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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은 출산의 공포로 잉태된 괴물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출산의 공포로 잉태된 괴물이다”
  • 윤상민 기자
  • 승인 2014.01.06 13: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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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_ 임신과 출산의 역사 살핀 심포지엄 개최

저출산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간주되는 21세기 한국사회에 과연 임신과 출산의 역사는 어떠했는가를 고찰한 학술대회가 열려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문명연구사업단(단장 백종현)이 지난달 20일 ‘임신과 출산, 그 지식 형성과 재생산’을 주제로 개최한 제19회 문명연구 심포지엄에서는 20세기 이전의 임신, 출산에 관련된 고고학적, 의학적, 사상적, 문화적 접근을 통해 그 지식의 형성과 재구성 과정을 분석한 논문들이 발표됐다. 특히 그동안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로 읽히던 메리 셸리의 소설『프랑켄슈타인』을 출산에 대한 공포로 해석해낸 손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현대영미소설)의「『프랑켄슈타인』: ‘모던 프로메테우스’와 여성의 생명 창조력」은 그 발상이 독특해 논문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손현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과학만능주의의 상징으로 읽히던 프랑켄슈타인을 여성의 출산에 대한 공포로 해석해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19세기 초 18세 소녀가 쓴 이 작품은 신의 창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의 야심과 몰락, 과학만능주의에 대한 경고, 억압된 인간 욕망의 표출 등으로 다양하게 해석돼왔다. 인간을 창조한다는 원초적 우주적 테마는 이 작품의 부제, ‘모던 프로메테우스’로 부각된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게 불을 가져다주기 이전에 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창조주이기도 하다. 신화에서 불은 신들의 것으로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금단의 영역에 속한다. 신의 영역으로 인식되어온 생명창조에 도전하는 프랑켄슈타인은 인간을 창조하고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이 한계에 도전하는 영웅적 인물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여성에게 허용된 유일한 삶의 형태는 결혼해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었다.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경험이었지만 이에 대한 기록과 담론은 주로 타자인 남성의 입장에서 기술됐고, 여성이 경험하는 임신과 출산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메리 셸리의『프랑켄슈타인』은 여성의 입장에서 그 동안 침묵돼왔던 임신과 출산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언급을 하고 있는 거의 최초의 문학작품이라 할 수 있다. 셸리 자신의 임신과 출산, 사산, 그리고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괴물의 창조와 성장, 그리고 괴물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묘사하는 과정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한 1816년 6월 18세의 셸리는 두 아이를 출산했고, 그 중 첫 아이를 잃었고 둘째는 생후 6개월이었다. 더구나 어머니 울스턴크래프트가 셸리를 낳은 지 열흘 만에 산욕열로 사망하여 친모를 잃은 셸리에게 출산은 죽음의 공포와 맞물려 있는 사건이었다. 임신과 출산, 죽음은 젊은 셸리의 생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건들이었다.

멜러는 셸리가 묘사하는 괴물창조의 환상을 셸리 자신의 임신과 출산과 육아에 대한 불안과 억제된 공포가 표현된 것으로 해석한다. 또한 그는 임신과 출산과 유아사망의 충격과 고통을 겪은 셸리의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괴물탄생의 장면에 치환돼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자신이 낳은 아이가 죽지는 않을까? 아이가 기형이면 어떻게 하나? 낳은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등등 임산부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불안과 공포가 실제 비극적 사건을 두 번이나 겪은 셸리에게는 좀 더 절실한 것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임신과 출산의 강렬한 경험의 한 가운데서 탄생한 소설『프랑켄슈타인』에 그러한 경험이 언어로 주제로 녹아 있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프랑켄슈타인이 여성을 배제한 생명의 창조, 인간의 창조를 시도한 반면, 셸리는 여성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전까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글쓰기와 창작, 나아가 과학적 지식까지 동원해『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전무후무한 작품을 탄생시키는데 성공했다. 1931년 판『프랑켄슈타인』의 서문 끝자락에 셸리는 “내 흉측한 자식(my hideous progeny)을 또 다시 이렇게 세상에 내보낸다”고 쓰고 있다.

왜 그녀는 이 작품을 ‘흉측’하다고 불렀을까? 첫째로,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근대이후 과학의 발전과 함께 태동한 인류문명의 내면의 불안을 형상화한 악몽이며,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그 전거가 없는 새로운 형태의 과학문명이 창조해낸 괴물의 원형이다. 지식과 과학기술의 오남용이 불러올 수 있는 재난과 비극에 대한 경고임과 동시에 미지의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상상력과 도전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셸리의 소설『프랑켄슈타인』은 불완전한 지식에 의한 불완전한 창조가 빚어낸 끔찍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흉칙’하며, 그 끔찍한 이야기를 상상해 낸 그녀의 상상력이 또한 ‘흉칙’하기 때문이다. 둘째로,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을 탄생시켰듯이 작가 셸리 또한 현실에서 잇단 임신과 출산, 유아 사망을 겪고, 무서운 이야기를 상상하려 애쓰던 와중에 백일몽의 비전으로 찾아온 환상의 장면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만들어 냈고, 18세의 젊은 여성 셸리에게 이 작업은 프랑켄슈타인의 실험만큼이나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소설『프랑켄슈타인』은 처음에는 익명으로 출판됐고, 13년이 지난 1831년에 비로소 메리 셸리라는 작가의 본명을 달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셸리에게 이 작품은 최초로 출판된 작품이었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본인이 생각하기에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흉측한 모습을 한 창조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남성작가가 아닌 특히나 나이어린 여성 작가의 작품이어서 더욱 더 부정적 비판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셸리는 이를 ‘흉측’한 것이라 부름으로써 미리 비판의 시선을 차단하려 했을 것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획득하려 했던 프랑켄슈타인은 불완전하게 창조된 괴물을 탄생시켰고, 마치 프랑켄슈타인이 시신조각들을 그러모아 괴물의 몸을 만들었듯이 작가 셸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이 둘은 닮아있다. 그리고 셸리와 프랑켄슈타인 모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과업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프로메테우스적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부제인 ‘모던 프로메테우스’는 작품 내의 프랑켄슈타인뿐만 아니라 작품을 쓴 셸리에게도 적용되는 이름일 것이다. 이들의 작업은 남성인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낳는 역할을 하고 여성인 셸리가 남성이 독점하던 글쓰기, 그것도 새로운 분야인 공상과학 분야의 글쓰기에 도전한다는 점에서 전복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의 결과물이 둘 다 ‘흉측’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정리 윤상민 기자 cinemond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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