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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사성과 ‘公堂문법’
맹사성과 ‘公堂문법’
  • 교수신문
  • 승인 2014.01.14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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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관대한 정승의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다. 예를 들어 세종시대 청백리로 명성이 자자했던 맹사성의 이야기도 그 가운데 하나다. 그는 정승으로 있으면서 종종 고향에 들렀다 오고는 했던 모양이다. 온양에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나 용인의 여관에 들렀던 맹사성은 영남의 부잣집 아들 일행과 마주친다. 비에 젖은 데다 딸린 식솔들도 없는 볼품없는 늙은이로 보였던지 두 사람은 합석을 하게 되는데, 이윽고 젊은이의 권유에 의해 공당문답이라는 걸 주고받는다.


맹사성이 젊은이에게 “무엇하러 한양에 가는公?”이라고 물으면 “벼슬자리를 구하러 간堂”이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의문형 어미인 ‘고’를 한자어 공으로, 종결형 어미인 ‘다’를 ‘당’으로 바꿨다는 것은 쉽게 알아볼 수 있다. ‘다’가 낮춤말에 가까운 것으로 미뤄보면 ‘고’는 높임말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국의 정승이 벼슬자리를 구하러 가는 예비 관료에게 높임말을 쓰고 낮춤말은 들은 것이다. 이때는 이렇게 농담 한 번으로 헤어졌지만, 물론 그들은 다시 한 번 마주친다. 의정부에서 마주친 맹사성은 다시 한 번 공당문법을 반복하고 젊은이는 고개를 들지 못한다. 주변인들은 모두 한 바탕 웃음으로 지나치고 만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말이 새삼스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어원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몇 가지 속설들이 검색된다. 보릿고개에서 유래됐다는 설, 잦은 외침과 정치적 변화로 인해서 생겨났다는 설, 역병과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서 만들어진 말이라는 설 등이 있다. 시기도 임진왜란에서부터 6·25전쟁 시기까지 다양하다. 꼭 집어 어원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위험프레임’을 공유한다. 식량 부족이든지, 적의 침입이든지, 정치적 숙청이든지, 질병의 창궐이든지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모두가 개인의 생명을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나누는 인사말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인사말 속에는 삶을 위협하는 사태에 대한 근심을 서로 나누는 사람들의 문화적 관행이 녹아 있다.


이렇게 개인적인 안부를 묻는 말이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게 됐다는 것은 개인들에게 속했던 안녕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당문법의 고사를 떠올려보면, 이제 관대한 정승은 자신을 낮춰 이 현상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묻는 것이 당연한 태도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느 고등학생이 이 사회적 질문을 학교에 대자보의 형태로 붙였고, 학교의 최종 관리자에 해당하는 분은 이 행태에 대한 처벌을 결심하신 모양이다. “안녕하십니까?”라고 물었더니, 불손하다는 반응이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그 학생은 자신의 선배들이 몇 십 년 전에 했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그것이 그렇게도 불손해 보였다면 다음과 같은 구절을 상기해 볼 것을 권한다. “우리에게도 눈, 코, 귀, 입이 있다. 공부나 하라고 한다. 우리더러 눈을 감으라 한다. 귀를 막고 입을 봉하라 한다……. 우리는 상관말라고 한다. 왜 상관이 없으냐? 내일의 조국 운명을 어깨에 멜 우리들이다. 썩힐 대로 썩힌 후에야 우리에게 물려주려느냐?” 이것은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1960년 3월 3·15부정선거를 체험한 부산의 이름 모를 젊은 학생이 동시대의 학생들에게 읽히기 위해 썼던 호소문의 일부분이다.


하긴, 맹사성이 세종의 치세가 아니라 숙종 시대에 노론 출신의 좌의정으로서 관직을 찾는 영남의 유생을 여관에서 만났더라면 공당문법과 같은 것이 가능키나 했을까. 하지만, 그렇게는 못한다손 치더라도 공당문법으로 지나쳤을 것을 ‘까불문답’으로 바꿔 추궁하는 양상을 보였을 것이라고 우리는 상상해야 하는가? 맹사성과 영남 유생의 대화 속에서는 출전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맹사성이 벼슬길에 나가려는 젊은이에게 자신이 벼슬을 주선해 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물론 젊은이는 농담으로 받아들였겠지만, 이 또한 현실로 바뀐다. 젊은 유생은 맹사성의 천거에 힘입어 여러 고을의 원을 지냈고, 그 자신도 느낀 점이 있어 청백리로서의 삶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적어도 그들은 수용하고 화해할 줄은 알았던 것이다.


오늘날 사회를 향해 안녕하냐고 묻는 질문에는 불손하다는 반응을 넘어서, 머리카락의 길이와 의복의 형식에 대한 결정권조차 넘기라고 대꾸하는 것이 교육 기관의 방침인 것처럼 보인다. 공당문답과 대조를 이루는 이러한 결과는 머리카락과 의복에 대한 자율권이 보장되고 상당한 시일이 흐른 다음에 다시 나타났다는 점에서 극히 퇴행적이다. 개인적인 권리를 언제든지 넘볼 준비가 돼 있고, 자신들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정말로 인간에 대한 하나의 不遜처럼 느껴진다.

이향준 전남대 BK21박사후연구원·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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