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관장 오광수)이 여는 ‘올해의 작가 2002-건축가 승효상’ 전에 가면 우리가 그 동안 잠깐 잊고 살았던 집을 볼 수 있다. 남우세스럽게 숨겨놓은 재산이 아니라, 휑뎅그레하고 온기 없는 가짜 예술이 아니라, 몸을 누이고 마음을 놓는 곳으로서 ‘집’을 볼 수 있다. 한국 현대 건축을 대표하는 중견 건축가 중 한 사람인 승효승이 세운 건축철학은 이른바 ‘빈자의 미학’. 그가 말하는 빈자의 미학이란 “건축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과 그 속에서 거주하는 사람의 삶의 가치가 공유되는 건축개념”으로, 사람과 집이 함께 숨쉬는 공간에 대한 꿈의 표현이다.
이번 전시의 주제는 ‘Urban Void’ 즉 ‘도시의 빈자리(공허)’인데, 제목만 들어도 그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 지 알 것 같다. 고층빌딩과 자동차들로 한 평 놀릴 땅이 없는 도시에서 그가 꿈꾸는 빈자리란 ‘계급을 뛰어넘은 공유의 공간’이다. 냉정하게 구획 짓지 않는 건축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기에 그는 4백여평 전시공간에 자신만의 도시를 꾸며놓았다. ‘수졸당’, ‘수백당’ 등 주택을 포함해 ‘중곡동 성당’, ‘웰콤 시티’, ‘파주출판도시’ 등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형과 이미지로 만들어 15개 공간에 다양하게 꾸며놓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작업의 연장으로 생각해 전시장을 일종의 창작 개념으로 직접 설계, 구성했다. 미술관 전시장 바닥은 그에게 주어진 새로운 대지가 되고, 전시장에 하나하나 세워놓은 모형들은 그가 꿈꾸는 이상의 도시이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은 처음에는 텅 빈 듯한 백색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이후 다양하고 변화 있는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되며, 이제까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건축과 도시 공간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라고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설명한다. 단순히 건축물의 모형이 아니라, 계급과 장벽을 뛰어넘은 삶의 이상을 꾸며놓은 것이다.
10월 25일 열리는 ‘나의 건축세계-빈자의 미학에서 문화적 풍경까지’ 강연에서 작가와 직접 만날 수 있고, 전시회는 10월 27일까지 열린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