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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논리에 내몰릴 때 학술지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시장논리에 내몰릴 때 학술지의 생존을 결정하는 것은?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2.10 16: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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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 역사>, 통권 100집을 넘어서다

2013년 겨울호로 통권 제100집에 이른 <사회와 역사>는 학술지가 지나온 궤적, 그리고 자기성찰과 향후 지도를 어떻게 모색하는지 잘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알려져 있듯 <사회와 역사>의 발간주체는 한국사회사학회(회장 김준, 국회 입법조사처)다. 1980년 4월 작은 연구모임으로 출발해 1984년 11월에 와서야 ‘한국사회사연구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발족했다가, 1995년부터 ‘한국사회사학회’로 개칭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200여명 규모의 학회다. 1986년 12월 『한국사회사연구회논문집』이란 이름으로 5권을 동시에 출간하면서 <사회와 역사>의 前史가 만들어진다.

제1집은 『한국의 근대국가형성과 민족문제』였으며, 한국사회사연구회라는 이름으로 발걸음을 뗀 지 6년만의 일이었다. <사회와 역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호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사회학)는 <사회와 역사> 100집의 발자취와 과제를 짚은 「2미터를, 3미터를 더 간 다음에」에서 “사회과학에서는 아직 외국이론과 방법론의 소개가 큰 줄기를 이루고 본격적인 국내 연구서 출판이 활발하지 못했던 당시, 한 학회에서 국내 연구자들의 경험적 연구로만 채워진 학술서를 한꺼번에 다섯 권 상재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라고 자평했다. 이렇게 <사회와 역사>는 ‘사건’으로서 출발했다.

학술지 발간 27년의 궤적과 무게
1996년까지 부정기간행물인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형식으로 간행됐던 <사회와 역사>가 결정적인 변모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97년이다. 여기에는 학회 내부의 요구, 학계 상황 변화가 작용했다. 부정기간행물에서 반년간지로 변모한 것이다. 그리고 9년 뒤 2006년부터 <사회와 역사>는 ‘계간’의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 서호철 교수의 말대로 <사회와 역사>는 인접학문과의 교류 속에서 외연을 확대하면서 한국의 사회사·역사사회학 연구, 그리고 그것의 ‘문화적 전환’을 주도해 왔다. 학회설립 33년, 학술지 발간 27년의 궤적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사회와 역사> 100집은 이런 학회지의 역사를 성찰하고 가야할 별자리를 모색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사회와 역사> 100집에서 읽어내야 할 게 있다면, 그것은 단순히 한 학회지의 27년 무게만은 아니다. 흔히 ‘학진시스템’으로 악명 높게 불리는 연구제도가 다져지면서 학술지 간행의 중요 요소들이 흔들리고 있는 현실상황을 겹쳐 읽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호철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학회의 외연적 팽창에 따라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하게 되면서 연구관심의 방향과 초점이 달라진 면도 있지만, 학술지나 개별 연구자에 대한 정량적 평가가 강화되면서 학문 바깥, 학술지 바깥의 요구가 드세졌다. 현재 <사회와 역사>는 사회학 분야의 정평 있는 학술지지만, 연구자들의 학문적 성취가 일차적으로 논문 생산량에 의해 평가되고 그에 따라 학술지라는 제도 자체가 유사-시장적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미래는 알 수 없다.” 시계제로 상태의 미래! 100집이라는 새로운 분수령에 도달한 <사회와 역사>를 새삼 주목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제100집 기념호답게 <사회와 역사>는 다양한 꼭지로 특집을 구성했다. 앞서 말한 서호철의 논문 이외에 「한국사회사학 30년의 성과와 과제」(정근식, 서울대), 「거시이론에서 사건사로, 그리고 다시 거시이론으로?」(김동노, 연세대), 「한국 사회사·역사사회학의 미래를 말하다」(사회사·역사사회학 신진연구자 집담회), 「<사회와 역사> 100집 발간에 붙여」(박찬승·주영하·송호근)가 학술적 이정표를 그려내고 있다.
정근식 서울대 교수는 학회 활성화를 위해 학문적 의제설정능력을 강화하고, 일국사적 접근을 넘어서서 지역사적·지구적 접근을 통해 역사적 경험의 이론화를 위한 노력을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은 꼭 ‘한국사회사학회’와 <사회와 역사>에만 한정되지 않아 보인다. 근래 학술지들이 급격하게 의제설정능력이 둔화되고 있다는 것은 학문공동체 내부의 공공연한 비밀이 됐다. 역사, 철학, 문학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귀기울여볼만한 지적이다.


역사사회학이 사회학의 발전에 끼친 영향을 전제하면서, 새로운 역사사회학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 김동노 연세대 교수는 “새로운 길은 기존 연구가 가진 단점들을 버리고 장점들을 묶어 하나의 총체적 결합으로 나아가는 것에서 찾아질 수 있다. 구조와 사건, 분석과 내러티브라는 서로 대립되는 지향의 변증법적 통합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이런 지적은 거시구조이론이 가진 몰역사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면서 역사사회학의 연구가 단편화되고 파편화됐던 내적 ‘위기’를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그는 또 한국 역사사회학이 한국의 역사적 경험 특히 식민/탈식민의 경험에 근거한 새로운 이론구축을 통해 새로운 학문의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이번 100집에서 눈여겨 볼 장면은 ‘사회사·역사사회학 신진연구자 집담회’일 것이다. 강성현(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강진연(연세대 미래융합연구원), 김민환(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김백영(광운대 교양학부), 백광렬(서울대 박사과정수료), 손애리(고려대 아시아문제연구소), 정준영(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주윤정(서울대 박사), 채오병(국민대 사회학과) 등 9명의 ‘신진연구자’들이 연구자의 길로 들어선 이유, 연구 화두, 학회에 대한 주문 등 다양한 속내를 풀어놓았다. 연구자들에게 ‘학회’가 어떤 존재이며, 학술지는 또 무엇인지, 그리고 이들이 생각하는 사회학의 미래를 짚어볼 수 있는 기획이다.

한국적 이론화 작업에 대한 기대와 강박
이들 신진연구자들의 집담회를 관통하는 열쇠말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자기 이론화’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정준영의 말을 들어보자. “한때 사회학자들의 ‘사회사’ 연구가 새로운 이론적 전망에 입각해 종전까지 역사학계에서 다루지 않았던 소재들에 주목했고 그 성과를 인정받았다면, 이제 이런 접근방식이 역사학계의 근현대사 연구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잡은 이상, 역사학과 다른 ‘사회사’만의 학문적 차별성과 독자성을 부여하기가 힘들어진 것도 사실 …… 이런 변화된 현실에 직면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자문해보면, 여러 가지가 방안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축적된 역사학적 연구들을 기반으로 이제 보다 적극적으로 이론화를 모색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연구자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송호근 서울대 교수의 ‘100집 발간에 붙여’ 글인 「大河에 닿기 위하여」에서도 발견된다. 송 교수는 자신을 ‘사회사’에 문외한이라고 하면서 “한국사회사학회 회원들에께 감히 바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절실한 문제의식과 방법론이다. 수많은 소재들로는 명제를 만들지 못한다. 大河에 닿지 못한다. 사회과학의 성벽은 수많은 소재들로 쌓지만 소재를 잇고 벽돌을 놓는 방식이 없으면 그냥 돌더미일 뿐”이라고 말한다. ‘절실한 문제의식과 방법론’이 곧바로 ‘이론화’와 닿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 둘 사이에 친연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일종의 回通이랄까.


그러나 <사회와 역사>가 가야할 길은 순탄치 않다. <사회와 역사>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학술지들이 나가야할 길의 좌표가 불투명하다. 편집위원인 서호철 교수의 지적처럼 “학계가 물량 우선의 시장논리에 빠져든 상황에서 이제 연구자들은 뜻을 같이하는 학회·학술지에 헌신하는 대신, 당장 논문을 게재해줄 학술지를 찾아 헤맨다. 이번호 게재가 가능한지를 확인하고 투고하는, ‘수정후재심’이 나오면 논문을 수정하기보다는 즉시 투고를 철회하고 다른 학술지를 찾아나서는 뻔뻔함이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됐다. 게다가, 구차하지만 등재학술지의 지위를 유지하고 학술지 지원금이라고 계속 받기 위해서는 학술지의 ‘스펙’도 관리해야”하는 하수상한 시절이기 때문이다. 100집 문턱을 넘어선 <사회와 역사>는 과연 어떤 길을 열어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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