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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과 쟁점] 9·11 테러사태 이후 국내 지식인들의 인식지형도
[동향과 쟁점] 9·11 테러사태 이후 국내 지식인들의 인식지형도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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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3 01:46:49

9·11 테러사태는 문명사의 대전환을 몰고 왔다. 테러를 ‘당한’ 미국은 복수전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전세계를 단독으로 누볐고, 군소 강국들은 또 다른 폭력에 군말 없이 동조했다. 또한 말썽 많았던 WTO 법안이 통과되고 미군부가 진입장벽 높던 중앙아시아의 ‘안방’을 치고 들어가면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더욱 강압적으로 몰아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지식사회에서는 저널과 계간지를 중심으로 9·11 테러 이후 국제정세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다양한 논자들이 참여한 만큼 쟁점 사안들에 대한 갑론을박이 치열했다. 9·11 테러 이후 국내 지식인들의 인식지형도를 추적해보자.

테러의 원인은 명백하다. 문명의 충돌(헌팅턴) 같은 미국 정부와 언론의 시각은 잠깐 회자하다가 폐기처분됐다. 무지와 무지의 충돌(사이드) 등 충격을 음미하는 듯한 레토릭도 곧 잦아들었다. 이어 국제사회의 역학에 기초한 분석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9·11 테러가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과 강압적 외교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시선이 그것이다. 여기엔 진보적인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고 있다.

누르니 터졌다는 것이지만, 누르는 주체와 눌림을 당하는 객체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9·11 테러를 ‘강자와 약자’의 구도로 본다. “미국이라는 초강자에 대립하는 약자들의 다양한 저항행위 중 하나”라고 규정했다가, “테러집단이 어떻게 약자냐”고 비판받았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의 관점은 ‘야만과 야만’의 구도다. “미국 CIA가 테러집단을 지원했듯, 중심과 주변이 묘한 쌍생아적 공범관계로 얽혀있다”고 지적한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빈부의 격차로 푸는데 “밀고 들어오는 선진국 지배층으로 인해 위협을 느낀 후진국 지배엘리트들의 극우적 행동”으로 정리한다. 지배층 간의 싸움 때문에 무고한 민중들이 희생됐다는 계급적 관점에 선 것이다. 가장 냉혹(?)한 시선은 “미국이 오래전에 아프간 침공을 계획하고 있었고, 테러는 그 빌미를 제공했다”는 파키스탄 외무장관의 폭로를 받아들인 견해다. 최병두 대구대 교수(지리학)를 비롯해 상당수의 젊은 학자들이 이런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테러의 배경, 성격에 대한 인식차

여기에는 미국의 실천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의 영향이 많이 보인다. 이런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해석과 함께 테러의 폭력성, 평화의 도래 가능성, 미래사회의 밑그림 등을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태도도 적지 않았다. 김우창 고려대 교수(영문학)는 우리사회도 테러와 같은 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려면 시민사회가 성숙해야 하며 그러려면 개개인이 내면의 깊이를 갖춘 자율적인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양철학자 김상봉씨는 “테러로 인해 무너진 것은 건물이 아니라 인류가 꾸준한 노력으로 만든 최소한의 만남의 공간(세계)”이라며 과연 우리에게 세계가 있냐며 윤리적 허무주의를 표출했다.

공격을 자제하고 평화주의적 해결책을 모색한 사례도 있다. 이슬람문명과 유교문명의 친화성을 예로 들며 두 문명간의 이해와 공존의 필요성을 말한 이희수 한양대 교수(인류학)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류의 문명옹호론에 대해 이필렬 방송대 교수(과학사)는 “오사마 빈 라덴을 이슬람과 떼어놓는 시선도 테러를 단선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교수는 테러의 원인이 “원자력에 기반한 중앙집중적인 거대한 시스템”이라는 전공과 관련된 독특한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앞으로의 국제정세와 한국의 위치

미국이 ‘십자군’으로 보복전쟁을 합리화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으로 미국이 얻는 이득, 더욱 강해진 미국의 입김 아래 변화될 내일에 대한 조심스런 전망도 많았다. 이는 네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첫째, 혼란을 틈타 WTO가 통과돼 관세장벽이 사라졌고,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의 위상이 한층 강화된 이상, 자본의 세계화는 필연적이며 어떻게든 이것에 적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우창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대안적인 거대담론이 없는 한 세계화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그 안에서 보다 나은 인간적 삶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둘째, 미국 주도의 세계화가 가져올 부정적 미래에 대해 저항세력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장상환 교수,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 등은 세계화가 “초대형국가에 기댄 핵심부 자본에 의한 국제적 생존권 박탈 및 환경파괴”며 이에 대한 “전지구적, 초민족적 연대와 저항이 생겨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셋째, 비폭력 평화운동을 통한 점진적 사회개혁론이다. 얼마 전 세계적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내한한 자리에서 김진균 서울대 교수(경제학)는 “서로 차이나는 인간에 대한 감내와 이에 바탕한 연대의 모색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많은 이슬람 문명 연구자들, 여성학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넷째, 대북관에 일어난 변화다. 최장집 교수는 이번 테러가 세계경제에 통합되지 않은 이슬람 세력이 궁지에 몰려 저지른 행동이라며 “북한이 세계 지배체제 바깥에 있는 한 남북관계가 폭발적 위험에 처할 지도 모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논쟁이 남긴 것 또는 논쟁의 연속선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학)는 좌파든 우파든, 진보든 보수든 그동안 한국사회에서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폭력이 용인됐다며 “말이 아니라 주먹이 지배하는 사회는 민주화될 수 없다”고 성찰했다. 이처럼 폭력에 대한 증오심이 팽배한 상황에서 ‘당대비평’ 문부식 주간이 1980년대 학생운동의 폭력성을 자기비판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논란이 일었다. 조희연 교수는 즉각 “진보진영의 폭력은 인정되지만, 보수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왜소화되는 등 이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또한 문씨의 논리적 기반이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며 그것은 “역사적 현상인 파시즘을 희화화시키고 비과학적인 인식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그와 함께 민족주의에 대한 얘기들도 심심찮게 오갔다. 이슬람권을 비롯한 제3세계권에서 반미감정이 강하게 일어 신종 국수주의가 탄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함께 민족주의의 현단계를 진단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윤건차 일본가나가와대 교수는 ‘건강하고 진보적인’ 민족주의는 전략적으로 다듬어 유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박노자 교수는 이에 대해 “민족이 해체될 리는 없겠지만, 한국 민족주의는 실체적으로는 국가주의, 계급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며 민족무용론을 개진했다.

9·11 테러는 어떤 면에서 우리 지식인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테러가 파생시킨 여러 현상에 대한 더욱 정치한 정세 분석과 논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 전망을 지식인 사회가 그릴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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