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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출판부의 ‘知의 실험’이 반가운 이유
대학출판부의 ‘知의 실험’이 반가운 이유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3.03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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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대학출판협회 서평집 <시선과 시각> 제2집 나온다

볼만한 서평집이 드문 국내 출판계에 (사)한국대학출판협회(회장 권원순 한국외대 출판부장·경제학)가 새로운 서평집 <시선과 시각>을 들고 나온 것은 2013년 6월이었다. 애초 계획은 2012년 12월에 출간하기로 한 것이었지만 여섯 달이나 늦어졌다. <시선과 시각> 창간호는 대학별 대표도서 27편과 분야별 신간도서 58편 등 모두 85편의 서평을 게재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창간 의욕을 불태운 첫 호만 봐서는 <시선과 시각>의 방향성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곧이어 2집을 기획하고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고, 이 역시 지난해 말에 출간될 예정이었지만 다시 해를 넘겼다. 바로 그 <시선과 시각>이 다음 주 독자들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이번 2집은 눈에 띄는 큰 변화가 있다. <시선과 시각> 2집은 인문, 사회, 언어·예술·종교·자연 분야에 걸쳐 35종의 도서들을 서평 대상으로 선정하고, 이를 하나하나 조명하는 리뷰 방식을 따랐다. 무엇보다 특집서평을 전면에 배치하는 지적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규성 이화여대 교수(철학과)의 勞作 『한국현대철학사론』(이화여대출판부, 2012, 975쪽, 38,000원)을 집중 조명한 ‘특집 한국현대철학사론’은 저자에겐 영예로운 자리로 기억될 것이며, 평자들에게는 학문 선배의 지적 작업을 조명해본다는 의미 있는 글쓰기가 될 것이다.

기이한 인문학 열풍과 철학의 빈곤
이종백 편집인(영남대출판부)은 ‘권두언’에서 철학이 있는 삶과 출판을 연결해 화두를 제시했다. 그는 “인문학마저 富의 창출을 위해 도구화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라고 근간 사회에서 일고 있는 인문학 열풍을 불편해하면서 “이러한 논리가 이미 대학 사회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고 여기에 근거한 잣대로 혁신과 경쟁력이 평가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출판부가 어떤 길을 지향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대학출판부가 처한 난처한 상황을 우회적으로 토로했다.


“돌이켜 보면 이런 상황은 어쩌면 ‘철학의 부재’에서 왔기에, 거기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에 맞서 우리 실정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야 할 학계는 서구의 연구 방법론과 성과들을 성찰 없이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학문은 삶과 괴리되고, 대중과도 멀어지게 된 것이지요.” 이규성 교수의 『한국현대철학사론』이 특집서평의 자리에 맨 먼저 오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철학사론』을 놓고 수록된 서평들은 「고난의 시대, 희망의 사유」(이정우 경희사이버대), 「한국현대철학의 쟁점들」(김교빈 호서대), 「『한국현대철학사론』의 의의」(이병창 동아대), 「서양문화와의 연계에서 본 『한국현대철학사론』」(송태현 이화여대 HK교수) 등이다.
현대 한국 철학의 전개를 일본 철학과 연계해 읽어내려는 이정우 교수는 “우리에게 현대 철학이란 서구 철학의 영향을 떠나서는 설명하기 힘든 사유라 할 수 있고, 이 서구 철학은 일본 철학을 매개해서 우리 사유 속에 내장되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철학적 어휘 거의 전부가 일본 철학계에서 번역된 것이며, 따라서 그 번역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현대철학사론』은 한국 철학과 서구 철학과의 연계성은 잘 설명하고 있으나, 일본 철학과의 연계성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라고한계점을 읽어냈다.


『한국현대철학사론』이 던진 철학적 쟁점에 주목한 김교빈 교수는 한국철학의 가능성을 타진하면서 중요한 지점을 제기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방법론의 차이가 아니라 어떤 연구 방법이 한국사회의 문제를 새롭게 볼 수 있는 틀을 만드는 데 효과적이며 한국에 적합한 사유체계를 바람직한 발전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를 따지는 일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나란히 놓고 『한국현대철학사론』을 읽어낸 이병창 교수는 이규성의 책을 가리켜 ‘웅혼한 기백이 담긴 철학서’라고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그 한계를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역사를 진정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모범을 보여주었던 것처럼 배제된 것조차 포함하면서 그 생성을 설명하는 서술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규성의 철학사론도 배제된 것을 포괄하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제된 것까지 서술할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근현대철학사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많은 고민 보여준 2집
“『한국현대철학사론』은 동아시아의 사상과 서양사상의 맥락을 아우르며, 이와 동시에 국이 처한 고통스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새 희망의 제시라는 총체적인 맥락 속에서 한국현대철학사를 기술하고자 하는 과감한 시도의 소산”이라고 평가한 송태현 교수는 이규성의 작업이 “한국 현대철학 선구자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후학들도 우리 시대의 문제와 치열하게 씨름하면서 새로운 철학적 창조의 작업을 시도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대학출판부에 소속된 <시선과 시각> 편집위원들이 본업에 전념하면서 서평집 산파 역할과 산모 역할을 동시에 했다는 사실은 좀 더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평집이 애초 계획한 날짜보다 늦어지는 것은 그런 사정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대학출판부 소속으로 知의 실험을 모색하면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좀 더 넓게 바라보고, 치열한 사유의 과정이 담긴 책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독자들이 대학출판부에서 이런 책들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언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려면, 대학출판부의 더 많은 고뇌가 뒤따라야 한다.


군데군데 서평 대상 도서와 서평자 사이의 비대칭성이 보이긴 하지만, 28매 분량의 서평지면을 마련한 점, 젊은 연구자들 등 다양한 평자들로 필진을 구성한 것, 무엇보다 대중적 흥미위주가 아니라 학술의 고유성에 근접해서 서평 대상 서적들을 추려내고 이것의 의미를 매기려한 점 등은 2집이 거둔 성과라고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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