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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교수의 본분
원로칼럼_ 교수의 본분
  • 서정복 충남대 명예교수·프랑스사학
  • 승인 2014.02.2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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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복 충남대 명예교수·프랑스사학
올해 8월 말이면 정년한 지 만 7년이 된다. 종종 재직교수들을 만나 차도 마시고 대화를 하다보면 “선생님은 행복한 시절에 교수를 하셨습니다. 선생님 세대는 요순시대에 근무하신 것입니다”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교수직도 성직 못지않게 힘든 직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두 다리를 쭉 뻗고 잠을 편히 잔 적이 별로 없던 시절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요즘 교수들은 연구와 강의 이외에 교수평가, 학생 취업, 강의평가, 구조조정 등으로 전보다 더욱 시달리는 것 같다. 법관, 의사, 교수의 ‘철밥통 시대’가 막을 내린 시대적 상황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게다가 최근 들어 교육계가 횡령, 부정부패, 채용 비리, 금품수수, 성추행 등으로 불신과 규탄의 대상이 돼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교육은 국가와 사회의 혈맥과 같아 소홀히 하면 개인은 물론 나라의 장래가 위태롭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도 『국가론』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리고 아무리 귀족이라도 소정의 시험에 합격한 자만 아카데미에 입학을 허가함으로써 역사상 최초로 ‘수학능력고사와 평등교육’을 실시했다. 또한 프랑스의 루소도 1762년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동시에 출간하면서 “이상국가의 수립은 준비된 국민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러므로 교수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연구와 강의에 진력할 때 대학의 정체성이 확립되고, 교수의 권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돼 몇 가지 당부를 하고자 한다.

첫째, 대학도 평준화를 해야 한다. 최소한 권역별로라도 평준화하지 않고서 구조조정으로 정원감축을 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2023년까지 16만명 정원감축안도 전체 대학생의 76.4%가 되는 사립대학과 국립대학,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학,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등에 대한 각기 다른 사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특성화로 전임교원 확보의 적정성, 전임교원 강의 비율, 재학생 충원률, 산학협력 실적, 취업률, 창업 지원 실적을 평가한다면 취업률이 낮고 비인기 학과에 속한 인문계열이나 지방대학만 절단이 날 것이다.

둘째, 어느 때보다도 국가관과 안보관을 강조할 때다.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북한의 잦은 도발은 일제강점기나 서세동점기 못지않게 위태로운 시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입시 위주의 교육보다는 역사와 철학 교육을 통해 주인의식과 투철한 국가관을 심어줘야 국가의 백년대계를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수학교를 증설해야 한다. 프랑스의 국립행정학교 같은 학교의 설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반대학 졸업 후 재취업이나 새로운 직업창출을 위한 이른바 ‘그랑제콜’ 같은 학교를 많이 설립해야 할 것이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미래지향적 대학형이 어느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넷째, 취업률이 낮은 학과나 비인기학과는 국립대학이 수용해야 할 것이다. 국립이든 사립이든 교육은 공교육이어야 한다. 설립인가를 해주고 입학률과 취업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퇴출하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다. 수요가 적은 학과나 돈이 많이 드는 학과는 국가의 개입 없이도 자연적으로 폐과가 될 것이다.

다섯째, 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 요즘은 입학률, 취업률을 갖고 대학을 평가하고 논문 수, 학생 취업률, 강의평가로 교수를 평가하는 시대가 됐다. 교수 각자가 서로 다른 자기만의 전공을 갖고 있는데 동일한 편수의 논문을 요구한다면, ‘논문의 질’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는 처사다. 심지어 교수의 논문 편수를 언론에 공개하고 우수대학 운운하는 것 자체가 무리요 모순이다. 시간에 쫒기고, 논문 편수에 신경을 쓴다면 양질의 논문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는가? 교수 스스로가 대학이나 당국의 요구에 따라 ‘꼭두각시적 연구’를 한다면 교수는 본연의 자세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만큼 발전하고 잘사는 것도 사실 교육의 힘이 아니겠는가? 연구비, 교수평가 등에 얽매이지 말고 좀 더 자유로운 연구와 양질의 교육을 하는 것이 교수의 본분을 다하고 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길임을 강조하는 바다.

서정복 충남대 명예교수·프랑스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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