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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돈벌이 수단에서 치유의 학문이 되려면
의학, 돈벌이 수단에서 치유의 학문이 되려면
  • 교수신문
  • 승인 2014.02.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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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릴레이 에세이

인체가 울리기 시작하는 순환의 출발점은 심장이다. 몸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 곳이 심장인 셈이다. 그리고 자기의지에 의한 몸 움직임은 뇌의 명령에 의해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몸의 울림은 심장에서 시작되고, 몸의 움직임은 머리에서 시작된다는 게 인체에 대한 의학적 기본 지식이다. 최근 관심을 몰고 있는 뇌과학의 입장에서는 인간의 이성, 감성, 학문과 예술적 기능이 모두 뇌에서 조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존재나 관계의 작은 당김이나 울림에 의해 우주가 만들어지고 생명이 창조된다는 최근 과학자나 인문학자들의 주장을 보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이 모두 뇌에 의해서만 지배되는 것이 아니고 인체 모든 조직의 섬세하고도 광활한 관계 속에서 이뤄짐을 가르쳐 주고 있다.


자신을 위한 몸울림으로 생명이 시작된다면 남을 향한 내 몸의 울림은 사랑으로 표현된다. 여러 가지 과학과 인문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생명논리의 기본 핵심을 보면 자기 자신을 위한 수양과 공부도 결국 타인과 환경을 사랑해야하는 이타적 사유로 귀결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참된 몸울림은 생명을 유지시키고 사랑을 창조하므로 인체질병을 위한 의학이나 마음 상처 치유를 위한 문학이 모두 몸울림 공부라고 할 수 있겠다. 몸울림이 자체 내에서 끊기거나 변하면 육체의 질병이 생길 것이고 타자와 주위를 향한 몸울림이 중지되거나 변하면 전쟁과 테러, 범죄로 가득한 세상이 될 것이다. 의학과 문학의 기본병태생리가 이렇게 몸울림에 의해 좌우되니 두 학문의 갖춰야 될 기본틀과 나아가야 할 방향이 함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의학이 몸의 병을 고치고 문학이 마음의 병을 고치는 공통학문임을 이해하게 된다.


첨단 과학의 발전과 맞물려 변해가는 현대의학은 줄기세포의 재현을 필두로 급성장을 하더니 마침내 몸의 세포 일부를 이용해 동종의 생명개체를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됐다. 이러한 첨단 미세의학의 발전은 티끌 같은 먼지 속에 전 우주가 들어있다는 『화엄경』의 ‘一微塵中含十方’ 의 논리와 맞아 떨어지며 이 이론은 법정 스님이 이야기한 ‘사자 갈퀴 속에 사자가 들어있다’는 이론과도 맞아 떨어진다. 한 인간의 몸속에 들어있는 수만 개의 유전자 중에서 실제 한 개체의 일생에 사용되는 유전자수는 수백 개만 필요하며 이를 제외한 수만 개의 유전자가 모두 인류의 역사임을 알게 되면 인간 한 개체의 몸에 인류의 역사가 들어있고 한 인간이 곧 우주임을 말하는 불교 이론과 맞아떨어짐을 알 수 있다. 이런 근거로 기독교가 근현대의 유럽역사를 지배해왔지만 최근엔 유럽, 미주에서 불교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지는 배경이 되고 있고, 몇몇 세계적 철학자나 과학자들로 하여금 신의 창조론을 부인하게도 만들게 됐지만 생명의 경외감은 아직도 신의 존재 아래 풀지 못하는 숙제로 남아있다.


생명의 탄생이 물질과 물질 간의 울림 작용에 의해 이뤄진다는 이론이 과학과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공감을 얻는 데는 미세의학의 발전이 큰 몫을 하게 된다. 20세기 이전 근대의학의 발전으로 인체의 신비로운 기능과 조직이 밝혀지면서 자연의 조화로운 법칙이 누군가에 의해 조율될 것이라는 생각은 모든 근현대학문에 신의 존재를 강하게 부각시켜왔으며 문명이 발달한 곳일수록 유일신의 존재는 부동의 진리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 구조가 밝혀지고 줄기세포의 일부로 새로운 장기를 만들어내는 의학의 발전은 생명을 만드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며 이런 상황에 생명 제조에 대한 윤리적 종교적 이견이 개입돼 신의 존재와 더불어 질병 치유의 현상학적이고 유기체적인 의학 이론은 강한 혼란에 빠지게 된다. 주관적 생명 유지와 삶의 치유가 미세의학의 발달로 영구히 가능해질 것 같은 상황이 생명의 정의와 삶의 새로운 해석의 혼돈을 야기하는 역할도 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몸울림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배경을 가진 의학과 문학은 자연스럽게 조우하게 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학으로서의 근대의학이 인문학이나 문학의 기본 배경과 같다는 숙제를 푸는 방법으로 의료인문학, 의철학, 의학문학이라는 새로운 연구가 생겨나기 시작하고 마침내 우리나라에서도 문학의학학회가 4년 전에 발족했다. 단지 돈을 잘 벌고 출세하기 위해서 의과대학으로 몰리는 한국의 의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공부는 많은 의학적 지식에 덧붙여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이타적 사고가 만드는 성숙한 인간 집단의 배경을 가르치는 것임을 많은 의과대학들이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의학의 대상인 몸이라는 존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형성된다는 이치를 문학을 통해 배우고 관계와 관계 속에서 서로의 치유를 위한 이타적 사고가 필요함을 깨우칠 때만이 현대의학과 의술이 갖고 있는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닫힌 유기체적, 현상학적 근거 위주의 물질 지향적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더 큰 개방적 의학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의학 교육을 받고 배출되는 전문 의료인들의 최대 문제점은 남에 의한 객관적 평가를 받아들이는 주관적 인지가 낮다는 것이며 이로 인해 의료인 내의 소통과 환자와 사회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함을 깨닫고 단지 돈벌이 수단의 의학에서 벗어난 치유의 학문으로써의 의학이 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의학과 문학의 몸 치유에 대한 공통점을 받아들이고 교육해야 하는 제일 큰 이유가 있다.

□ 추천 릴레이 에세이 다음호 필자는 김경복 경남대 교수입니다.

이규열 동앙대 의과대학·정형외과학
필자는 부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척추외과학을 전공했으며, 199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울지 않는 소년』 등을 상재했다. 시 전문 계간지 <신생> 편집인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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