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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 상처를 영롱한 보석으로 승화시켜 女心사로잡는 이것!
아린 상처를 영롱한 보석으로 승화시켜 女心사로잡는 이것!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4.02.24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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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99_ 진주

아주 귀중한 물건을 이르는 ‘보배’는 ‘寶貝’가 변한 말이다. 다시 말해서 보배의 원 말은 보패인데 ‘寶’자 아래의 ‘貝’는 조개의 모양을 그린 것이고, 아래의 두 점은 보패를 꿸 때 쓰던 실을 의미한고 한다. 하여 아무리 훌륭하고 좋은 것이라도 다듬고 정리해 쓸모 있게 만들어 놓아야 값어치가 있음을 “진주가 열 그릇이나 꿰어야 구슬”이라거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하고, 아무런 보람도 바랄 수 없는 쓸모없는 일을 하는 경우 “진주를 돼지에게 던진다”고 하며, 뜻하는 성과를 얻으려면 그에 마땅한 일을 해야 함을 일러 “진주를 찾으려면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듯 비를 맞아야 무지개를 보고, 눈물을 흘려야 영혼의 무지개를 본다고 하지.

그리고 해산연체동물의 복족류인 ‘개오지’라는 패류(고둥무리)가 은나라부터 진나라까지 적어도 1천4백여 년 간 돈으로 쓰였으며, 하고 많은 재물에 관계되는 글자(財·貨·貧·賤·賣買 등)엔 어김없이 ‘조개 貝자’가 들어 있다. 제주도의 선물가게에서도 이 개오지를 파니 눈여겨 볼 것이다.

패류의 껍데기는 어느 것이나 다 딱딱하며, 녹이 슬지 않으니 이는 주성분이 탄산칼슘(CaCO3)인 탓이다. 칼슘과 이산화탄소가 결합해 단단하기 짝이 없는 탄산칼슘(Ca+CO2=CaCO3)이 되니 우리 몸의 뼈나 치아는 물론이고 석회, 달걀껍데기도 죄다 탄산칼슘이다. 하여 패류껍데기(貝殼)는 이산화탄소를 담아놓고 있는 곳으로, 지구에는 공중에 떠있는 0.035%의 이산화탄소 말고도 이렇게 생물체에 저장된 것도 있으니, 이들은‘생태계의 물질순환’중에서‘탄소순환’에 귀중한 몫을 한다.

바다보패 중에 일품인 것은 뭐니 해도 眞珠(pearl)다. 진주는 蠙珠(빈주)·珍珠(진주)·蚌珠(방주)라하고, 매우 아름답고 값나가며 가히 존경 할만 것을 빗댈 적에도 쓴다. 진주성분은 95%의 탄산칼슘과 5%의 단백질일종인 콘키올린(conchiolin)이 주성분이고, 무기물 아라고나이트(aragonite)와 方解石(calcite)이 콘키올린과 결합하는 수도 있으며, 그것들이 층층이 진주층을 이루는 것이 진주의 생성원리(成因)이다. 진주조개·대합·전복 따위의 부족류(이매패)인 조개가 먹이섭취나 호흡 중에 미세한 현미경적인 유기물이나 기생충 같은 자극물(모래알갱이는 매우 드묾)이 조개껍데기(shell)와 조개껍질의 속면을 감싸고 있는 얇은 막인 外套膜(mantle) 사이에 끼였을 적에 외투막에서 광택 나는 진주성분(nacre)을 분비해 야문덩어리를 만들어지니 그것이 천연진주다.

우리 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전쟁터에서 날아온 총알이 몸 안에 박히거나 손바닥에 가시가 꽂히거나 하면 총알과 가시 둘레를 딴딴한 섬유성 물질로 에워싼다. 또 탄광에서 採炭을 오래한 사람들 중, 이른바 폐에 먼지가 쌓여 생기는 塵肺症患者또한 허파조직에서 탄산칼슘으로 탄가루를 단단하게 둘러싸는 石灰化(calcification)도 ‘침입자’를 無害(毒)化시키기 위한 몸의 반응이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미 13세기경부터 이제껏 석패과(Unionidae)의 민물조개인 ‘대칭이’나 ‘펄조개’ 따위에서 민물진주(淡水眞珠)를 수확하고 있다는데, 필자도 운 좋게 항주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진주를 파는 곳에 들면 언제나 함지박에 담겨있는 산(生)조개 하나를 꺼내서 여행객이 보는 앞에서 조개 배를 가르고, 그 안에 들어있는 생경스런 진주를 까서 보여준다. 여리되 여린 조개 살에서 볼가져 나오는 새뽀얀 진주알을 볼 때면 탄성을 지르지 않는 이가 없다. 장사 하는데 맛보기 없는 것 봤나. 일본 도쿄에선 재수 좋게 그 맛배기 진주를 우리 집사람이 차지한 적도 있었지.

그리고 養殖眞珠(cultured pearl)중에서 ‘담수진주’보다는 ‘해산진주’가 더 인기를 끈다. 우리나라에서 채집되는 진주조갯과의 진주조개(pearl oyster)는 총 4종이 살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귀태 나는 둥글납작한 진주조개(Pinctada japonica)다. 가장 안쪽 껍질(진주층)은 말 그대로 눈부시고 영롱한 진주광택을 내니 이들이 해산진주의 母貝다. 그리고 인공진주를 만들 적에 담수진주는 주로 다른 조개의 외투막 조각을 잘라넣지만, 해산진주는 두꺼운 조개를 잘게 잘라 똥그랗게 깎은 자잘한 核(spherical bead)을 진주조개의 생식소와 腸管부근에 심으니, 핵은 1년에 약 0.5mm 두께로 자란다. 알고 보면 결국 양식진주라는 건 얄궂게도 딱딱한 둥근 조개껍데기 겉에다 천연진주성분을 살짝 입힌, 진짜진주를 흉내낸 가짜진주인 것.

老蚌生珠라, 늙은 조개가 진주를 낳는다고 한다. 의당 아린 상처를 영롱한 보석으로 승화시키는 진주조개의 인내를 노상 값진 삶의 교훈으로 삼아야할 터! 蚌珠를 물고 있는 조가비는 가눌 길 없이 쓰리고 아픈 辛酸의 고통에다, 몸서리치게나는 구역질까지 줄곧 참으면서 끝까지 토하지 않고 피 말리는 세월을 천연덕스럽게 참고 있었지. 그런데 여자들을 홀딱 홀리는 진주란? 아서라, 진주란 여태 목이 타게 설명 했듯 별것도 아닌, 고작 CaCO3 덩어리가 아니던가. 동해삼척 뒷산에는 시멘트 만드는 석회덩이가 至賤으로 널려있다. 그럼 다이아몬드는? 그 또한 연필심(흑연)같이 순수한 탄소로 이루어진 炭素同素體인 것. 女心은 당최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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