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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단상_ 구조조정, 합리적 원칙과 기준 제시해야
교육단상_ 구조조정, 합리적 원칙과 기준 제시해야
  • 박순준 동의대·사학과
  • 승인 2013.12.30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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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순준 동의대·사학과(교수협의회장)
지금 지방의 사립대학들은 무분별한 구조조정의 역병을 앓고 있다. 구조조정의 당위성을 앞세워 구성원의 의견수렴을 외면한 채 공론화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단과대학을 합치거나 쪼개고 학과들을 통폐합하거나 아예 없애는 일들을 한칼에 해치우고 있다.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대한 고민도 없고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도 없다. 오로지 생존이 목표란다.

학생 수의 감소로 등록금 수입이 줄어드니까 경영합리화를 구실삼아 최후의 보루인 교수의 교육권과 학생의 학습권도 서슴없이 침해한다. 특성화를 추진한다면서 무리하게 강좌를 대형화하고 전공개설과목을 축소하며 교양과목 체제를 함부로 손댄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라 할지라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공공교육기관인 사립대학들이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구성원들은 대학당국이 휘두르는 칼날에 해를 당할까 숨죽이며 혹시 밉보일까 반대를 대놓고 하지도 못한다. 연봉제를 밀어붙이는 이웃 대학을 속 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면서 대학당국이 급여 삭감의 무기를 언제 들이댈지 노심초사한다. 주변에는 언제부터인가 이기주의가 싹 튼다. “장사 안 되는 일부 학과들이 없어져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지. 우리 학과는 해당되지 않겠지. 나만은 살아남아야지.”

‘잔 머리 굴리는’ 정책결정권자들은 이것을 구조조정에 십분 활용한다. 몇몇이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사전에 은밀히 당사자들을 불러 정지 작업을 벌이는 각개격파 전술을 구사한다. 정보를 독점하고 편집해 일부분만 내밀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권력을 틀어쥔 완장 찬 사
람마냥 호기를 부리면서 여기저기 드나든다. 기준과 잣대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고 쉴 틈 없이 혼자서 떠들어댄다. 그래놓고는 의견 수렴했다고 한다. 원안을 의결하는 데 몇 주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밀실에서 비공개로 결정한 구조조정의 진행 시나리오다.

대학의 운명이 걸린 구조조정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공론화를 통한 민주적 의견수렴을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의 사립대학들이 21세기의 시스템 경영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인적 지배에 의존하는 구태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대학에 투자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간주하고 주인 행세한다. 총장을 임명하는 법적 권한을 마음껏 행사하고 주요 보직자들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임명과 승진을 자기 뜻대로 하려든다. 재단의 총애를 덧입은 자들은 뜻을 받들어 ‘영혼 없는 결정들’을 거침없이 내린다. 그러다가 토사구팽이 되면 언젠가는 다시 부르겠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잠시 쉬러 내려간다.

대학사회도 사람 사는 곳이니 양극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일반사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대학은 미래 세대를 기르는 곳이요, 이들을 올바르게 가르치려 애쓰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양극의 중간에 끼여 있는 우리들은 바르게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자책감에 휩싸여 본의 아니게 학습된 무능과 패배주의에 젖기 십상이지만 우리의 작은 힘을 보태고 마음을 모은다면 희망은 있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하는 것(倒궋逆施)’에 용감하게 맞서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우리들의 뜻을 한데 모아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에 입각한 구조조정안의 합리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장을 마련하며 구성원의 뜻을 반영하는 제도를 수용하도록 촉구하고, 재단도 고통분담 노력에 적극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 수 있는 인력과 조직이 있고 그것을 이끄는 리더십이 굳건하다면 우리는 힘껏 외칠 수 있다.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고 민주적 대학운영을 보장하라.”

박순준 동의대·사학과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2011년 3월부터 동의대 교수협의회장과 대학평의원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3년부터 (사)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기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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