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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이 사라지는 시대 … ‘讀書種子’는 어디로?
서당이 사라지는 시대 … ‘讀書種子’는 어디로?
  •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
  • 승인 2014.02.2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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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서당이 문을 닫고 있다. 청학동 서당이 아니라 대학의 서당 말이다. 근대 교육의 전당인 대학에 전근대적 서당이라니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대학에도 엄연히 서당이 있다. 수도권에만 여섯 곳이다. 서울대 자하서당(1994년 설립), 한국학대학원 청계서당(1997), 연세대 무악서당(1999), 고려대 청한서당(2008), 단국대 단국서당(2012), 건국대 일감학당(2012). 지방에도 여러 곳이 있다고 들었다. 소규모 그룹스터디에 가까운 것이 있는가 하면 다년간의 교과과정을 갖춘 제법 큰 규모의 상설기관도 있다. 전문연구자의 진로를 희망하는 자교 재학생으로 수강 자격을 한정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일반인을 위한 교양강좌나 다름없는 곳도 있다.


이처럼 규모와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대학 서당의 근본 설립 취지는 한국학 분야 학문후속세대 양성에 있다. 한문 원전 자료를 취급하는 한국학 연구자에게 한문 해독 능력은 필수 소양이다. 그런데 대학의 교과과정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교과과정과는 별도로 한문 원전에 대한 심화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게 된 것이다.


대학의 서당은 전통적인 학습 방법에 따라 사서삼경 따위의 한문 고전을 강독한다. 과거에는 漢學者를 초빙했으나, 엄밀한 의미의 한학자가 사라진 지금은 한문 원전에 밝은 대학 교수나 연구원이 강독을 진행한다. 수강생은 해당 대학의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대부분이다. 인문학 전공자만 있는 것도 아닌데, 이들이 원하는 것은 ‘인문학 콘서트’류의 가벼운 교양강좌가 아니다. 전공분야 연구에 필요한 한문 원전 독해 능력이다. 서당 학습만으로 충분할 리 없지만, 한문 고전을 강독하는 경험을 통해 원전 자료에 친숙해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서당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있다. 죽는다는 소리는 이제 식상하지만, 회생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죽어간다고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일찌감치 문을 닫은 연세대 무악서당에 이어 서울대 자하서당이 운영을 중단했고, 단국서당 역시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곳은 평생교육기관의 성격이 농후한 청계서당과 일감학당 정도다.


일반인 대상의 한문 고전 교양강좌는 대학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있으니 아쉽지 않다. 아쉬운 것은 학문후속세대의 단절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을 비롯한 한국학 전문연구기관들이 한문 원전 독해를 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 문턱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대학에서 한문 원전에 친숙해지지 않으면 갈 리가 없고, 원전 강독을 통해 독해의 기초를 마련하지 못하면 갈 수도 없다. 서당이 문을 닫는 데는 저마다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수익이 비용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수강생이 구름처럼 몰리는 인기 강좌도 아닌데 굳이 비용을 들여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리라. 기실 어느 대학을 막론하고 서당의 수강생은 많아야 십여 명 안팎에 불과하다.


그래도 해마다 적은 수이지만 대학 서당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존재한다. 무슨 곡절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라야 강의실 하나와 강사 두어 사람을 쓰는 정도에 불과한데, 고작 이 때문에 한국학 연구자의 종자가 끊길 지경이다.
중국 北宋의 문호 黃庭堅이 말했다.


“士農工商은 모두 대대로 가업을 계승하니, 사대부는 讀書種子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농부와 기술자, 상인이 각자의 업을 전수하듯 사대부는 책 읽는 업을 전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속셈이었을까. 황정견은 변변치 않은 집안 출신으로 이렇다할 출세도 하지 못했다. 讀書人의 삶이 암울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독서종자’를 보존하는 것이 독서인의 소명이라고 믿었다.


최근의 인문학 유행 덕택인지 모르겠지만, 인문학을 진흥한다는 명목으로 적지 않은 예산을 편성한 모양이다. 하지만 씨앗이 뿌려지지 않은 땅에 아무리 거름을 준들 싹이 돋을 리가 만무하다. 잡초만 무성해질 뿐이다. 농부는 굶어죽어도 종자를 베고 죽는다던데, 대학은 정녕 독서종자를 끊으려는가.



장유승 서평위원/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한국한문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 『소문사설―조선의 실용지식 연구노트』(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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