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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밖 사람들의 열정이 우리를 긴장케 만든다”
“대학 밖 사람들의 열정이 우리를 긴장케 만든다”
  • 이충진 한성대·철학
  • 승인 2013.12.3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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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_ 어느 최고위과정 참가기

언제부터인가 대학가에 이른바 최고위과정이란 교육프로그램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름부터 沒학문적이고 비교육적인 이 프로그램의 배면엔 물론 대학 교수들의 은밀하고도 강력한 욕망, 대학 밖을 향한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몇 년 지나자 이 프로그램은 인맥 쌓기의 場, 대학 밖에서 어깨에 힘깨나 주는 사람들을 위한 사교의 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처음부터 예상됐던 일이었다.

지난 9월 시작한 독일유럽연구 최고위과정(중앙대DAAD 독일유럽연구센터, 소장 정정호) 역시 그런 의혹의 눈초리를 받기에 충분했다. 대학 밖을 향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할 정도로 관련 연구와 교육 노하우가 축적돼 있는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이었다. 일반인에게 연구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학술 대회나 대학원 교육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되, 몇몇 사람의 의욕만으로 과연 성공을 기약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무리 넓은 마음으로 다가가도 쉽게 떨쳐버릴 수 없는 의구심이었다.

연구센터가 제시한 교육 프로그램과 강사진 명단은 이 교육과정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독일은 우리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그들은 이 물음에 대답하고자 했다. 대안의 핵심은 복지사회였으며, 강의의 40% 가량이 이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집중돼 있었다. 그 외에도 통일 경험, 사회적 시장경제, 교육 체계, 환경 문제 등 다양한 주제가 준비돼 있었다. 명망가 중심의 강사진은 다소 불안감을 줬지만, 한국 지식인 사회의 미국 편향성을 감안하면 국내 전문가를 거의 총망라했다고 볼 수 있었다.

강의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강의자의 능력에 달려 있으되, 그 능력의 핵심은 청중과의 소통이리라. 하지만 70대 노인부터 30대 청년까지, 국회의원부터 대학원생까지, 30년 전 대학을 졸업한 사람부터 현직 교수까지,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청중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강사라도 강의의 눈높이를 맞추는데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이런 형태의 강의가 갖게 되는 태생적 한계라 할 수 있는 수강생의 비균질성은 강사들의 수준과는 무관한, 그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매 강의마다 누구는 어려워했고 누구는 지루해했다.

구성원의 열정은 뜻밖으로 매우 높았다. 강의에의 집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그랬다. 강의 내용을 비판하고 부족함을 지적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고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노력에 몸을 사리지 않았다. 질의응답 시간은 매번 턱없이 부족했다. 강사와 수강생 중 누구의 전문성이 더 앞서는지, 즐거운 고민을 해야 할 때도 더러 있었다. 수료식 자리에서 어떤 이는 구성원들 사이의 개인적 만남이 부족했음을, 그를 위한 주최 측의 배려가 부족했음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아쉬움쯤이야 토론의 진지함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대학에게 연구와 교육이 생명이듯, 대학이 대학 밖과 소통하는 방식 또한 연구와 교육뿐일 것이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아무리 紛紛하다고 해도, 그점은 결코 변할 수 없다. 이번 최고위과정은-비록 그 이름은 어색했어도-그를 위한 훌륭한 사례였다.

대학 밖의 사람들은 항상 나를 긴장시킨다. 평온한 내 연구실을 언제라도 옥죌 수 있는 권력과 자본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대학, 그 아름답던 공간이 나로 인해 추하고 비루해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했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나의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로선 그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매주 세 시간, 매번 저녁을 굶은 채 참여했던 나의 최고위과정은 그렇게 끝났다.


이충진 한성대·철학
필자는 독일 필립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칸트의 正義論」,「 헤겔의 絶對知」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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