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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장엄한 풍경화 … “동성애 원인 더 살폈어야”
한 편의 장엄한 풍경화 … “동성애 원인 더 살폈어야”
  • 교수신문
  • 승인 2014.02.18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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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 『나치즘과 동성애』 김학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10 | 560쪽

저자는 “삶을 위로하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의 후학인 평자는 그로 인해 삶을 위로 받았음을 고백하고 싶다. 영어 강의와 SCI 논문, 가혹한 업적 경쟁으로 인해 젊은 학자들이 진득이 묵힌 글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돼가고 있다. 감히, 그렇다, 감히, 특정 신문의 대학 평가가 여러 학자들의 명운을 좌우하고 있는 현실 가운데서도, 어느 지점에서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재물과 벼슬을 멀리한 옛 선비의 자세로 학문하는 것이 가능함을 저자는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낚시에 문외한이나, 상상컨대 아마도 월척의 느낌이 이러한 것이리라.


저자 김학이는 대공황기 대기업과 경제 정책에 대한 그의 박사논문을 독일의 저명한 출판사인 Dunker & Humboldt에서 출간한 이래 바이마르와 나치에 대한 다수의 논문과 비중 있는 역서들을 지치지 않고 출간해왔다. 저자는 이 책 『나치즘과 동성애』를 1년여에 걸쳐 집필했다고 말하고 있으나, 바이마르와 나치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역사적인 이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글은 독일사가로서 저자의 학문 인생 전체에 걸쳐서 준비된 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다수의 여성사, 성의 역사, 가족사 논문들이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긴밀하게 엮이지 못한 채 정물화처럼 고립돼 버리는 약점을 보이고 있는 반면,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빌헬름 제국 시기 및 바이마르 공화국, 그리고 나치 치하 사회 전반의 정치적 상황을 풍부한 원경으로 동성애에 대한 논의를 엮어내고 있는 이 글은 한편의 풍부하고 장엄한 풍경화다. 1차 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혼란 상태와 뒤이은 대공황에 대한 설명이 동성애자 처벌 조항이던 형법 175조 폐지 운동이 겪어야 했던 부침과 자연스럽게 만나는가 하면, 히틀러 체제의 핵심기구이던 돌격대의 참모장이자 동성애자이던 룀의 몰락과 나치 등장에 지분이 있던 독일 보수 세력의 제거가 합류하는 식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언제나 현재 진행형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을 한국의 많은 동성애자들에게도 역사 속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는 드물고도 아늑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물론 저자가 특히 나치 시기 동성애자들의 희생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지 못했다는 한 동성애 운동가의 신랄한 비판도 접할 수 있었지만, 그가 “담론과 권력의 피안에서 불현듯 제 길을” 걸어갔던 동성애자의 ‘뭉툭한 삶’을 이처럼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 이상의 공감이 있을까 싶다.

사료와 저자의 치열한 전투
이 책은 시기적으로 1890년대부터 나치가 집권하기 이전인 1932년까지를 다루고 있는 1~6장과 나치 시기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7~10장 두 부분으로 나뉜다. 나치 집권 이전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책의 분량 상으로 보아도 절반 이상인터라 이 책의 제목이 『나치즘과 동성애』인 것이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내용상으로는 두 부분이 모두 3단 구성을 보이고 있다. 바이마르와 나치 시기 동성애에 대한 이론가들의 학설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부분(1~3장, 8장), 나치 집권을 전후해 동성애자들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상화됐는지를 다루고 있는 부분(4장, 7장과 9장), 그리고 주체로서의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어떻게 발현하고 또한 이해했는지 동성애자들 자신의 ‘경험을 뒤지고 있는’ 부분(5~6장, 10장)이 그것이다.


2차 문헌을 충분히 소화하고 있기도 하지만, 글의 대부분은 사료와 저자 자신의 치열한 대화, 아니 치열한 전투를 근거로 구성돼 있다. 평소에도 그는 문헌들을 잘 소화시켜 가지런한 자신만의 언어로 발현하는데 비상한 역량을 발휘해왔거니와, 한국어로 쓰인 최초의 저서인 이 글에서 ‘역사학은 문학과 사회과학이 결합된 학문’이라는 저자의 소신이 특히 잘 드러나고 있다. 동성애이론가 히르쉬펠트의 성과학 연구소가 나치 당원들에 의해 공격을 받거나 돌격대의 수장이면서 히틀러의 최측근이던 룀의 정치적 실각 등 많은 동성애 관련 사건들이 소설의 한 장면처럼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고 있으며, 분석과 묘사를 넘어 사색으로 이어지는 사잇길이 대단히 매끈하다. 저자는 먼저 동성애의 원인을 설명하고 있는 당대 독일 이론가들의 이론틀을 명징하게 분석해낸다.

동성애를 병리적인 현상으로 규정하고 ‘올바른’ 성도덕을 통해 해소할 수 있으리라 보았던 부르주아 성도덕론자 크라프트에빙, 모든 성적 다양성을 자연적 필연으로 간주해 성으로부터 도덕을 추방하고자 했던 급진적인 히르슈펠트, 남성들간의 동성애를 신성시하고 국가는 남성동성애의 산물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나치의 남성동맹의 원형을 보여주었던 프리들랜더 및 블뤼어의 동성애관이 먼저 상세히 논구되고 있다.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이들의 논의가 ‘사랑할 자유’를 원하던 동성애자들에 맞서 극단적으로 좌충우돌하던 독일 사회의 수십 년에 걸친 파노라마 가운데서 어떻게 변주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저자는 동성애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독일 현대사를 설명하는 큰 틀을 조탁해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동성애 운동가들이 기댈 가장 힘 있는 논거가 ‘인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자유주의가 만개했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동성애 해방운동에 지지를 보내던 유일한 정치 세력인 독일 공산당조차도 크라프트에빙의 부르주아 성도덕, 즉 ‘동성애=타락’이라는 도식에 매몰됨으로써 힘을 갖지 못했다. 이는 국가, 민족, 인민, 계급 등의 전체가 유독 강해서 ‘개인의 인권’이 들어설 여지를 갖지 못했던 독일의 담론 질서 탓이었으며, 이 국가주의적인 담론 구조가 결국 나치 등장을 배태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동성애에 대한 나치의 정책과 태도를 분석함으로써 나치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특징 역시도 선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나치 시기의 경우에도 동성애를 인격적인 결함, 혹은 환경 부적응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하는 크라프트에빙의 동성애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더 나아가 생식을 거부함으로써 독일 민족의 영속성을 유지하는 지상 과제를 수행하는데 장애가 될 동성애자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정치적 과제를 폭력적으로 관철하는’ 자의적인 국가이면서도 근대적인 ‘법치국가적 질서’를 견지하는 규범적 국가이기도 했던 나치의 이중성으로 인해 동성애자에 대한 탄압 역시도 ‘일관되지도 철저하지도 못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몇 가지 의문과 아쉬움
아무리 勞作일지라도 책을 읽어가다 보면 몇 가지 의문과 아쉬움이 따르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동성애에 대한 그의 논의가 남성동성애에 편향돼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그가 다루고 있는 사료 자체가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이 남성동성애자들에 대해 논하고 있을 뿐이고, 여성 동성애자 처벌 조항이 1913년 형법 개정 시기에 삭제되고 독일 사회가 동성애를 가장 엄격하게 다루던 나치 집권 이후에도 이러한 입장이 다시 확인되는 등 여성 동성애자들은 별반 정치적 의제화되지 못한 듯하다. 이에 대해서 저자가 “여성을 무성적이거나 수동적인 성으로 간주한 탓”이라고 간략하게 논평하고 있기는 하나, 동성애자이자 여성으로서 이중으로 소외되고 있던 여성동성애자들이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이 저서에서 다시금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에는 부족하다. 사료와 정책이 여성동성애자에 대해 침묵할 때, 동성애에 대한 논의라면 작은 세부 사항에 대해서도 논구하던 저자 역시도 갑작스럽게 침묵한다.

예컨대 “여자의 동성애에 대하여 책을 집필한 최초의 성과학자” 히르쉬펠트를 자세히 다루고 있으면서도 여성 동성애에 대한 바로 그 최초의 저서에 대한 언급을 발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성애의 원인에 대해서도 좀 더 곱씹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저자는 동성애에 대해 ‘아무도 원인을 발견해내지 못했’고, 그 결과 동성애는 ‘담론이었고 여전히 담론’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나치즘의 동성애에 대한 글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렴풋이나마 동성애의 원인에 대한 저자의 입장에 가닿는 듯하다. 룀 등 대표적인 동성애자들이 남성 동맹을 부르짖음으로써 동성애와 나치의 남성 동맹 간에 ‘수사학적인 경계’가 모호해지는 면이 있지만, 히르쉬펠트가 말하듯 동성애가 ‘자연’이라면, 나치가 공적 질서의 근간으로 삼고 있던 남성 동맹과 남성 동성애 간에 수사학적 공통성 이상의 연속성이 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수사학적인 공통성이 전부라면 “남성 동맹과 동성애 간의 경계가 흐릿하다”거나 혹은 “남성동맹이 언제라도 동성애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라고 저자가 반복해서 논의할 때, 혹여 저자가 남성 동맹을 호들갑스럽게 강조하는 나치의 정치적 수사와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닌지, 혹은 동성애가 문화적으로 전유되는 것이라는 크라프트에빙의 동성애관을 견지하고 있는 것인지 하는 의문을 피할 길이 없게 되는 것이다.

문수현 유니스트 기초과정부·독일사
필자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일상사란 무엇인가』, 『여성의 권리 옹호』 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감정으로의 전환? 감정사 연구 성과와 전망」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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