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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련한 몸에 깃든 새파랗게 붉은 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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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철 편집위원
  • 승인 2014.01.1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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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돌아온 춤꾼 이애주의 춤판 ‘天命’


▲ ‘天命’ 춤판의 백미인 僧舞를 추고 있는 이애주 명예교수. 사진 이진환

甲午年 새 해 벽두, 서울 한 복판에 상서로운 춤판이 펼쳐졌다. 춤판은 이름 하여 ‘天命’이고, 춤꾼은 李愛珠다. 이애주(67)! 그가 누구인지 무슨 설명이 다시 필요할까. 우리 전통춤을 알차게 계승한 명인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7호인 僧舞의 예능보유자이다. 서울대에서 가르쳤고 지금은 명예교수로 있는 우리 시대의 춤꾼 아닌가. 이런 설명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 그녀는 춤을 추면서도 민중과의 호흡을 놓지 않았다.

우리 춤이 오랫동안 지배계층의 도락적 전유물이 돼온 퇴영적인 궤적을 과감히 벗어 던졌다. 춤은 삶의 몸짓이다. 그 삶은 세상살이의 모든 것이다. 그것이 밑바닥에서 절실하고 다양하게 표현되는 게 민중의 몸짓이다. 이애주는 이런 민중의 몸짓을 춤추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에게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민중 춤꾼’, ‘시국 춤꾼’이다. 1987년 6월 서울대 아크로폴리스와 연세대 이한열 장례식장에서 춘 이애주의 춤은, 그 시대 민주화를 위한 민중의 열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었다. 그녀의 춤사위는 우리 춤 원형의 복원인 동시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창조의 몸짓이며 나아가 인간 삶의 몸짓과 그 본질을 춤으로 형상화해 내고 있다는 찬사가 예사로 붙여진 게 아니다.


지난 6, 7일 이틀간 대학로 아르코예술대극장에서 펼쳐진 이애주의 춤판이 ‘天命’으로 제목 지어진 것은 예사롭지 않다. 중용의 첫 문장 ‘天命之謂性’의 첫 글자에서 딴 ‘천명’이다. 인간의 本然之性이 천명이다. 본래 그 자리에 여여 하게 있는 근원적인 진리라는 뜻이다.


15년 만에 개인 공연을 하면서 ‘천명’을 화두삼은 배경을 짐작할 만하다. 이번 춤판은 그녀의 춤 인생 60년을 매듭짓고 다시 더 큰 춤의 세계로 발 돋음 하기 위한 또 다른 시작이다. 그녀는 우리 춤의 역동성에서부터, 사유하고 관조하는 우리 춤의 정신을 담아 깊은 숨을 호흡하게하고, 일렁일렁 움직이는 몸짓이 어떻게 춤으로 이어지는지를 더 큰 춤의 세계에서 만방에 알리려는 시금석으로 이 춤판을 마련한 것이다.
우리 춤의 전통적 절제미를 온전하게 이어오며 年富力强하는 명인의 본성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완판승무 50분, 객석을 사로잡다
이애주의 이번 춤판의 백미는 완판僧舞이다. 스승인 한성준 명인에서 한영숙 명인을 거쳐 이애주로 이어진 승무는 본래 염불, 잦은 염불, 허튼 타령, 잦은 타령, 굿거리, 잦은 굿거리, 굿거리(반복), 법고, 당악, 굿거리 등 10개의 과장으로 진행된다.


▲ ‘넋전’에서 베를 가르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이진환
하지만 대개 축약된 형태로 무대에 올려 질 뿐 완판으로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완판승무를 이애주는 이날 50분 분량으로 선 뵈었다. 그는 이 완판승무를 고집스럽게 추어왔었다. 이 춤이 우리 춤의 모든 춤사위가 융합돼 있는 전통춤의 백미로 우리 삶 속의 모든 것이 응축된 춤이라는 평소의 소신에 대한 표현이고 실현이다. 한성준-한영숙-이애주로 이어지는 승무는 우주와 인간의 삶을 풀어내는 대승적 움직임에 닿아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이애주의 승무를 ‘乘舞’라고도 한다. 북채를 든 두 팔이 허공을 가르며 자유롭게 움직인다. 팔놀림에 따라 함께 너울너울 춤을 추는 옷자락. 춤사위는 끊어질 듯 이어지고 고깔 속 이애주의 얼굴에는 이내 엷은 미소가 피어오른다.


어두운 객석, 이애주의 미소에 화답하는 저마다의 미소가 객석에 넘쳐난다. 완판승무에 이어서는 무대 뒷면에 창호지색을 배경으로 蘭이 줄기를 뻗치며 아름다운 꽃을 서서히 피우는 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이애주를 따르는 한국전통춤회 춤꾼들의 본살풀이가 펼쳐졌다.


무속음악의 장단에 맞춰 11명의 춤꾼들이 흐름에 따라 다양한 조를이뤄 잦은 디딤과 엇장단의 아름다운 사위 속에 내면의 신명이 넘쳐난다. 이 춤은 ‘기본 살풀이’ 즉 살풀이 기본이라는 춤으로, 우리 춤의 정신과 내용을 모두 담고 있는 춤이다. 무엇보다 춤의 규범이 우선하고 장단의 자유로운 풀이보다는 장단의 정확함이 중시되는 춤이다.

산자와 죽은자가 펼치는 상생의 춤
이어지는 춤은 ‘터벌림 태평’이다. 이 춤은 ‘춤은 역사에 나타난 시대정신의 발현’이라는 춤꾼으로서의 소신을 지닌 이애주의 평소 철학이 담겨진 춤이다. ‘터벌림’은 사방팔방으로 터를 벌리며 뻗어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이애주가 지난 십수년간 한반도의 상징적인 장소를 찾아 현장에서 맨발로 땅과 바람이 하나 되는 춤을 추며 ‘바람맞이’, ‘상생’, ‘길 닦음’을 화두삼아 작업한 주제의 춤이기도 하다. 바람맞이 ‘씨춤’은 맨 먼저 여는 판으로 원래 자기 몸속에서 응축된 것이 한꺼번에 온몸으로 터져 나오지 않고서는 배기지 못하는 최초의 충동, 즉 자기 판을 열어젖히는 몸짓의 한 묶음이다. 이 판은 누구나 출 수 있는 춤 거리를 열어 춤을 보는 이들과 함께 하는 것임을 확인시켜 보는 이 스스로가 함께 춤꾼이 되게 한다. 상생 춤은 몸짓에 내재해 있는 본연의 생명적 율동성을 최대한의 기저로 상생의 몸짓을 펼친다.


우리 몸짓 속의 뜨거운 호흡으로 스러진 모든 영혼을 살아 피어오르게 하여 밝은 날을 맞이한다. 그리하여 산자와 죽은 자의 상생의 춤이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되살아나 새 날을 펼치게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길닦음춤은 길 닦음의 의미가 말 그대로 修道 수행이니 바른 길을 제대로 갈 때 진정한 의미의 닦아 나아감이 되니 궁극적으로는道通으로서의 삶의 수행, 즉 바르게 살아가는 삶 자체를 몸짓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길 닦음이란 원래우리나라 各道 굿의 마지막 쯤 베를 가르며 새 길을 닦는 굿춤 의식이기도 하다. 그 옛날에도 그 굿거리 과정을 수행차원의 修道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이번에 공연된 이애주의 터벌림 춤 속에는 1987년 물고문으로 사망한 서울대 박종철과 연세대 이한열의 넋을 달래기 위해 춘 ‘바람맞이’ 춤의 이미지가 들어있다. 이윽고 마지막 부분, 소리꾼 왕기철의 絶唱 속에 고통의 몸부림으로 베를 가르며 새로운 길을 닦는 굿춤 의식에서는 천장에서 영혼을 담은 ‘넋전’이 서서히 내려왔다. 객석에서는 조용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애주의 이번 춤판 ‘천명’ 공연에서는 이 춤들과 함께 이애주가 아끼고 즐겨 췄던 ‘살풀이’, ‘예의춤’, ‘태평무’도 오랜만에 등장했다 .


주역 ‘바람괘’에 춤에 관한 게 있다. 양으로 나아가고 음으로 물러나며, 음으로 굽히고 양으로 펼치며, 발(陰)을 구르고 손(陽)을 흔드는 手舞足蹈, 그리고 다시 오행으로 발전한 음, 아, 어, 이, 우의 詠歌舞蹈가 그것이다. 이애주는 요즘 영가무도에 진력하고 있다. 길게 숨을 쉬면서 느릿하게 소리를 내면 詠이고, 그것이 빨라지면 歌, 그러니까 노래가 된다. 그러다 무아의 경지에 빠져 흥을 느끼면 스스로 춤을 추게 되는 것인데, 이 또한 더 큰 춤의 세계로 나아가려는 발돋움에 다름아닌 자기 수행의 한 과정일 것이다. 여전히 젊은 그의 춤에 박수를 보낸다.

김영철 편집위원 darby428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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