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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이슈] 경제 구조의 획일화에 반대하는 아짓 싱 캠브리지대 교수
[학술 이슈] 경제 구조의 획일화에 반대하는 아짓 싱 캠브리지대 교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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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3 01:47:13
한국학계에 신자유주의는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정부는 앵글로 색슨식(미국와 영국식)의 기업 구조를 모델로 경제개혁을 진행하고 있지만, 우려하는 학계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때마침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 구조 수용을 반대하는 아짓 싱 캠브리지대 교수의 ‘개발도상국의 기업구조, 경쟁, 새로운 국제 금융 구조와 대기업(Corporate Governance, Competition, the New International Financial Architecture and Large Corporation in Emerging Market)’이 발표됐다. 지난달 29일 서울대 경제연구소가 ‘기업과 재벌의 사회경제적 역할‘이라는 주제로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이 글은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체제 분석에 시사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논문을 요약·발췌해서 싣는다.

1995년 멕시코와 1997년 태국의 경제 침체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아시아의 경제는 전반적인 위기를 맞게 됐다. 이에 대해 래리 슈머 美 재무성 차관은 “아시아의 금융 위기는 경제정책의 실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구조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 주장은 강대국이 개발도상국에 대해 구조 개혁을 강요하게 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구조 개혁을 위해 단기 자금을 운용하게 하는 등 큰 파장을 가졌다. 이들은 아시아의 금융 구조 토대가 약하고, 기업과 은행과의 관계가 불안정하며, 가족 경영에 기반한 기업 구조가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등의 관점을 가지고 있다. 즉 아시아의 경제 위기는 구조적인 결함으로 인한 것이며, 이를 개선할 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1999년부터 이런 관점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이유는 이 관점은 아시아 경제의 성공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스템이 그렇게 약했다면, 어떻게 그 오랫동안 잘 유지되다가 갑자기 실패를 했는가?” 두번째 이유는 비슷한 경제 구조를 가진 중국과 인도 등이 경제 위기를 맞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주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아시아 경제 위기의 원인, 즉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로부터 빈약한 기업구조가 발생했고, 이것이 이익감소와 과잉 투자를 야기했으며 궁극적으로 위기 발생의 원인이 됐다는 관점을 점검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관료들의 주장은 증거가 빈약하다. OECD국가(홍콩, 벨기에, 그리스, 스웬덴, 미국 포르투칼, 스페인 등)와 국제통화기금을 받은 국가(아르헨티나, 홍콩, 멕시코, 싱가포르, 한국 등)의 상위 20위권에 있는 기업소유구조를 분석한 조사에 따르면 가족소유의 비율은 멕시코의 경우 100%, 홍콩은 70%, 아르헨티나가 65%로 높다. 반대로 영국은 20위안에 드는 기업은 모두 분산 소유의 형태이다. 그러나 선진국의 경우에도, 스웨덴과 포르투갈은 20위권 기업의 45%가, 그리스와 벨기에는 50%가 가족소유이다. 심지어 미국도 가족 소유 기업은 20%나 된다. 국가 소유 형태(state ownership)의 비율은 국가에 따라 더욱 다양하다. 이스라엘과 싱가포르의 경우 상위 20위권 내의 기업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수치인 40%와 45%가 국가 소유 형태이다. 그러나 OECD의 주요 국가들 중에도 이 비율은 영국과 미국이 0%에서 독일 20%, 이탈리아가 40% 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즉 기업소유의 형태만으로 경제 위기의 원인을 판단할 수 없다.

정실자본주의도 마찬가지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거대한 가족중심의 가본가와 정부가 결합한 정실 자본주의가 경제의 붕괴를 야기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 홍콩에 있는 15개의 가족소유기업은 1996년에 GDP의 84.2%,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경우 각각 48.3%와 76.2%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홍콩과 싱가포르는 1997년 아시아의 경제위기를 비껴갈 수 있었지만, 말레이시아는 급격한 경제 침체를 겪어야했다. 즉 몇몇의 가족소유 기업에 경제적 힘이 집중됐다고 해서 이것이 필연적으로 산업구조의 효율성이나 투명성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볼 수 없다. 오히려 개도국에서 가족 중심의 기업이 성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효과적인 도구로서 작용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세계은행은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앵글로 색슨식 기업 구조를 선호하지만 이것 역시 이론적 분석이나 엄밀한 실증적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모델을 보완하고 나선 LLSV(Rafael La Porta, Florencio Lopez-de-Silanes, Andrei Schleifer, Robert Vishny의 이론)와 같은 접근은 투자자가 외부금융의 효율성을 결정할 수 있게 하는 법적 보호를 기본 입장으로 한다. 소액주주가 보호받게 되면, 외부 금융은 보다 활성화되고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주장은 금융 상황의 변화가 심한 개발도상국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 구조가 전제로 하는 일반법(common law)과는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 모델이 모든 국가에 적용될 수는 없다. 각각 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기업 구조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은 주주의 주장이 외부투자자들의 주장보다 많이 반영되는 대안적인 기업 구조를 가지고 번성했다.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 구조가 효과적이거나 유일한 대안이 아닐 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경우에 있어서도 최선의 방법이 되기 힘들다. 앵글로 색슨식의 기업구조를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에 무조건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번역·정리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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