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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강국 조선에는 어째서 서점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출판 강국 조선에는 어째서 서점이 발달하지 못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4.01.08 17: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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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조선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548쪽 | 25,000원

▲ 1680년경의 교정지. 원고는 『자치통감』으로, 오른쪽 면의 틀림 글자 手자와 史자를, 乎자와 旣자로 붉은색 먹을 써서 바로잡은 것이 왼쪽 면에서 확인된다. 그 외에 빠진 글자도 채워넣었고 오자를 추가로 바로잡기도 했다.
강명관 교수의 이 책이 반가운 이유는 책과 독서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대부분 서양의 것에 편중돼 있었던 사정과도 관계되지만, 정말 중요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올라있는 금속활자에서 알 수 있듯,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사회변동의 중축에는 ‘지식’이 자리해 있었다. 이 지식은 출판과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강 교수가 지적했듯 국가가 인쇄·출판을 독점한 사례는 조선만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인쇄·출판물’의 콘텐츠뿐만 아니라 이들이 만들어지고, 보급되고, 수용되는 과정까지도 치밀한 탐색이 필요한 학술적 영역이었다는 의미 해석을 시사한다.

2003년 초고 마무리 … 10년만에 완성
서양의 것이 아닌 ‘조선’의 책으로 책과 지식, 독서의 문화사를 읽어낸 이 책은 ‘강명관’이란 자연인의 10년 시간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2003년 초고를 마련했지만, 건강 문제로 마무리 짓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언젠가 시간이 허락되면 한번쯤은 이런 문제들을 다루어보고 싶다. 이 ‘언젠가’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이 작업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건강 문제로 중단했지만, 사정은 오히려 그를 도왔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각종 문집, 일기류, 서지학 자료, 책과 관련된 문헌 등을 깊이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조선사회는 ‘출판’ 강국이었다. ‘해동육룡이 나라샤…’로 시작되는 『용비어천가』 등 건국 정당화 즉 이데올로기 작업이 국가의 ‘출판’에 의해 진행되고 장려됐던 것처럼, 출판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중요한 과업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가는, 특히 중앙의 주자소와 교서관은 어떤 것을 출판할지 그 대상 선정부터 활자와 장인 결정까지 인쇄·출판의 전체 시스템을 일관되게 갖춘 유일한 기관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 출판의 역사, 곧 책의 역사를 기본적으로 규정했다.”


책의 형태(미디어로서의 책)와 내용(메시지로서의 책)을 조선사회라는 시공간에 놓는 새로운 책의 역사를 만들어내려면, 책에 생명을 불어넣는 조건이 무엇인지 살펴야 한다. 이는 곧 책의 제작·탄생·유통·집적(도서관) 등의 문제와 긴밀히 관련된다. 책의 물질적 형태 변화가 책의 역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책과 사회가 맺는 여러 조건이 책의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내용을 둘러싼 연구는 그간 상당한 정도로 축적돼 왔지만, 이렇게 책을 둘러싼 맥락을 분석한 논의는 드물었다.


사실 이번 출간된 『조선 시대 책과 지식의 역사』는 전체 5권으로 구상된 방대한 분량의 작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다섯 권 가운데 첫 번째 책인 셈이다. 조선 전기 한 권, 조선 후기 두 권, 근대계몽기 한 권이 포함된다. 조선건국부터 1920년까지, 모두 다섯 권의 책으로 조선의 인쇄·출판 문화를 조명하겠다는 의도다. “나의 의도는 활자의 탄생부터 책의 제작과 유통까지, 가능한 넓은 범위의 주제를 일괄적으로 다뤄 조선시대 지식의 생산과 확산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헤쳐보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질문을 집요하게 던진다. 조선시대의 책의 인쇄와 유통 양상은 어떠했는가? 국가와 사회의 틀을 설계하고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던 책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지식인이 국가와 사회의 지배층이던 조선시대에는 어떤 방식으로 책이 유통됐는가? 조선시대의 책값은 얼마였을까? 책값은 지식의 확산과 어떤 관계에 있었나? 중요한 서적의 탄생과 소멸은 어떠했는가? 즉 조선의 책과 지식생산의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를 망라하는 한편, 그 이면에 놓인 ‘지식’과 ‘체제’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간다.


16세기 후반, 조선시대의 책의 생산과 유통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초가 하나 있다. 조선시대 장서가 柳希春(1513~1577)의 평생 일기인 『미암일기초』가 그것이다. 유희춘이 장서를 구축했던 방법은 이렇다. 왕으로부터 하사받기도 하고, 없는 책은 빌려서 베끼고, 지방 고을 수령에게 편지를 보내어 그곳의 목판으로 책을 찍어 달라 하거나, 중국에 가는 사람에게 북경에서 책을 사달라고 부탁하는 등 오만 가지 방법을 동원해 책을 수집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단순하고, 오늘날의 상황과도 닮았다. 복사, 이메일, 해외 주문 등의 단어를 대입하면 16세기 상황은 21세기 상황 그대로다.

임진왜란, 조선의 서적문화 일거에 파괴
이처럼 조선시대 국가와 민간에서 간행한 각종 문집과 서지자료를 섭렵해 연구하고 집필하며 탄생한 이 책 속에는 희귀한 고서들의 자료 사진과 관련 그림이 곁들여져 당시 책을 둘러싼 사람들의 일상을 생생히 엿볼 수 있다. 수입한 중국서적에 오자가 많아 사신에게 항의한 사건(234쪽), 전란 때 불타 소실된 책들로 인해 책이 없어 과거를 못 치른 사람들의 이야기(513쪽), 서점 설치를 두고 벌어진 논란과 결국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378쪽), ‘거대한 책의 바다’였던 조선의 홍문관(도서관)이 장서를 축적한 방법(409쪽), 실제 붉은색으로 표시한 교정 흔적과 교정·조판한 사람의 이름이 적힌 교정지(240, 249쪽), 고서의 간기(판권)에 남은 인쇄·조판 장인의 이름과 당시 방식을 재현해 책을 만드는 모습(276~279쪽), 인쇄 장인들의 급료(288~289쪽), 당시의 책 값(300~310쪽) 등 미시적 문화 풍경이 깨알처럼 담겨 있다.


국가 주도적이었고, 중앙과 동시에 지방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쇄·출판이 이뤄진 조선사회였지만, 책의 유통구조는 ‘원시적 수준’에 머물렀던 것 같다. 저자가 이 점을 이렇게 확인해주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책의 유통구조가 원시적 수준이었다. 조선은 고려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책을 쏟아냈지만 최초 인쇄부수는 기껏해야 수백 부였다. 중앙의 활자인쇄본은 왕실과 고급 관료에게만 하사됐으며, 지방의 목판인쇄본 역시 인쇄주체의 친지에게만 뿌려졌다. 그런 사람들을 목록화한 반사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한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 속에서 ‘유희춘’이 했던 방식 즉, ‘筆寫’가 누구에게나 가능했던 방법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상당한 노동력을 요했기 때문에 여러 종의 서적을 축적하려면 남에게 비용을 따로 지불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시대는 상품으로서의 책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품을 매매하는 ‘서점’이 발달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것이다. 저자는 왜 조선에서는 서점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인가? 라고 묻는다. 서적 공급량 부족을 이유로 보는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적 인쇄를 국가가 독점한 것이 민간 인쇄출판업의 발달을 막았고, 서적공급량을 확대하는 데도 장애물이 됐다.” 그렇다고 서점 설치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중종조에서 명종조까지 서점 설치를 놓고 활발한 논의가 이뤄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 현상이 기본적으로 조선사회가 지식인이 상층부를 구성하는 사대부사회라는 사실, 또 건국 이후 양반인구가 증가했다는 점, 그리고 중종조 이후 사림이라는 새로운 세력이 정계의 중심에 등장한다는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한다.”


민간영역에서도 임진왜란이 있기까지 미세한 흐름이 존재했다. “하한수나 박의석 같은 민간 출판업자와 책쾌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아 민간의 상업적 인쇄와 서점 출현의 조짐은 있었다. 그러나 곧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이 미증유의 대전란은 조선 전기의 서적문화를 일거에 파괴했다. 민간의 서점 출현이 봉쇄된 결정적 이유가 됨직하다.” 이렇게 해서 서점은 19세기에 와서야 비로소 출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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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2014-01-14 11:30:56
서점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블로그는 네이버이고 제목이 우아하고 냉정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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