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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_ 쿠오 바디스 로스쿨?
원로칼럼_ 쿠오 바디스 로스쿨?
  • 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민사소송법
  • 승인 2014.01.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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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민사소송법
요즈음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대해 시비가 많다. 어떤 이들은 등록금이 비싼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고 사법시험을 폐지해 개천에서 용이 못 나오게 됐으니 예비시험제도를 두자고 주장하고, 어떤 사람은 로스쿨 졸업생들이 실무실력이 없다고 비난하면서 로스쿨에서 실무 교육을 많이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는가 하면, 변호사가 돼도 취직이 안 되니 변호사를 이처럼 양산해서는 안 된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온갖 시비를 다 늘어놓자면 지면이 모자랄 것이니, 여기서는 이런 시비와 혼선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짚어보려 한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법조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문제다. 법조인을 ‘용’으로 여긴다. 이러한 인식은 21세기의 민주국가에서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법조인은 용이 아니라 법과 질서, 정의를 확립하고 수호하기 위한 공익의 대변자이고 국민을 위한 봉사자다. 법조인이 ‘내가 용’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법조인 자격이 없다.

그리고 법조인은 남 말썽 난 것 뒤치다꺼리를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법치국가에서는 사법부뿐만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 기업과 공공기관에도 법조인이 진출해서 법안의 작성, 정책이나 경영전략의 수립과 집행 때부터 법적 검토를 필수적으로 거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윤택해도 후진국 티를 벗을 수가 없다.

둘째, 로스쿨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문제다. 가장 심각한 오류는 로스쿨이 종전의 사법연수원처럼 실무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다. 로스쿨은 법학을 가르치는 대학원이지 실무수습을 시키는 연수원이 아니다. 로스쿨은 법학교육을 받지 않은 다양한 전공의 대학 졸업자들에게 법학교육을 해 여러 분야에서 법조인으로 일할 수 있도록 양성하는 곳이다.

성문법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성문법 체계를 배우는 것이 우선이다. 그 방대한 성문법 체계를 배우려면 3년이라는 기간도 오히려 모자란다. 로스쿨에서의 실무교육은 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의 맛보기에 머물러야 한다. 판례법 국가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로스쿨 교육은 그 핵심이 이론교육이지 실무교육이 아니다. 실무는 법조인이 돼서 일을 할 때 그 자리에서 본격적으로 배운다는 것이 로스쿨의 기본 구조인 것이다.

셋째, 변호사시험의 전제가 잘못돼 있다. 로스쿨 제도는 본질적으로 ‘교육을 통한 양성’이지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니다. 로스쿨 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학생들이 재학 중에는 변호사시험에 신경을 쓰지 않도록 설계를 해야 한다. 미국의 변호사시험이 바로 그러한 좋은 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변호사시험은 아직 수험생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선발해야 한다는 사법시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종전의 사법시험보다도 더 높은 수준을 요구하고 합격 정원까지 정해 놓아 학생들이 학교교육보다는 시험 준비에 몰입한다.

기왕에 로스쿨을 할 바에는 변호사시험도 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 어려서부터 학원 수강에 익숙한 학생들이 재학 중에도 고시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거나 그 교재로 공부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로스쿨에서는 학원강사를 초빙해 강의를 시킨다는 소문도 들린다. 대학이 합격률에 집착해서 로스쿨답지 못한 행태를 보이는 것이다. 적어도 대학이라도 올바른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사명감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로스쿨을 보고 필자가 예언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로스쿨은 沙上樓閣이 될 것이라고. 제발 그 예언이 틀리기를 새해 벽두에 간절히 소망한다.

호문혁 서울대 명예교수·민사소송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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