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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善의 두 얼굴
改善의 두 얼굴
  • 한병호 한국해양대·해사법학부
  • 승인 2013.12.10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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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학자는 모름지기 권력과 돈을 탐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뵙고 싶어도 다시는 뵐 수 없는 은사님께서 거의 30년 전에 하신 말씀이다. 권력을 탐하면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진실을 밝혀 소신대로 글을 쓸 수 없고, 돈을 탐하면 돈맛 때문에 온갖 잡문을 쓰느라 글 다운 글을 쓸 수 없다는 말씀이셨다. 그래서 오로지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정으로 학문 연구에 정진할 수 있도록 민주적 법치국가는 학문의 자유와 대학 자치를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작금의 국립대학에서는 민주주의, 대학자치와 법치주의가 철저히 수모를 당하고 있다. 특히 지난 MB정권 하에서는 이른바 ‘국립대학 선진화’라는 허울을 쓰고서 마치 굴삭기를 동원해 국립대학을 송두리째 갈아엎듯이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총장·학장 직선제 개선을 추진했다. 그들이 말하는 직선제 ‘개선’은 직선제는 물론 간선제까지 완전히 봉쇄하는 것이었다.

그 추진방법과 과정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학장직선제는 “추천을 받거나 선출의 절차를 거치지” 말고 총장이 “직접 지명”하도록 해 구성원들의 의견 개진을 원천봉쇄했다. 이처럼 인사권자에게 전횡을 휘두르게 한 법령은 들어본 적조차 없다.

더군다나 총장직선제 철폐에는 갑을 관계를 마음껏 활용하기도 했다. 국립대 총장이 그 임명제청권자이자 감독기관인 교육부 장관의 MOU 체결 요구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국립대 교수들이 저항하자 행정적 재정적 재재로 위협하더니, 급기야 총장직선제 폐지를 거부한 대학은 아무 관련도 없는 교육역량강화사업에서 탈락시켰다. ‘총장직선제 개선’을 조금만 후퇴시켜도 이미 지급된 지원금까지 환수하겠다고 지금도 으름장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일찍이 헌법재판소는 대학의 자율성, 즉 대학자치가 학문 자유의 확실한 보장수단으로써 ‘대학에게 부여된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했다. 총장후보자 선출에 참여할 교수들의 권리는 대학자치의 본질적인 내용에 포함되는 것으로서 헌법상 기본권이라고도 했다. 교육공무원법에서는 지금도 “해당 대학 교원의 합의된 방식과 절차에 따른 선정”을 보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총장·학장 직선제를 온갖 방법으로 철폐한 것이 총장·학장의 리더십 강화를 위해서란다. 민주주의, 대학자치, 법치주의가 군소리나 헛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가보다.

다른 한편으로, 2011년 교육부는 국립대 교수들에게 이른바‘성과급적 연봉제’를 도입했다. 그 제도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기존에 차등 지급하던 성과급과 매년 호봉승급분을 합쳐 성과연봉의 재원으로 삼는다. 교수들의 실적을 상대평가해 상위 20%에게 기준금액의 2배씩을, 다음 30%에게는 기준금액의 1.5배씩을 성과연봉으로 지급하고, 남은 금액을 그 다음 40%에게 나눠주고, 최하위 10%에게는 성과연봉을 전혀 주지 않는다. 성과연봉의 일정비율은 매년 기본연봉에 누적해 지급한다는 것이다.

사립대학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러한 제도에 대해서는 ‘상호약탈식 제로섬 게임’, ‘무조건 한줄 세우기’, ‘1년 평가의 종신누적’등 치유할 수 없는 많은 문제점들이 누누이 지적됐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그 문제점들을 시인하고서도 ‘개선’이란 말만 들먹일 뿐이다. 헌법과 법률에서 보장된 총장직선제는 ‘개선’의 이름으로 폐지해 놓고는, 문제점투성이인 성과급적 연봉제는 시정조차 미적거리고 있다. 국립대 교수들의 신분과 지위를 뿌리째 뒤흔들어놓고도 성과급적 연봉제는 상호경쟁을 통한 국립대 교수들의 연구역량 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란다.

이런 사태를 우려했던 것일까. 20년 전쯤 은사님께서는 “나는 정년퇴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교수가 된 지 얼마 안 된 자네들은 앞으로 참 힘들 것 같아 걱정이네”라고도 하셨다. 그 말은 바로 지금 내가 국립대 젊은 교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한병호 한국해양대·해사법학부
서울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인간다운 생존의 헌법적 보장에 관한 연구」가 있으며, 현재 한국해양대 교수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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