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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35>민두기의 ‘中國近代史硏究’
[우리시대의 고전]<35>민두기의 ‘中國近代史硏究’
  • 배경한 / 신라대·사학
  • 승인 2002.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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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3 01:36:00
민두기(1932~2000)
1932년 전남 해남군에서 출생. 서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고대사에서 청대사, 중국근대사, 중국현대사에 걸쳐 연구하며 동양사학의 기틀을 잡았다. 그의 대표적 저서 ‘중국근대사연구-신사층의 사상과 행동’(1973)은 국내의 동양사학계의 연구풍조를 극복하고 중국사의 내면적인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국내 최초의 저서로 평가받는다. 그 문제의식이나 연구방법, 연구내용 등에 있어서도 국내 중국사 연구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확실한 이정표가 됐다. 그 외에 ‘중국근대사론’, ‘중국근대개혁운동의 연구’, ‘중국에서의 자유주의의 실험’ 등의 저서를 펴냈다.




민두기 선생의 ‘중국근대사연구’(일조각 刊)는 사실 같은 분야의 전공자들에게도 읽기에 그리 만만한 책이 아니다. 더군다나 비전공자나 일반적인 독자가 읽기에는 매우 난해한 책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몇 차례에 걸쳐 ‘우리시대를 대표할 만한 책’으로 뽑히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흔히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 가운데에서도 진지하고 성실한 인문학적 작업이라면 얼마든지 인정받고 주목받을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중국근대사연구’라는, 매우 광범위해서 얼른 종잡기 어려운 책이름은 서문에서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출판의 사정상 부득이 붙인 것이고 실제로는 그 부제처럼 ‘청대 紳士層의 사상과 행동’을 주제로 삼고 있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전통시대라고 부르는 명청시대의 실제적 지배계층인 신사층에 대한 연구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세계 중국사학계의 중심 화두 중의 하나였으니 말하자면 이 책도 그러한 세계 학계의 흐름 가운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는 청대의 사상통제와, 하층 신사인 生員과 監生층의 계층적 성격, 그리고 지방행정체제라는 측면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청대 통치체제의 여러 특성’을 다룬 부분이고, 둘째는 봉건제과 군현제를 둘러싼 고대 이래의 오랜 논쟁과 그런 가운데에서 청말에 오게 되면 봉건론이 서구 민주주의의 기반인 지방자치 주장으로 연결되고 있음을 추적한 ‘전통이념의 변용과 발전’을 다룬 부분이며, 셋째는 청말 개혁운동과 혁명운동의 주된 흐름이라고 할 변법운동과 신해혁명 시기 신사층의 정치적 대응을 밝힌 것으로 ‘청대 신사의 근대적 변모’를 다룬 부분이다.

이 책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저작에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저자의 학문적 특징으로 흔히 고증과 객관의 엄격한 추구를 든다. 물론 이 책을 통해 이러한 고증과 객관의 추구가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는가를 보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따라잡기 힘들만큼 수많은 사료들에 대한 꼼꼼한 검토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증과 객관이란, 사실 역사연구의 목표라고 하기보다는 그 수단이요 방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보다 성숙한 독자라면 그러한 고증과 객관의 엄격한 추구를 통해 저자가 노리고 있는 실제적 목표가, 역사연구의 근원적인 목표라고 할 시대적 구조나 시대적 성격의 규명에 맞춰져 있다는 점을 놓치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책의 경우 궁극적인 목표는 전통시대(청대)의 사회적, 사상적 구조와 그 근대적 변화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한 시대의 구조 파악에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 중국 혹은 근대 아시아 歷史像의 가장 중요한 대목인 전통과 근대의 관계를 해석해보려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목표인 셈이다.

전통과 근대에 대한 그간의 고전적 해석은 전통과 근대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었다. 예컨대 서구의 근대 민주주의를 수용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유교사상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이 근대화운동의 주요한 맥락이었다고 보고 이런 입장에서 근대(민주주의)와 전통(유교)을 상호 대립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근대(민주주의)는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설정되는 반면에 전통(유교)은 타파돼야 할 것으로 설정돼 자연스럽게 서구가치 중심적인 역사해석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전통과 근대는 결코 대립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방분권을 강조하는 봉건론이라는 전통적 정치사상이 서구 민주주의의 근간 가운데 하나인 지방자치를 수용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뒷받침 역할을 하였음을 이 책은 실증적으로 밝히고 있다. 전통과 근대가 상호 보완적이고 상호 계승적인 관계에 있음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과 근대에 대한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미국의 저명한 중국근대사 연구자인 필립 퀸(Philip A. Kuhn)에 의해 번역 소개됨으로써, 그 때까지 서구학계에서 주류를 이뤄오고 있던, 이른바 근대화론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사 해석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나아가 중국 중심의 중국사 해석을 이끌어내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전통과 근대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이러한 견해는 이제 구미학계 뿐만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학계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중요한 관점이 되고 있다. 민두기 선생의 연구성과의 일부가 1989년에 하버드대 출판부에서 ‘국가정치와 지방세력: 후기 제정중국의 변모’(National Policy and Local Power: The Transformation of Late Imperial China)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것은 바로 이러한 학문적 기여에 대한 평가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이 때 번역된 글의 일부는 1960년대 말에 씌어진 것이므로 20여년 뒤에 가서야 그 전모가 국제학계에 소개된 셈이다. 그러나 이 번역서가 미국에서 출간됐을 때 몇몇 저명한 잡지의 서평들은 이러한 시간적 지체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책에는 주목해야 할 견해가 많다는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저자의 이러한 학문적 성과는 한국의 동양사학계가 국제학계와 어깨를 겨룰 정도로,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독보적인 발전을 이뤄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것은 그의 학문적 성과와 함께 후학들에 대한 혹독한 훈련을 통해 이뤄진 것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이제 그의 학문적 성과나 입장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바로 그 후학들이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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