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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 철밥통’론 유감
‘교수 철밥통’론 유감
  • 박재묵 충남대·사회학과
  • 승인 2014.01.06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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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최근 몇 년간은 국립대학 교수들의 수난시대이다. 개혁이니, 혁신이니, 선진화니 하면서 교육 당국과 대학들이 추진하는 사업들이 교수들의 뜻과는 다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장직선제 폐지만 해도 그렇다. 직선제는 약 30년 동안 시행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정적인 요소들(학내 갈등 조성이나 지지층 눈치 보기)을 드러냈다. 따라서 직선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나 그 대안이 모색될 필요는 분명히 있다.

문제는 직선제의 대안을 마련하는 방법에 있었다. 교육부는 대학사회가 성찰을 통해 기존의 방식을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유도하는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어야 하는데, 그 선을 무시하고 관료의 구상을 대학 제도로 관철시키려고 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교육부가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것은 직선제 폐지를 재정지원사업과 연계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교육부는 직선제 폐지를 대학에‘강요’했다는 지적을 들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 방법은 지금도 직선제 폐지와 관련된 교육부의 후속 조치에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다. 공모제 하에서도 선호도 조사는 실시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한 규정 개정을 하지 않으면 역시 재정지원사업에서 배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애초 총장공모제로 유도할 때에는 선호도조사를 병행할 수 있다고 해놓고서는 이제 와서는 방침을 바꿔 규정에서 삭제하라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온전할 리가 없다. 누더기 제도를 면하려면, 지금이라도 대학들은 총장선출제도에 대한 논의를 원점에서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교육당국이 왜 이런 무리를 감행하는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집히는 데가 없지 않다. 교육부는 직선제 폐지만 강요한 것이 아니다.

성과가 낮은 동료의 보수를 덜어내어 성과가 좋은 교수에게 얹어주는 상호약탈식의 성과급적 연봉제를 확대 실시하고 있고, 사립대학 교수와의 보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급해온‘기성회수당’마저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한다. 주로 젊은 교수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긴 하지만, 승진과 정년보장의 요건은 대학들이 알아서 경쟁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교육부와 일부 언론기관의 대학평가에서 사용하는 지표를 향상시키는 것이 대학 행정의 목표가 된 듯하다.

이러한 일련의 제도 변화를 꿰뚫고 흐르는 하나의 정책 기조가 바로 국립대학 교수의 ‘철밥통’깨뜨리기다. 사실지금까지 국립대학 교수들은‘철밥통’론의 공격을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철밥통’론을 국립대학 교수사회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철밥통’론의 제기 배경이 공공부문의 낮은 생산성이 지나친 고용안정성 때문이라는 데 있다면, 우선 국립대학의 생산성이 얼마나 낮은가와 그것이 고용안정성에서 기인하는 것인가를 과학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다. 생산성의 비교에 있어서는 교수 1인당 투입액 대비 산출을 봐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에 대한 검토 없이‘철밥통’운운하는 것은 약자에 대한 낙인찍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누린 것도 없고 그저 국립대학 교수라는 타이틀을 가슴에 간직하고 근근이 살아온 교수들에게 이 무슨 봉변인가.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철밥통’깨뜨리기를 위한 개혁 방안들이 교육연구기관으로서 대학이 지켜야 할 가치와 운영원리를 고려해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취업률을 평가지표로 삼고, 대학이 취업률 향상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가 무엇인가? 성급한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노력을 강의실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에 집중시키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SCI급 학술지 게재 논문 등에 대한 인센티브도 적정 수준인지 따져볼 때가 됐다. 인센티브는 인센티브로 끝나야지 연구자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데 이르러서는 안 될 것이다.

손쉬운 방법이라고 무작정 시행하지 말고 그것의 효과와 더불어 의미를 따져보는 것이 필요하다.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린 사람이 어디서 잃어버린 줄도 모르면서 가로등이 환히 비치는 곳에서만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박재묵 충남대·사회학과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한국사회학회장, 한국환경사회학회장, 한국NGO학회장을 지냈고, 현재 충남대 교수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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