HK연구교수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현재는 과제 지원과 연구자 지원이 결부돼 있기 때문에 연구소에 대한 낮은 평가로 사업이 중단될 경우 연구자가 엄청난 타격을 받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연구자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며 별다른 귀책사유도 없는 연구자를 이렇게 충격적이고도 위태로운 상황에 몰아넣는 것은 연구자 지원에 지출한 막대한 예산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과제 지원과 연구자 지원은 반드시 분리돼야 한다. 기존의 HK연구교수들에 대해서는 인문한국학술교수(가칭)로서 필요시 연구실의 제공과 일정한 생계비 지원 등 최소한의 지원을 하고 3년에 1회 정도 연구 업적에 대한 질적 평가를 통해 지원 계속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시간강사를 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연구과제에 참여할 수도 있도록 한다. HK연구소의 연구원이 될 수도 있으며 이 경우에는 연구실 제공과 함께 과제 참여에 대한 수당이나 연구활동비를 지급받는 것으로 한다. 아무 곳에도 소속되지 않는 경우는 한국연구재단에서 연구공간을 마련한다.

일부 대학에서는 학칙을 이유로 또는 학부와 대학원의 교양교육 및 전공 교육에 대한 활용, 행정업무활용 등을 목적으로 학과 소속을 추진하고 있으나 HK교수는 연구소의 기간 인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히 연구와 교류의 중심에서 역할이 기대된다. 여러가지 이유에서 학과 소속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 HK교수가 된다기보다는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연구소의 장기적 발전 과정에서 또한 학계의 네트워킹과 소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력이 HK교수가 돼야 할 것이다. 연구능력이 검증된 기존의 학과 소속 교수들 가운데 HK교수로 이적을 희망한 사례가 극히 적다는 것은 이러한 점에서 대단히 실망스럽고 또한 우려되는 현상이다. 제도의 문제 등 초기 단계에서의 혼란이 원인이기도 하지만 향후 한국연구재단 등의 각별한 노력이 요청된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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